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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위드유, 대한항공! / 김회승

등록 2018-04-25 21:54수정 2018-04-25 22:11

김회승
경제에디터

“기업 입장에서 가장 관리하기 고약한 게 ‘평판 리스크’다. 마치 나비효과처럼 객관적인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고, 언제 어떻게 터져 어디까지 갈지 도통 종잡을 수 없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5년 전 ‘라면 상무’ 갑질 논란이 한창일 때 기업의 위기관리 능력을 칼럼에 쓴 적이 있다.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 차녀의 ‘물세례 갑질’ 사태와 판박이다. 대한항공 사태는 도덕적 비난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총수 일가에 대한 형사처벌은 물론이고 경영 퇴진 요구로 번지고 있으니 말이다. 대한항공의 ‘자업자득’ 과정을 보며 굳이 옛 칼럼을 다시 소환한 이유다.

기업 리스크 관리의 첫 단계는 위기 식별과 초기 대응이다. 위험의 경중을 정확히 인지하고 발빠르게 대응해야 한다. ‘물세례 폭로’ 이후 대한항공의 첫 반응은 “물컵을 던진 건 아니고 바닥에 떨어뜨려 물이 튀었다”는 것이었다. 가해자로 지목된 조현민 전 전무는 아무 일 없다는 듯 국외로 나갔다. 짐작건대 총수 일가의 행태를 잘 알고 있는 회사 내부자들에게 이런 정도는 갑질 축에도 끼지 못했을지 모른다. 총수 일가라는 ‘최고 존엄’ 앞에서 기업의 위기식별 기능이 퇴화한 것이다.

리스크 관리에 필요한 건 투명성이다. 우선 사실관계를 명확히 파악하고, 외부에 공개할 땐 숨김이 없어야 한다. 수위를 조절하는 꼼수는 외려 역풍을 맞기 십상이다. 웬만한 대한민국 기업이면 다 아는 위기대응 매뉴얼이다. 대한항공은 달랐다. 거래처 사람들과 만나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일인데 “총수 일가의 사생활”, “알 수도, 확인할 수도 없다”는 말만 늘어놨다. 지금 와서 보면, 공식적인 진상조사를 할 의지도 방법도 없었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직원들이 아는 건 세상이 다 안다’는 게 요즘 기업들 인식인데, 대한항공은 손으로 하늘을 가린 채 잠잠해지기만을 기다렸다. 드러난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으니 제2, 제3의 갑질과 비위 행태 폭로가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열흘 만에야 두 딸을 사퇴시켰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리스크 관리의 마지막 단계는 사후 조처다. 여론의 기대치를 웃도는 대응책을 내놓는 게 상책이다. ‘그만하면 됐다’는 우호적 여론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 회장은 언론 앞에 나서지 않고 사과문 한장을 덜렁 내놨다. 재발 방지책이라며 내놓은 건, 수십년 동안 자신을 보필해온 최측근을 전문경영인으로 앉힌 것이었다. 들리는 말로는, 회사 법무팀에선 언론의 갑질 보도를 전수조사해 법적 대응을 준비중이라고 한다. 진정성 없는 사과와 미봉책, 하책 중에 하책이다.

재벌 2·3세의 자질 문제는 한진만의 일은 아니다. 기업을 사유물로 여겨 능력 없는 자녀를 고속 승진 시키고, 일감을 몰아줘 성과를 포장하고, 이를 통해 편법으로 재산을 증식시키는 행위가 반복되는 한, 뿌리 깊은 그들의 특권 의식은 어쩔 수 없는 욕망처럼 세상 앞에 그 민낯을 계속 드러낼 것이다. “측정할 수 없으면 관리할 수 없고, 관리할 수 없으면 개선할 수 없다”(피터 드러커)는 경영학의 기본은, 핏줄이라는 이유 하나로 어떻게든 재산과 경영권을 세습하려는 재벌 생태계에선 통하지 않는다.

요즘 대한항공 직원들의 단톡방에선 ‘나도 그들의 갑질과 불법을 알고 있다’는 #미투가 한창이다. 국적 항공사 직원들의 무너진 자존심과 억눌렸던 분노의 목소리다. 경영 정상화를 넘어 경영진 퇴진을 요구하는 데선, 수십년 ‘황제경영’을 이번엔 끝내야 한다는 절박감이 느껴진다. ‘선량한 관리자’를 요구하는 노동자의 ‘선량한 쿠데타’라 칭하면 과도한 해석일까? #위드유, 대한항공!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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