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사회구조에서 대박의 떡고물이 평범한 사람에게 고루 돌아갈 확률은 한없이 영에 수렴함에도, 어쨌든 달뜬 미망이 피어나는 건 사실이다. 민족주의가 쇠한 자리를 ‘먹고사니즘’이 차지한 시대의 풍경이다. 평화체제 이후 경제협력 과정을 잘 디자인하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사회비평가 남북정상회담 공식 석상에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가 크게 부각된 건 2000년이었다. 이후 남북 행사에서 점차 비중이 줄어드는 느낌이었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에서 통일이란 두 글자는 더욱 존재감이 옅었다. 회담 발표문 제목에 통일이 나오지만 정작 본문에 통일에 관한 내용은 별로 없었다. 오히려 지난 3월 정상회담 준비회의에서 나온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 “남북이 함께 살든, 따로 살든 서로 간섭하지 않고 서로 피해 주지 않고 함께 번영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가 훨씬 큰 주목을 받았다. 이에 대해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는 헌법 제66조 3항을 위반한 반(反)통일 발언이 아니냐는 시비도 있었지만, 과도한 해석이다. 대통령은 평화에 방점을 찍었을 뿐 통일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오늘날 남한 시민들이 통일을 예전처럼 열망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 우리의 소원은 무엇일까. 평화? 물론이다. 누가 평화를 부정할 수 있을까. 무기 상인조차 겉으론 평화를 긍정한다. 평화는 절대적 당위다. 그건 소원이라기보다 소원을 실현하기 위한 전제, 선결조건이다. 남북 간 평화 체제가 실현되고 나서 하고 싶은 일, 그게 진짜 우리의 소원이다. 무얼까? 세 개의 장면이 힌트다. 장면 하나. 최근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폭행한 혐의로 구속된 남성의 아버지는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북한에 지하자원이 많기 때문에 포클레인 자격증을 가지고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거라는 얘기를 나눴다.” “아들이 메신저 프로필 사진을 (연예인) 수지에서 회담 이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악수하는 것으로 바꿔 놓을 만큼 남북회담을 굉장히 지지했다. 청년들 일자리도 많아지고 북한 자원 이용하면 좋다고 하면서.” “면접 사기를 당하고 강원도에서 올라오는 길에 남북정상회담을 부정적으로 말한 홍준표 대표를 찾아 국회로 간 걸로 생각한다.” 장면 둘. 다음은 정상회담 전후로 쏟아져 나온 언론 기사 제목이다. ‘‘남북경협 기대’ 건설업 주가 올해 32%↑…현대건설 77% ‘껑충’’(<머니투데이>) , ‘‘4·27 정상회담’ 훈풍에 파주 접경지 경매시장도 ‘후끈’’(<연합뉴스>), ‘경기 접경지역 땅값 급등…매물 품귀·묻지마 투자 우려’(<서울신문>). 도로에 걸린 어느 오피스텔 사업자의 현수막은 이런 기사들에 리얼리티를 더한다. “남북종전선언 기념! 파주투자 1순위! 운정신도시 최저분양가!” 현수막 양끝에는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위원장 사진이 토템처럼 땅땅 박혀 있다. 장면 셋.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제이티비시 <썰전>에 출연해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배경에 대해 설명한다. “김정은은 제재 압박만 풀리면 북한이 중국 이상으로 고도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 듯하다.” 또 그는 북한 노동력의 강점으로 “낮은 문맹률과 우수한 근면성”을 꼽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노조 없는 대한민국 노동력이 북한 노동력이다.” 이에 대한 진행자 김구라씨의 촌평. “완전 삼성인데?” 대강 답이 나온 것 같다. 우리의 소원은, ‘대박’이다. 보수세력은 ‘통일대박’, 진보세력은 ‘평화대박’을 말하는 차이가 있을 뿐 교집합은 ‘대박’이다. 취업 안 되는 청년에게도, 건설업자와 부동산업자에게도, 무노조·저임금에 말 잘 듣고 우수하기까지 한 노동자를 바라는 기업한테도 북한은 젖과 꿀이 흐르는 기회의 땅이다. 통일에 대한 낭만적 서사 대신 똬리를 튼 것은 ‘닥치고 대박’ 신화인 것이다. 지금의 사회구조에서 대박의 떡고물이 평범한 사람에게 고루 돌아갈 확률은 한없이 영(0)에 수렴함에도, 어쨌든 달뜬 미망이 피어나는 건 사실이다. 민족주의가 쇠한 자리를 ‘먹고사니즘’이 차지한 시대의 풍경이다. 평화체제 이후 경제협력 과정을 잘 디자인하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이 과정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면 북한은 자칫 발전 국가와 신자유주의 국가가 기괴하게 결합된 내부식민지형 사회가 될 수 있다. 이는 북한 인민에게 최악의 결과임은 물론, 토건 중심 요소투입형 경제로 퇴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남한 사회에도 독이다. 그럼 우리의 소원은 무엇이어야 하나? 모두 머리를 맞대고 치열하게 토론해야 할 문제다. 다만 그 결론이 ‘덜 천박하고 더 존엄한 평화’였으면 좋겠다.
이슈한반도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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