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선언] 남북 갈등도 마술처럼 풀리길 (판문점=연합뉴스) 배재만 기자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오후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환영만찬에서 마술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2018.4.28 scoop@yna.co.kr/2018-04-28 00:15:06/ <저작권자 ⓒ 1980-2018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아리스토텔레스는 동물학 저작에서 “만물 가운데 인간만이 유일하게 웃을 줄 안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러나 웃음에 관한 이런 단편적인 기술이 아닌 본격적인 철학적 고찰은 앙리 베르그송의 <웃음>에 와서 이루어졌다. 1900년에 출간된 <웃음>은 이후 수많은 웃음 연구를 이끈 이 분야의 선구적 저작이다. 이 책은 웃음을 야기하는 메커니즘을 정교하게 분석하는데, 그 분석을 따라가다 보면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스> 같은 영화의 유명한 장면들이 이 책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른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베르그송은 서두에서 ‘모든 웃음에 관하여’ 이야기하겠다고 호언하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는 않는다. 글의 대부분은 희극적인 상황이나 행동이 유발하는 웃음, 곧 우스움과 우스꽝스러움을 규명하는 데 바쳐진다. “타인의 열등함을 보면서 순간적으로 느끼는 우월감의 표시”라는 토머스 홉스의 웃음에 대한 정의를 바탕에 깔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웃음에는 이런 ‘차가운 웃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멀찍이 구경하면서 웃는 웃음이 아니라 마음을 기울이기 때문에 우러나오는 따뜻한 웃음도 있다. 타인의 실수를 보고 웃은 웃음뿐만 아니라, 자신을 일부러 낮춤으로써 상대에게 선사하는 웃음도 있다.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장에 웃음이 많았다. 베르그송의 말을 빌리면 ‘생의 약동’이 느껴지는 밝은 웃음이었다. 역사의 전환을 가져온 회담 중에 이만큼 웃음이 많은 회담이 있었을까. 남의 대통령은 마음이 따뜻했고 북의 지도자는 재치가 있었다. ‘아, 멀다고 말하면 안 되갔구나….’ 배려와 공감의 웃음, 일치와 호응의 웃음이 공명했다. 만찬장에서 제주 소년이 부르는 노래를 듣는 동안 김정은 위원장의 얼굴에 찬찬히 번지던 미소는 억지로는 지을 수 없는, 거의 본능적인 기쁨의 표현으로 보였다. 남과 북 사이에 웃음이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고명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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