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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크리틱] 혁명을 겪는 방법(2) / 신현준

등록 2018-04-20 17:26수정 2018-04-20 19:12

신현준
성공회대학교 교수·대중문화 평론가

아직 4월이지만 칼럼을 쓸 시점이 다시 오면 때를 놓치니, 5월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에게 5월은 기억할 것이 유난히 많은 달이지만, 나는 엉뚱한 걸 기억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1968년 5월 혁명, 이른바 ‘68혁명’이다. 5월2일이 정확히 이 혁명이 발발한 지 50주년이다.

사실 이 혁명에 대해 나를 포함한 한국 사람들의 정보, 지식, 실감 등은 그리 깊지 않다. “상상력에 권력을” “일하지 말라”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라” 등의 구호들은 당시 개발도상국에 살던 한국인들에게는 ‘배부른’ 것으로 들렸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가 68혁명의 시위대들을 향해 “너희 아나키스트들!”이라고 소리쳤다는 일화로 인해, 진보적 지식인들조차 이 혁명을 ‘철부지 젊은 애들이 제멋대로 논 것’ 정도로 치부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평가가 조금 바뀌어서 10년 전인 2008년에는 68혁명에 대한 기념이 작은 파장을 일으켰다. 조정환, 안효상 같은 노병 래디컬들은 서적도 출판하고, 강연도 개최했다. 그렇지만 운 나쁘게도 그 시기를 덮친 글로벌 금융위기에 휩쓸린 인상이 강하다.

게다가 68혁명에 대한 ‘디스’ 시도는 여전히 강력해서 서동진은 당시 한 칼럼에서 ‘자본주의의 전환의 소실 매개자(vanishing mediator)’라고 부르면서 단칼에 보내버리려고 했다. 작년에 쓴 ‘68운동이라는 수수께끼: 이율배반으로서의 68운동 분석’이라는 글의 주요 논지도 반복적이다. ‘소실 매개자’란 A와 B를 매개해주고 정작 자신은 가뭇없이 사라진 사건에 대해 사용하는 용어다. 즉, 68혁명이란 구(舊)자본주의와 신(新)자본주의를 매개해주고 자신은 실종되었다는 것이다. 68운동의 주역 일부가 ‘미학적 자본주의’니 ‘힙스터 자본주의’ 등으로 불리는 자본주의의 전환의 주역이 되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유럽에서 68혁명의 유산을 자본주의의 재창조로만 환원하는 논리는 단순하고 일면적이다. 사회운동에 대한 영향을 전혀 논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오늘날 5월의 긴장>이라는 케빈 맥도널드의 평가에 귀가 열린다. 그에 따르면 이 혁명이 준 교훈의 하나는 사회운동의 의제와 방식을 ‘우리를 만드는 것’(creating us)으로부터 ‘타자들과의 조우’(encounter with the other)로 전환시켰다는 것이다. 사족을 붙이자면, 전자가 ‘그들’에 맞서 ‘우리’를 단단하고 거대하게 조직해서 시스템을 전복하려는 것이라면, 후자는 다양한 타자들끼리 우연하고 물렁물렁한 만남(과 헤어짐)을 통해 같이 놀고 어우러지고 싸우면서 시스템을 균열 혹은 오염시키는 것이다.

이 해석이 얼마나 참신한지는 따져봐야겠지만 그가 사용하는 언어는 한국과 동아시아 여기저기서 십수년 전부터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운동에 적합하다. 혁명이란 것을 새로운 유형의 공공적 경험을 조우하면서 사유하는 방법, 감각하는 방법, 행동하는 방법을 바꾸는 것으로 다시 정의할 수 있다면, ‘68혁명 50주년’을 기념하는 대안적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몇달 전 ‘68혁명 50주년 기념’을 후원하는 달력과 엽서 등을 예쁜 ‘굿즈’로 판매하는 곳을 발견했다. 내가 아는 한 이곳은 68혁명을 ‘소실 매개자’라고 해석한 인물이 관여한 곳인데, 얼마 전 어떤 사정으로 문을 닫았다. 소실 매개자의 지식 수입자이자 지속 소비자로 혁명의 과거를 세일하는 일도 쉽지 않은 요즘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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