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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정봉주 김어준, 사과하라 / 김지훈

등록 2018-04-01 18:07수정 2018-04-02 15:49

김지훈
책지성팀 기자

“‘미투 운동’ 이전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을 요즘 많이 듣는다. 하지만 정말 앞으로 세상이 얼마나 달라질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성의 권리를 요구하는 운동엔 언제나 반격이 뒤따랐다. 정봉주 전 의원 사건은 미투 운동의 열기가 뜨거운 그 한복판에서 이미 반격이 이뤄지고 있음을 노골적으로 보여줬다.

정봉주, 그리고 김어준 등 그의 주변 인물과 지지자들이 이번 사건에서 보여준 모습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피해자 ‘안젤라’(가명)의 폭로가 신빙성 있다는 점은 그가 정봉주를 음해할 동기가 없는 점, 사건 직후 주변인에게 피해 사실을 언급한 이메일을 보낸 점 등으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먼저 당일의 카드 사용과 통화 내역, 지인의 기억 등 근거자료를 확인해보는 노력을 하는 대신, 사건을 보도한 매체를 고소하고 자신을 피해자로 만드는 프레임을 짜는 데 급급했다. 사안이 진실공방과 세력싸움으로 흐르자, 그의 지지자들도 피해자 신상털이에 나섰고, 김비오 같은 이는 정봉주의 무고에 1억원을 걸고 ‘금력시위’를 벌였다.

가장 용납하기 어려운 것은 끝끝내 피해자에게 사과하지 않은 정봉주의 태도다. 민국파 같은 동행한 사람도 기억하는 성추행 장소 방문 사실을 지금도 기억하지 못하겠다는 말 자체가 별로 신뢰가 가지 않는다. 설령 그 말을 믿어준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방문 사실이 확인된 지금도 피해자의 기억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사과하지 않는 태도는 납득하기 힘들다.

그가 사과하지 않는 것은 정계 복귀를 위한 사전 포석일까. 그래서인지 “자연인으로 돌아가겠다”는 그의 말이 영구 정계은퇴 선언으로 들리지 않는다. 만에 하나 그가 몇년의 자숙 기간으로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아 용서를 받을 수 없으니) ‘자신의 죄를 스스로 사하고’ 정계에 돌아온다면, 피해자들의 고통스러운 고백으로 이룬 미투 운동의 성과 일부를 무로 돌리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란다. 그가 이 사회에 해줄 수 있는 마지막 기여다. 자신에게 부과되는 책임조차 감당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책임지는 정치인을 하겠다는 것은 모순이지 않나.

김어준씨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자신이 진행하는 <에스비에스>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서 자신과 특수관계에 있는 정봉주 쪽에서 제공한 사진을 가지고 정봉주 쪽의 알리바이를 뒷받침하는 취지의 보도를 했다. 지상파 방송을 사유화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행동한 것이다. 그 보도는 이후 제작진이 공식 사과했듯이 “사건 전체의 실체에 접근하려는 노력이 부족하여 결과적으로 진실 규명에 혼선을 야기한” 보도였고, 제작진은 시청자와 피해자에게 사과했다. 하지만 김씨는 사과하지 않았다. 저널리스트는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실수를 인정하고 개선하는 사람이다. 그가 저널리스트이길 스스로 거부한다면, 그 역할을 수행할 자격이 없다.

두 사람을 비판하는 글을 쓰는 건 부담스러운 일인데, 나도 그의 지지자들에게 어떤 해를 입지 않을지 걱정이 된다. 제3자인 기자도 이 정도인데, 피해자인 안젤라씨가 겪어야 했던 어마어마한 2차 피해와 심리적 부담감은 어느 정도였을지 감히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그런데도 그가 공직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 공직을 맡는 것을 저지하는 공익적인 목적으로 고발에 나서준 것에 깊은 존경의 뜻을 표하고 싶다. 그의 희생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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