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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종철 칼럼] 안보논리를 넘어서 평화체제로

등록 2018-05-03 18:12수정 2018-05-03 19:41

한반도의 휴전상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를 실질적으로 지배해온 ‘군산복합체’의 확대와 유지에 불가결한 고리 중 하나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제 이 휴전상태가 평화체제로 바뀔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은 진보·보수를 가릴 것 없이 기존 세계질서 속에 안주해왔던 개인이나 집단에는 결코 달가운 상황일 리 없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아침부터 텔레비전 앞에 앉아 진기하고도 흐뭇한 장면들에 몰입해 있다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보낸 하루였다. 생각해보니 이렇듯 꼼짝도 않고 장시간 텔레비전을 지켜본 것은 4년 전 세월호 참사 때 이후 처음이다. 민주정부가 들어서면 텔레비전에서도 이토록 완전히 차원이 다른 화면을 보는 행복을 누리게 될 줄 미처 몰랐다.

물론 우리가 지난 금요일 텔레비전을 보며 감격한 것은 방송 카메라가 저 혼자 요술을 부려서가 아니라, 거기에 등장한 주요 인물들의 말과 행동 덕분이었다. 아마도 텔레비전을 지켜보는 많은 한국인에게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남북한 두 최고 지도자가 상대방을 대하는 예의 바르고 자연스러운 태도였을 것이다. 큰 연령차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통령은 극히 겸손한 자세로 상대방을 환대하며 말끝마다 그의 ‘용기 있는 결단’을 찬양했고, 북의 젊은 지도자는 여유 있고 재기 넘치는 발언으로 분위기를 살리되 교만함과는 거리가 먼 공손한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우리가 이런 모습에 새삼 신선한 감동을 느낀 것은 그동안 이른바 정치를 한다는 인간들이 너무나 흔히 드러내는 추하고 무례한 언행에 진절머리가 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날 남북 지도자들의 그 모습은 어디까지나 ‘쇼’였다고, 진정성을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우리는 정치라는 것은 어차피 ‘연기’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치가의 말과 행동이 진심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의 인생 자체가 타인들의―그리고 자기 자신의―시선을 의식한 끊임없는 연기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정치는 그중에서도 최고 형태의 연기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것은 만인이 지켜보는 ‘공적 공간’에서의 연기일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운명이 거기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훌륭한 정치가란 곧 대중들에게 심미적인 쾌감을 주는 훌륭한 연기자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우리는 이토록 감격하고 환호하고 있는데, 해외의 주요 언론들은 이상하게도 냉담한 반응을 드러내거나 경계심에 찬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예를 들어 <월스트리트 저널>은 판문점 회담 직후의 기사에서 “한국 정부는 북한이 하는 말이 교묘하게 꾸며낸 것임을 알면서도 그 의미를 세계를 향해서 과장되게 선전할 것을 선택했다”라고, 마치 남북한이 합세하여 국제사회를 속이는 것처럼 해석했다. 하기는 이 신문이 골수 보수파 언론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놀랄 것도 없다. 하지만 모처럼의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어떤 식으로든 폄훼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리버럴 매체라는 <뉴욕 타임스>도, 시사 주간지 <뉴요커>도 예외가 아니다.

심지어 영리 추구로부터 자유로운 뉴스 매체로 널리 알려진 영국의 <가디언>도 무슨 까닭인지 남북, 북-미 회담의 전망을 심히 부정적인 태도로 전망하고 있다. 일본 언론은 말할 것도 없다. 한때 대표적인 진보매체였던 <아사히신문> 홈페이지에는 최근 ‘과연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을까’라는 제목으로, 북한 측의 ‘상습적인 약속 위반’ 행위로 볼 때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대면은 성사되기 어려울 것임을 거의 단정적으로 예언하는 글이 게재되기도 했다.

그런데 행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들 해외 언론의 논조에는 견실한 근거가 있다기보다는 다분히 필자들의 개인적 편견이나 기대 혹은 희망이 반영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실제로, 인간사에는 예측을 능가하는 일이 허다하다. 더욱이 지금 거론되고 있는 주역의 하나, 즉 트럼프는 전대미문의 종잡을 수 없는 특이한 인물이다. 그러므로 종래의 미국 대외정책이나 외교경험을 근거로 이런 인물이 결정적인 순간에 어떻게 행동할지 합리적으로 예측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지금 좌우를 막론하고 주요 해외 언론들이 북한의 제의에 따라 예정되어 있는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고수하고 있는 것은 언론 자신의 뿌리 깊은 이해관계나 이데올로기적 입장을 반영한 것인지도 모르고, 나아가서 거기에는 오랫동안 열강들 사이의 제물로 살아온 한반도 주민들에 대한 어떤 종류의 인종적·민족적 편견이 개입돼 있는지도 모른다.

하기는 어차피 ‘국외자’들인 그들의 한반도 상황 인식이 당사자인 우리와 같을 수는 없다. 그들에게는 만에 하나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진다고 해도 그건 결국 ‘남의 일’이다. 이 근본적인 입장 차이가 판문점 회담에 대한 반응의 차이를 낳는 주된 요인임에 틀림없다. 즉, 남북관계 개선, 한반도 긴장 완화, 그리고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크게 세 항목으로 구성된 회담의 합의 내용을 두고 상당수 해외 언론(그리고 국내의 극우 수구파 언론)은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가 포함돼 있지 않다고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우리가 보기에 그건 너무도 한가로운 투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획기적으로 관계가 개선되어 남북한이 서로 긴밀히 돕고 지낼 수 있다면, 전쟁 위험과 핵문제는 저절로 해소될 것이 우리에게는 너무도 명백한데도 그들은 이 점을 무시하고, 오로지 ‘비핵화’를 고립된 테마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비핵화’는 결국 북-미 정상회담에서만 최종적 합의가 가능한 문제인 이상, 남북정상회담에서 구체적인 결론을 낼 수 있는 게 아님이 분명하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가장 긴급한 과제는, 설혹 북-미 회담이 실패할지라도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빌미를 제거하는 것이다. 또 우리에게는 핵무기만이 문제가 아니다. 만약 어떤 이유로든 전쟁이 터지면 핵무기가 아닌 북의 장사포만으로도 2천만 인구가 조밀하게 살고 있는 남한의 수도권은 순식간에 ‘불바다’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도 남북간 관계개선과 적대행위의 중지를 강조한 이번 판문점회담의 성과는 찬양받아 마땅하다고 할 수 있다.)

해외의 언론이나 이른바 전문가들의 끈질긴 북한 불신론의 근거는 북한이 습관적으로 세계를 속이고 합의를 깨면서 핵개발을 진전시켜왔다는 것이지만, 실제로 이는 언론이라면 반드시 수행해야 할 기본적인 ‘팩트체크’조차 거치지 않은 일방적인 주장이라는 점을 그들은 잊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여기서 길게 설명할 여유는 없지만, 오랫동안 북핵문제를 실무적으로 다뤄온 전문가의 말을 귀담아들어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존 메릴 전 미 국무부 정보조사국 동북아실장은 <경향신문>(5월2일치)에 실린 대담에서 북핵문제 해결이 그동안 실패한 것은 “모두 북한의 속임수 때문이 아니란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하고, 북한 못지않게 “미국과 한국도 약속을 위반”한 것이 엄연한 사실임을 명확히 지적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기초적인 사실을 왜 세계의 주요 언론들이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북한을 부정적으로만 묘사하려 하느냐는 것이다.

이 문제는 내 짧은 소견으로 답할 수 있는 게 아니지만, 한 가지 추리는 가능하다. 즉, 그들이 현상변경을 바라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실제로 한반도의 휴전상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를 실질적으로 지배해온 ‘군산복합체’의 확대와 유지에 불가결한 고리 중 하나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제 이 휴전상태가 평화체제로 바뀔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은 진보·보수를 가릴 것 없이 기존 세계질서 속에 안주해왔던 개인이나 집단에는 결코 달가운 상황일 리 없다. 하지만 온갖 위기에 직면한 오늘의 세계가 구태의연하게 ‘안보’라는 억압적 논리에 갇힌 채 이대로 계속 간다면 조만간 세계 전체는 전면적 파멸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힘든 노력은 세계 질서의 근본적 갱신에 직결되는 싸움이기도 하다는 점을 우리는 인식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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