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 주말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와 <라이브>가 요즘 장안의 화제다. <한겨레> 신문을 매일 정독하고 주말이면 사회성 짙은 드라마들을 시청하다 보니, 문득 이런 드라마 장르야말로 한겨레의 진짜 경쟁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한겨레가 이런 드라마들을 경쟁 상대로 삼고 배울 것은 배우면서 신문매체를 변화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잘 만든 한편의 드라마는 조중동 보수신문이나 진보신문, 또는 포털보다도 한겨레의 강력한 경쟁 상대라고 할 수 있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달달하고 재미있는 멜로에다 직장 갑질, #미투운동, 페미니즘을 다루고, 심지어 이번달 한겨레가 특집으로 낸 ‘살인적인’ 스토킹 문제도 나온다. 드라마 속 주인공 ‘예쁜 누나’가 당하는 스토킹은 한겨레가 다룬 정신병적인 살인 범죄 사례에 비해 위험성과 심각성 면에서 더욱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노희경 작가의 <라이브>는 지구대 경찰관들의 애환을 배경으로 여러 이야기가 전개된다. 청년들의 취업난과 생활고, 집단 성폭행 피해자, 생리대 살 돈도 없는 가난한 여고생, 엽기적 살인범의 남겨진 자녀들, 부인의 안락사를 결정짓고 집으로 돌아오는 처량한 노인, 퇴직 후 생활고와 불운을 이겨내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찰관의 불의한 노년 등을 그린다. 한겨레 신문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여기서는 사실이냐 허구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얼마나 설득력 있게 이야기를 풀어내 사람들이 불우한 이웃들과 연대하고, 이들을 위해 실천에 나서게 하느냐가 중요할 따름이다.
■ 한겨레 기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있는 사람’만을 대변하는 언론의 문제가 많이 지적되는 상황에서도 한겨레가 특별히 사회적 약자와 소외 계층, 소수자 편을 들 수 있는 것은 한겨레 기자들이 가지고 있는, 스스로 넉넉지 못한 언론 노동자로서의 정체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한겨레 기자들은 주말극 <라이브>에서 박봉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명감과 정의감에 불타 범인을 잡아내고 피해와 희생을 당한 사람들 편에 서는 선량한 경찰의 모습과 닮았다. <한겨레>는 이달에도 3일 1면 ‘‘삼성 노조파괴 문건’ 6천건 나왔다’를 시작으로, 11일 3면, ‘삼성, 숨진 노조원 유족 ‘거액 회유’…다음날 경찰이 주검 탈취’, 18일 1면 ‘삼성 ‘80년 무노조 경영’ 깨졌다’ 등 삼성 노조와 관련해 거의 매일 크게 보도함으로써 삼성이 노조를 받아들이도록 압박했다. 제주 4·3 70주년을 맞이해 2일 5면 ‘학살·희생 프레임 갇힌 4·3…‘역사의 눈’으로 이름짓자’를 비롯한 5회에 걸친 ‘4·3, 동백에 묻다’ 기획특집 등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의 “4·3 국가폭력 사과…완전한 해결·배상 약속” 천명에 이르는 데에 일조했다.
■ 억울한 사람 1면 주인공 파격…논리적 비약은 주의!
한겨레는 21일 1면, ‘벌금 낼 150만원 없어…노역장 투병인의 비극’ 기사에서 기초생활수급자 50대가 여성 가방을 훔친 절도범으로 노역장에 입감됐다가 죽은 사연을 1면에 올리는 파격적인 편집을 했다. 기사는 이 50대가 심부전 수술을 받고서 입원비가 부족해 의사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조기 퇴원해 나흘 뒤에 미납한 절도 벌금을 대신 갚을 노역장으로 입감됐다가 유치된 지 이틀 만에 사망했다는 안타까운 사연을 전했다. 그러나 기사는 구치소와 법무부, 검찰이 책임을 미루며 법과 원칙을 따랐을 뿐이라고 한다고 비난하고 있으나, 정작 해당 기관이 책임져야 할 근거는 별로 찾아볼 수 없다. 쪽방촌이나 노숙에 비해 노역장 환경이 열악해서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인지 설명이 없고, 50대 본인이 심장병 수술을 이유로 노역장 입감 연기를 요청하는 등의 책임있는 행동을 했는지 따질 필요도 있었을 것이다.
한겨레는 4일 13면, ‘“푹 자고 일하고 싶어…” 웹디자이너의 마지막 소원’ 기사에서 과도한 초과근무를 하던 인터넷강의 업체 직원의 비극적 선택을 크게 다뤘다. 기사는 2013년부터 앓던 우울증이 악화된 장아무개씨가 지난해 8월 회사에 이를 알리고 9월부터 10월초까지 휴직을 했다가 복귀해 잦은 야근과 직장 내 괴롭힘 등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설명한다. 한 젊은이의 비극을 통해 직장 근무시간과 근로환경, 직장 내 잘못된 문화를 개혁하려는 기사의 취지는 충분히 이해된다. 그러나 흔히들 자살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우울증 요인은 생략한 채 부정적인 근무환경이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식으로 서술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 될 수 있다.
■ 생각을 바꾸게 하는 기사
정치 관련 사건에는 흔히 진영적 논리가 기승을 부린다.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의 사퇴 여부를 놓고, 심지어 선관위의 판정에 대해서도 근거 없는 비난과 공격을 하는 일부 언론의 태도는 대표적인 진영적 시각이다. 한겨레는 9일 사설, ‘김기식 금감원장의 부적절한 ‘국외출장 전력’’ 등에서 “이유야 어떻든 국회의원이 국회 예산이 아닌 피감기관 돈으로 출장을 간 것 자체가 부적절했다”고 상식에 입각한 적절한 판단을 했다.
21일 1면 ‘나는 페미니스트’ 기사는 페미니즘을 공부해온 84년생 남자 최승범이 남고생들에게 ‘여성의 삶’을 가르치는 까닭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정치적으로는 다소 극단적인 여성 집단 정도로 치부되던 페미니즘이 사실은 생각의 지평을 넓히는 열린 사고 방법임을 깨닫게 한다. 지난달 31일 1면 ‘‘젠더 감수성’ 배우는 사람들’ 기사도 가정과 일의 균형을 찾고 양육하는 ‘요즘 아빠들’의 사는 모습에서 인식의 전환을 경험하게 한다.
■ 유머가 있는 한겨레는 어떤가
국내 종이신문 구독률이 지난해 처음으로 한 자릿수인 9.9%로 떨어졌다고 한다. 좁은 종이신문 시장에서 다른 신문과 경쟁해 봤자 해답이 나올 리 없다. 드라마든 뭐든 보고 배우며 즐거운 경쟁을 할 수 있는 상대를 골라 보자. 지나친 진지함과 경직됨, 피해의식일랑 떨쳐 버리고 유쾌함과 유머가 있는 한겨레는 어떨까? 마음은 가난하되 경제적으로 부유한 진보신문은 어떠한가? 한겨레의 창의적 변화가 잘 만든 한편의 드라마처럼 구성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최영재 한림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