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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크리틱] 문학, 기억의 계승과 교환 근거 / 이명원

등록 2018-05-04 17:47수정 2018-05-05 15:34

이명원
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4월27일. 제주에서는 4·3항쟁 70주년을 맞아 ‘동아시아의 문학적 항쟁과 연대’라는 국제문학 심포지엄이 열렸다. 1부에서는 현기영의 기조강연 이후 바오닌(베트남), 리민융(대만), 메도루마 (오키나와)의 발제가 있었다.

베트남 전쟁과 대만의 2·28 사건, 그리고 오키나와 전쟁과 반(反)기지 투쟁이 적극적으로 환기되는 가운데, 문학과 기억투쟁의 문제가 논의되었다. 기조강연과 발표를 들으면서, 나는 전쟁·학살과 같은 비극적 기억과 상흔이 작가의 문학적 실천을 통해 어떻게 망각되지 않고 진실 추구의 작업으로 나아가는지를 음미했다.

경청하다 보니, 이들의 발표에는 공통된 문제인식이 드러났다.

첫째, ‘국가의 기억’과 ‘민중의 기억’의 불일치 문제다. 이것은 4·3, 2·28, 오키나와 전쟁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바오닌이 <전쟁의 슬픔>에서 묘사한 베트남 전쟁의 경우도 해당된다. 바오닌은 작품이 발표되었을 당시, 베트남작가동맹을 포함해 관방 측은 자신의 작품을 불온한 것으로 간주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했다. ‘국가의 기억’에 저항했기 때문이다.

베트남의 전쟁문학은 ‘영광의 기억’ ‘영웅적 항전’의 장엄함을 재현할 것을 강조하고 있었는데, 그의 소설은 전쟁의 잔혹함과 트라우마를 묘사하는 등 ‘고통의 기억’을 적극적으로 환기하는 것이다 보니, 제도적 검열과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던 셈이다.

둘째, 기억 계승 작업의 시대적 어려움 혹은 불가능성의 문제다. 베트남 전쟁도, 대만의 2·28 사건도, 오키나와 전쟁도 동시대 청년들에게는 기억의 공백지대다. 기억의 부재, 혹은 역사에 대한 적극적인 상기와 회상의 불가능성 앞에서, 이들 작가는 어떻게 문학을 통해서 그 역사적 진실을 후세대로 계승할 수 있을까라는 고뇌에 빠져 있었다. 이것은 한국의 4·3문학 역시 공통적으로 처해 있는 난관이다.

한편, 나는 후세대로의 ‘기억의 계승’도 중요하지만, 국경을 넘어 이 기억들이 어떻게 상호적으로 ‘교환’될 수 있는가의 문제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냉전이 초래한 동아시아의 역사적 기억은 어떻게 국경을 넘어 ‘교환’될 수 있는가. 4·3은 어떻게 2·28과 만날 수 있는가. 오키나와 전쟁은 어떻게 베트남 전쟁의 기억과 접속할 수 있는가.

국민국가 혹은 지역적 경계를 넘어 ‘기억의 교환’이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일단 개별 작품들을 구성하고 있는 ‘언어의 국경’을 횡단해야 한다. 가령 메도루마 슌이 4·3과 현기영의 문학을, 바오닌과 베트남 전쟁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작품들이 일본어로 번역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독자들은 바오닌의 <전쟁의 기억>을 읽으면서 베트남 전쟁과 바오닌이 묘파한 전쟁의 상흔을 생생하게 감지할 수 있다. 그러나 베트남의 독자들도 그러할까. <무기의 그늘>(황석영), <머나먼 쏭바강>(박영한), <존재의 형식>(방현석)을 포함해 한국의 작가들 역시 직간접으로 베트남 전쟁의 상흔을 꾸준히 묘사해왔다. 하지만 이것이 번역을 통해서 ‘언어의 국경’을 넘지 못한다면, 베트남 전쟁에 대한 한국과 베트남 민중들의 상호 인식은 역시 미지의 영역으로 남을 확률이 높다.

현재 문학을 통한 기억투쟁은 두 개의 허들을 넘어야 하는 상황이다. 첫째, 후세대에게 사건의 기억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의 문제. 둘째, 국경을 넘어 사건의 기억을 어떻게 교환할 것인가의 문제. 둘 다 난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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