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얘니와 로렐 그리고 저널리즘 / 이재명

등록 2018-05-20 22:38수정 2018-05-20 22:54

이재명
디지털부문장 겸 에디터

똑같은 소리를 누구는 ‘축구’로, 다른 이는 ‘아빠’로 듣는 일이 가능할까? 지난주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던 ‘얘니’(Yanny)와 ‘로렐’(Laurel) 논란은 이 말도 안 되는 질문이 터무니없는 소리가 아님을 보여줬다. 하나의 음성 파일을 두고 한쪽에선 ‘로렐’로, 반대편에선 ‘얘니’로 들린다며 각자 상대방의 귀를 의심했다. 직장 동료, 친구는 물론 가족까지 둘로 갈라놓은 이 기이한 음성 때문에 곳곳에서 공방이 일었다. 나이가 어릴수록 ‘얘니’로 들었다는 이가 대다수인 반면 중·장년층은 ‘로렐’로 들었다는 이가 압도적이었다. 일순간에 세대 구분의 지표가 된 이 음성 파일 탓에 나이 듦을 인정하려 들지 않던 이들마저 본의 아닌 ‘아재·아짐’ 인증을 해야 했다.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이 혼란은 왜 일어난 걸까? 누구보다 이 음원의 발원지였던 미국의 언론들이 앞다퉈 원인 규명에 나섰다. 음성학 전문가들이 꼽은 첫째 원인은 좋지 않은 음질 상태였다. 저음질 음원은 소리의 디테일이 구분되지 않고 뭉쳐서 들리다 보니 모호함을 키운다. 보다 과학적인 해석은 사람마다 먼저 주목하는 음역(주파수)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었다. 같은 소리라도 어떤 이는 고음역대에 민감하고, 반대로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는 저음역대 소리를 용케 찾아내는 이들도 있다. 특히 고음역대를 듣는 능력은 나이가 들수록 약화하고 이런 청력 노화는 남성이 여성보다 빠르다. 대부분의 장년층이 ‘로렐’로 들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 이 음성 파일을 이퀄라이저로 조정해 고음역대 소리를 강화하면 ‘로렐’이 ‘얘니’로 바뀌는 흥미로운 체험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음성이 세상을 두쪽 낸 결정적 원인은 다른 데 있다. 인간의 성대를 거쳐 나오는 소리로 ‘얘니’나 ‘로렐’은 수많은 주파수를 지니고 있고, 우리 뇌는 이런 복잡한 정보를 종합적으로 인식해 둘을 명료하게 구분한다. 그러나 이 음원 파일은 고·저 음역대만을 선명하게 하고 나머지 주파수 대부분은 제거됐다. 사람의 성대에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소리인 것이다. 디지털 기술이 이런 단순화를 가능케 했고 거기서 혼동을 야기하는 모호함이 비롯된 셈이다.

현실 세계에서도 더러 군더더기라는 이유로 많은 것들이 버려진다. 그러나 이번 논란에서 보듯 제거되는 정보들은 결코 무의미한 어떤 것만은 아니다. 되레 진실의 한 부분을 구성하고 있으며 그 빈자리가 실체적 진실에 대한 접근을 가로막거나 왜곡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버려도 되는 군더더기이고 어떤 정보는 반드시 취해야 할까. 지금껏 대다수 정치인은 정파성을 핑계로, 기업가는 이익 극대화를 위해, 언론인은 논조를 선명하게 하려 대척점에 있는 사실이나 정보를 버리거나 외면해왔다. 객관적인 팩트의 취사선택 기준 없이 버릴 것은 아예 묻고 취할 것은 침소봉대했던 게 ‘로렐’을 ‘얘니’로 만들었는지 모른다.

정보의 비대칭성이 사라진 디지털 세상에선 시민이자 소비자인 독자는 제공되는 정보에 의존하는 수동적 존재에 머물지 않는다. 언론사가 뉴스를 독점하던 시대도 저물었다. 그 자리를 대체한 포털의 영향력이 향상되면서 공동체에 필요한 뉴스보다 잘 읽히는 뉴스, 가치 지향적 뉴스보다 탈가치적 뉴스가 선호된다. 더욱 절망적인 사실은 뉴스에 대한 불신과 언론인을 ‘기레기’ 취급하는 문화가 만연해 있다는 점이다. 이런 비관적인 언론 환경에서 <한겨레>가 갓 서른살을 넘겼다. <한겨레>의 가치와 지향이 담긴 차별성 있는 콘텐츠를 생산하면서도 군더더기와 고갱이를 구분하고, 바람직한 저널리즘을 구현할 역량을 어떻게 키워나갈 수 있을지 고민하는 날들이 많아지고 있다. mis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망상에 의한 쿠데타 [유레카] 1.

망상에 의한 쿠데타 [유레카]

광기에 빠진 역사 속 폭군이 이러했으리라 [박현 칼럼] 2.

광기에 빠진 역사 속 폭군이 이러했으리라 [박현 칼럼]

[사설] 시민의 승리, 민주주의는 살아있다 3.

[사설] 시민의 승리, 민주주의는 살아있다

​이 씩씩하고 날래고 사나운 청년 동지들 [김현아의 우연한 연결] 4.

​이 씩씩하고 날래고 사나운 청년 동지들 [김현아의 우연한 연결]

출국금지 현직 대통령, 혼돈 끝낼 방법은 탄핵뿐이다 [사설] 5.

출국금지 현직 대통령, 혼돈 끝낼 방법은 탄핵뿐이다 [사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