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안철수 바른미래당 인재영입위원장은 2015년 12월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면서 트위터에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을 올렸다.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는 시의 한 대목에 빗대 자신의 정치적 결단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였다. 그렇지만 이 시의 의미는 사실 그런 것이 아니다. 갈림길에서 어느 길을 선택하든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와 미련, 아쉬움이 남는 것이 인생의 아이러니임을 노래한 것이다.
안 위원장은 2011년 중대한 갈림길에 선 적이 있었다. 한쪽 길 입구에는 ‘서울시장→대통령’이라고 적힌 표지판이 서 있고, 다른 편 길에는 ‘대통령’이라고 쓰인 표지판이 있다. 중간 경유지를 거치는 코스는 정상까지의 거리가 좀 먼 반면에 지름길은 가파르긴 하지만 거리가 짧다. 안 위원장은 정상으로 곧바로 가는 길을 선택했다. 굳이 우회로를 통하지 않고도 산봉우리에 쉽게 오를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였을 것이다. ‘아름다운 양보’도 정상에 오르기 위한 고도의 계산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안 위원장은 최근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당시에 박원순 시장에게 후보 자리를 양보한 이유에 대해 “1000만 도시를 경영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박 시장이 나보다는 준비가 돼 있다고 판단했다”고 답변했다. 그렇지만 그 말은 진정성이 의심스럽다. “1000만 도시를 경영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던 그가 곧바로 “5000만 국가를 경영하겠다”고 나선 것이 이를 웅변한다. 안 위원장은 서울시장 후보를 양보한 뒤 곧바로 대선 준비에 들어가 이듬해 파죽지세로 대통령 출마 선언을 한다. 인구 1000만 도시를 경영할 준비가 안 돼 있다는 겸손함과, 아무런 정치적 경험도 없이 5000만 국가를 경영하겠다고 나선 자신감 사이의 간극이 너무나 깊고도 크다.
안 위원장은 7년 뒤 다시 갈림길을 마주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중간 경유지를 거쳐 정상으로 향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 길이 여러모로 정상에 오르는 데 유리하다고 판단한 결과일 것이다. 안 위원장은 “그때는 박 시장이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는데, 지난 7년간 잘하지 못했다. 지금 내가 나서는 게 책임지는 자세다”라고 말했다. 그가 그때 서울시장을 맡아 경영했더라면 서울시는 확실히 달라졌을까? ‘가지 않은 길’에 어떤 발자취가 남겨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그가 7년 전 선택한 길 굽이굽이에는 그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영어 단어에 네오필리아(neophilia)라는 게 있다. 새로운 것, 신기한 것을 좋아함을 뜻하는 단어다. 번역하자면 ‘새것애호증’쯤 될 것이다. 새로운 물건은 언제나 두근거림과 설렘, 묘한 흥분감을 수반한다. 새로 출시된 신상품처럼 사람도 마찬가지다. 한국 정치사를 돌아보면 우리 유권자들한테는 ‘네오필리아’ 심리가 매우 깊고도 넓게 유포돼 있다. 7년 전 ‘안철수 현상’은 그 절정이었다. 그러나 신선함은 시간이 흐르면 빛이 바랜다. 신선함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무엇일까. 세월의 연륜이 녹아든 안정감과 무게감, 원숙한 품격일까, 아니면 구정치인을 뺨치는 집착과 욕심, 아집일까.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박 시장의 7년 공과에 대한 평가이면서 동시에 안 위원장의 지난 7년에 대한 평가이기도 하다.
안 위원장은 7년 전 정치권에 등장하면서 “현 집권세력의 정치적 확장성에 반대한다”고 못박았다. 그것이 안 위원장의 정치 출발선이었다. 그 기조가 완전히 변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가랑비에 옷 젖듯이 구여권의 정치적 확장에 기여하는 쪽으로 정치적 좌표를 조금씩 이동해온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2012년 대선 때 문재인·안철수 두 사람은 텔레비전 광고 ‘문안인사편’을 통해 “우리는 같은 곳을 봅니다. 같은 꿈을 꿉니다. 같은 길을 갑니다”라고 말했다. 지금 두 사람은 너무나 다른 곳, 다른 꿈, 다른 길을 가고 있다. 꼭 어느 한쪽 탓만을 하기는 어렵지만 정치적 이념이나 지향성의 측면만 본다면 점차 다른 곳, 다른 길을 택해온 사람은 안 위원장이다. 그리고 이제는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김문수 자유한국당 후보와의 야권연대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야권연대는 구여권 정치적 확장을 위한 노력의 결정판이 될 것이다.
안 위원장이 선택한 우회로 안에서도 앞으로 무수한 갈림길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는 끊임없이 한쪽 길을 선택할 것이다. 프로스트의 시처럼 그가 먼 훗날 ‘한숨지으며, 두 갈래 길에서의 선택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고 아쉬움과 미련을 표시하는 일이 없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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