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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 읽기] 미투, 해결 주체를 새로 만드는 게 변화의 한걸음 / 권명아

등록 2018-04-26 18:14수정 2018-04-26 19:34

권명아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해시태그 운동과 미투 운동을 거치며 여러 분야에서 성폭력 고발이 진행되었으나 지금까지 제대로 해결된 사안은 그리 많지 않다. 물론 법적으로 중형이 내려진 사례도 있고, 이후 유사 사례를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선례와 판례도 계속 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간 고발된 대부분 사례는 제대로 해결되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고, 한국 사회 성폭력 문제를 해결해나갈 제도적, 구조적 방안은 논의조차 잘 되지 못한다.

성차별을 비롯한 차별의 구조는 단일하지 않고 분야나 관계 형식, 노동과 고용 형태 등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하여 가능한 한 여러 지점에서 구체적인 대안과 제도적 버팀목을 만드는 방법을 고안하고 만들어가는 일이 중요하다.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에 의하면 최근 5년간 보도된 성범죄 기사에서 가장 많이 거론된 가해자는 대학교수라고 한다(정혜진 교육선전국장, <교수신문>). 대학 구성원들 사이의 권력관계는 성폭력이 발생하는 구조적 요인이자, 해결을 어렵게 하는 걸림돌이다. 현재 대학 내 미투 고발이 이뤄지는 경우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공론화, 인권센터나 성평등센터를 통한 고발이 주를 이룬다.

인권센터나 성평등센터조차 없는 대학에서는 제도적으로 도움을 청할 방도가 없는데, 그나마 인권센터가 있어도 형식적이어서 더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대학마다 인권센터와 성평등센터를 의무적으로 마련해야 하고, 실효성 있는 운영을 위해 관리 감독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인권센터와 성평등센터를 반차별 인권과 페미니즘 전문가가 운영해야 하고, 이를 계기로 대학 내 인권 전문가와 반차별 윤리 교육을 할 수 있는 전문가를 육성하는 제도적 바탕이 마련되어야 한다.

현재 대학 내 미투 고발의 대응과 해결은 비상대책위와 성폭력상담소, 여성단체의 긴밀한 연대와 협력을 통해 이뤄진다. 이 주체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지만, 좀 더 제도적이고 전문적인 해결 주체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비대위는 대부분 고발자의 주변인이어서 고발자가 해결하고자 하는 방향을 가장 잘 알고, 문제를 해결하고 연대할 수 있는 최적의 주체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은 성폭력 문제나 반차별 윤리 교육, 혹은 법적 대응이나 제도적 대안을 마련할 수 있는 전문적 주체가 아니라서 한계가 있다.

반면 성폭력상담소나 여성단체는 여러모로 전문적 지원을 하는 중요한 해결 주체이지만, 분야별 특성이나 권력관계의 특이성, 여기서 비롯되는 추가 피해의 구체적인 지점을 예상하고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 따라서 대학 내 성폭력 문제에서는 전국대학원생노조 같은 조직이 가장 중요한 해결 주체인데 노조 가입 여부나 분회 유무와 관련 없이 대학원생들이 직면하는 문제에 해결 주체로 개입할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어쩌면 대학 내 미투 운동을 통해서 전국대학원생노조는 어디에도 없던, 전혀 새로운 형식의 노조를 발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대학 내 미투 운동에 응답하고 해결하며 이를 통해 대학 구조의 변화를 이끌어갈 주체를 만드는 일은 그저 상식적이고 아주 작은 제도적 해결책일 뿐이다. 그런데 이 작고 소박한 해결책도 만들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대학 안에 성차별과 모든 차별에 대응하는 반차별 인권 교육 전문가를 제도적으로 육성하고, 인권센터나 성평등센터가 이러한 인적 양성 제도가 되도록 하고, 대학원생노조가 모든 대학원생의 기본권을 지켜줄 수 있는 제도적 버팀목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마련하는 일, 그 정도의 작은 변화는 만들 수 있는 사회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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