정치에디터 우연히 인터넷에서 ‘강원감자’로 변신한 최문순 더불어민주당 강원지사 후보의 홍보 동영상을 보게 됐다. 그의 메소드 연기에 매료돼, 검색창에 ‘최문순’을 넣어 지방선거 홍보물을 섭렵하던 중 ‘강원도 하드캐리 원팀’ 영상을 만났다. “여러분은 지금 내 몸이 내 맘대로 안 되고 있는 19명의 강원도 지방선거 출마자들을 보고 계십니다.” 정말로 제 몸 하나 어찌하지 못한 채 리듬을 타고 있는 반백의 중년 남성들이 화면을 메우고 있었다. 쓴웃음이 나왔다. 후보자가 19명이나 된다는데 여성은 없다. 이 웰메이드 영상이 불편했던 건, ‘50대 남성’이 과다 대표하고 있는 한국 정치의 현실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목격한 때문일 것이다. 민주당은 당헌 8조 ‘성평등 실현’ 조항에서 “여성의 정치참여를 보장하여 실질적인 성평등을 구현하고, 여성당원의 지위와 권리에 대하여 특별히 배려한다”며 주요 당직과 위원회, 지역구 선거후보자 추천에 ‘여성 30% 이상 포함’을 의무화했다. 제대로 지켜진 적도 없지만, 이런 와중에 ‘지방자치단체의장 선거 후보자 추천은 제외한다’는 단서조항을 달아 놓았다. 전국 17곳 광역단체장 후보를 확정한 뒤 공개한 민주당의 ‘후보 지도’에 여성이 한 명도 없던 것도, 강원 ‘원팀’ 19명이 남성들로 채워진 것도 모두 우연이 아니라는 얘기다. 오히려 지방선거의 여성 공천을 제도적으로 막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도 17곳 광역단체장 후보 중에서 16곳을 남성으로 채웠다. 이런 여야의 ‘단일대오’로 1995년 민선 1기부터 2014년 6회 지방선거까지 96명의 광역단체장 당선자 가운데 여성은 전무하다. 이번 지방선거 뒤에는 남성 당선자 16~17명이 더해질 것이다. 여성 공천 이슈가 제기될 때마다 각 당 지도부는 “사람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이길 만한 후보’가 없다는 뜻일 것이다. 김무성 자유한국당 의원은 2015년 새누리당 대표 시절 ‘여성 공천 30%’를 요구하는 여성단체 관계자들에게 “실력부터 쌓아 오라”고 훈계했다. 한국 사회에서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실력’이란 혈연, 학연, 지연을 총동원한 조직과 인맥이다. 온갖 동창회와 향우회가 남성 중심으로 꾸려진 상황에서 이 모든 것을 ‘개인기’로 극복할 수 있는 여성 후보가 얼마나 될까. 당의 강력한 지원이 없으면 쉽지 않은 일이다. 정치권은 언제나 여성 인재 ‘부족’을 호소하지만, 막상 여성 인재 ‘육성’에는 관심이 없다. 정치자금법은 국가가 지급하는 정당보조금의 10%를 여성정치 발전을 위해 쓰도록 정하고 있지만,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의 조사에 따르면 이 돈은 대부분 당직자 인건비로 지출되고 있다고 한다. 민주당 당헌에는 여성 정치인을 발굴·육성하고, 여성인재를 관리하기 위해 상설특별기구로 ‘여성정치참여확대위원회’를 설치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지만 사문화됐다. 여성공천 할당제는 여성들에게 정치 입문의 계기를 열어주는 소중한 기회다. 일정한 비율이 보장되면, 진짜 ‘실력’있는 여성들이 진입 단계에서 좌절하지 않고 제 몫을 해낼 기회가 생긴다. 한국 사회의 가장 오랜 적폐인 ‘성차별’은 물론, 뜨거운 쟁점인 임신 중단의 권리, 성폭력·혐오 피해 폭로 등 여성 의제가 더 이상 주변화되지 않으려면 정치권의 여성 대표성도 강화돼야 한다. 여성이, 세상이 변하는데, 왜 정치는 변하지 않는가.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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