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팀 기자 5월19일 구속영장이 청구된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금 별일 없이 산다. 구속영장이 청구되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도 받지 않고 있다. 국회 회기 중에는 현행범을 제외하고는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할 수 없다는 국회의원의 불체포 특권 덕이다. 여기서 말하는 체포가 구속수감으로 바로 연결되는 건 아니다. 영장실질심사를 진행하기 위해 국회의원을 법원으로 데려오는 일시적인 인신구속일 뿐이다. 체포동의안이 가결돼도 구속할 필요가 있는지 판사가 다시 따져보는 절차가 남아 있다. 체포동의안 통과가 구속영장 발부에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다. 2012년 9월 법원은 공천헌금 혐의로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현영희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대통령에게 밉보인 국회의원이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두들겨맞고 구속되는 시대가 아닌 지금, 국회가 판사의 영장심사까지 막아설 명분은 별로 없다. 5월 국회에서 본회의는 대통령 개헌안을 표결해야 하는 24일과 쟁점법안을 처리하기로 한 28일, 이틀이 잡혀 있었다. 체포동의안은 국회 본회의에 ‘보고’된 뒤 24~72시간 안에 표결해야 하고 그러지 않으면 직후에 열리는 본회의에서 처리해야 하므로, 24일 본회의에서 권 의원 체포동의안이 보고되면 28일 표결이 가능했다. 구속영장 청구부터 체포동의안 처리까지 한 달 이상이 걸렸던 염동열·홍문종 의원 사례처럼 ‘방탄국회’라는 꼼수가 동원될 여지가 없는 깔끔한 일정이었다. 그러나 24일 본회의 전 체포동의안이 국회에 접수되지 않아 ‘24일 보고→28일 표결’ 일정은 어그러졌다. 법무부가 총리실을 거쳐 청와대에 보낸 체포동의안에 문재인 대통령이 결재하지 않아서다. 청와대는 24일 본회의 보고가 무산되자 “대통령이 오늘 새벽에 도착해서 결재를 못했다”고 설명했다. ‘깜빡했다’는 얘기다. 문 대통령은 22일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고 24일 새벽 귀국했다. 1박4일의 강행군으로 출장을 다녀온 대통령이 국회의원 체포동의안까지 일일이 챙기는 건 불가능하다. 문 대통령이 그날 새벽 청와대에 도착해 휴식을 취하기 전에 청와대 참모 중 누군가가 “대통령님, 힘드시겠지만 이건 중요한 사안이니 결재를 해주십시오”라고 했어야 했다. 국회·검찰 관련 업무를 꼼꼼히 챙겨야 하는 청와대 정무·민정 라인의 직무유기다. 염동열·홍문종 체포동의안 부결에 일조해 대국민 사과까지 했던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이를 제대로 챙긴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권 의원은 염·홍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로 분노했던 여론을 당장 피할 수 있게 됐다. 촛불혁명을 관통하는 시대정신은 ‘특권 철폐’였다. ‘정유라 학점 특혜’에 이대생들이 들고일어나고, 이권을 노리며 최순실을 후원했던 “이재용을 구속하라”는 구호가 광화문 광장에서 터져나온 이유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간 기득권 세력이 더욱 강고하게 다져놓은 특권의 아성을 허무는 건 적폐청산의 가장 중요한 작업이기도 하다. 강원랜드 채용 비리는 공정해야 할 경쟁의 규칙을 특권을 앞세워 유린한 대표적 사건이다. 그러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마지막 단계에서마저 사건의 중요한 축으로 지목된 국회의원들은 여전히 ‘특권’을 행사하고 있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권성동 체포동의안 신속 처리를 무산시킨 점은 뼈아프다. 오늘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뤄서는 안 된다.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70년 만에 맞은 기회”를 살리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이 대한민국에는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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