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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김기식과 공직윤리 / 이재명

등록 2018-04-22 18:12수정 2018-04-22 18:56

이재명
디지털 부문장

오랜만에 ‘공직자윤리법’을 들여다봤다. 공직자 재산을 등록·공개하고, 직무와 관련된 기업에 퇴직 뒤 한동안 취업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 뼈대인 이 법률은 정치인이나 공무원이 사익이나 출세를 위해 공직을 이용하는 행위를 막고자 만들어졌다.

1983년 제정된 뒤 재산등록 대상자를 확대하는 정도의 손질에 그치던 이 법률에 큰 변화가 온 건 2009년과 2011년이었다. ‘이해충돌 금지’ 조항이 도입되면서 공직윤리의 개념이 대폭 강화됐기 때문이다. 이해충돌은 공직자의 업무가 자신의 이해관계와 상충하는 상황을 뜻한다. 공공기관의 기관장이 자기 아들이 지원하는 채용시험의 면접관이 되거나, 도시계획 업무 담당 공무원에게 자기 땅이 개발 후보지가 된 사례 등이 해당한다. 이럴 경우 공익보다 사익을 우선 추구할 개연성이 높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이해충돌 금지의 법 논리는 이런 상황 자체를 아예 만들지 않는 방식을 지향한다. 오해의 소지를 사전에 제거하라는 것이다. 그 밑바탕에는 ‘공정하게 보이는 것’이 곧 공정함이라는 원리가 깔려 있다.

현행 주식백지신탁 제도가 이를 반영한 것이다. 공직자윤리법은 특정 기업의 주식을 대량으로 보유한 이가 해당 기업의 주식 가치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직을 맡고자 할 경우 사전에 주식을 팔도록 정하고 있다. “양심에 거리낌이 없으면 된다”던 공직윤리의 개념이 사익 추구 가능성이 있을 경우 공직에서 원천적으로 배제하자는 쪽으로 확장할 수 있었던 건 숱한 부패사건을 겪고 난 뒤 얻은 사회적 합의였다.

딱딱한 공직윤리의 변천사를 다시 들여다본 이유는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을 둘러싼 파문 때문이었다. 공직자윤리법에 미국식 이해충돌 개념을 가장 먼저, 가장 적극적으로 도입하자고 주장한 곳은 참여연대였다. 참여연대는 1990년대 후반부터 이와 관련된 수많은 모니터 보고서와 자료를 내고 입법활동을 주도했다. ‘참여연대의 산증인’인 김 전 원장이 국회의원 시절 피감기관 돈으로 간 국외 출장이 전형적인 이해충돌 사안임을 미처 인지하지 못했단 사실이 되레 이상할 정도다.

그는 “로비에 흔들릴 사람이 절대 아니라는 자기 확신에 경계심이 풀어졌다”고 했다. 공직자로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자신을 객관화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음을 실감케 한다. 유력 정치인에 대한 로비는 시민단체 활동가와는 차원이 다른 현실도 작용했을 것이다. 권력이 강할수록 이해관계자의 유혹은 집요하고 끈질기다. 부정부패 사건을 되돌아보면 연루자들이 처음부터 거액의 돈을 받지는 않는다. 로비스트는 목표 대상의 경계심을 줄이기 위해 그들의 가장 약한 곳을, 가장 낮은 단계부터 공략한다. 꼿꼿하던 검사가 초등학생 아이의 장난감 선물에 무너지고, 고위공직자가 직원들의 회식비로 찔러준 몇십만원의 촌지에 방어막이 뚫린 사례가 이를 말해준다.

김 전 원장 사퇴의 직접적인 사유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정치자금법 위반 해석이었지만, 국민이 더 실망했던 건 피감기관의 돈을 받아 간 출장이었다. 그것만으로도 공직 수행에 결격 사유가 될 수 있다는 게 국민의 눈높이임을 재확인하게 된다. 공직자윤리법은 “공직을 이용해 사익을 추구하거나 부정한 특혜를 줘서는 안 된다”고 못박고 있다. 이 법은 2016년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제정 이전부터 존재했고 국회의원 역시 이 법 적용의 예외가 아니다. ‘공직을 이용해 사익을 좇은’ 행위인 외유성 출장으로부터 자유로운 정치인은 없다. 때마침 국회의원의 이런 행태를 전수조사하자는 국민청원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적어도 정치권이 김영란법 이전의 사례는 어찌하지 못한다고 변명해서는 안 된다.

mis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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