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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민편집인의 눈] ‘한겨레다움’과 ‘한겨레스러움’

등록 2018-03-28 17:43수정 2018-03-28 19:54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이번달 유난히 굵직한 이슈들이 몰렸다. 4월 남북 정상회담과 5월 북-미 정상회담의 극적인 물꼬 트기, #미투 운동으로 인한 유명 정치인과 예술인의 추락,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구속, 헌법 개정 노력 본격화,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조짐, 시진핑·푸틴 장기 독재 체제 구축 등 국내외 사회구조를 흔들 만한 중요 의제들이 쏟아졌다. 한겨레 보도는 다른 경쟁 신문에 비해 잘한 것일까? 한겨레는 최선을 다한 것일까? 무엇보다 한겨레가 ‘한겨레다운’ 역량을 발휘하여 주도하는 의제들이 눈에 띈다. 한겨레는 올해 들어 ‘새로 쓰는 헌법 2018’ 연속기획 등을 통해 개헌 의제를 주도해왔다. 청와대가 지난 20일부터 사흘간 공개한 대통령 개헌안의 주요 내용들은 대부분 한겨레가 이미 취재, 보도한 것들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구속, 강원랜드 채용비리 폭로 등 비리 및 적폐 척결 관련 사안은 한겨레의 특종 또는 집요한 탐사보도가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한겨레는 13일 1면 ‘댓글공작 경찰, 보수단체 7만명 동원도 계획’ 기사 등을 통해 이제 경찰 댓글공작 의혹을 파헤치고 있다.

사회변혁의 물결처럼 일고 있는 #미투 운동에 대한 한겨레 보도는 약자의 편에 서서 남성중심사회에서 은폐돼온 권력과 폭력, 차별을 고발하고 있다. 한겨레는 1일 1면 ‘거대한 물결을 거스를 순 없다’, 9일 1면 ‘“여성과는 일 안 한다” 미투에 삐딱한 사회’, 2일 사설 ‘#미투는 일터와 일상의 민주주의를 요구한다’ 등에서 훼방과 반동 움직임을 경계하면서 올바른 방향에서 #미투 운동을 통한 사회개혁을 추동했다. 여성, 장애인, 저임금 노동자, 비정규직, 독거노인, 탈북자, 다문화가족 등 소수 약자 보도 역시 한겨레다운 정의로움이 살아 있어서 좋다.

■ ‘신문 안 보는 시대, 미디어로 살아남기’

그런데, 이렇게 ‘한겨레다운’ 정의로운 기사들이 넘쳐나는 한겨레를 왜 사람들은 떠나고 있는 것일까? 왜 안티 한겨레가 생기는 것일까? 이종규 참여소통에디터는 9일 23면 ‘신문 안 보는 시대, 미디어로 살아남기’ 칼럼에서 신문 구독자의 급속한 이탈에 관한 고민들을 토로했다. 칼럼에서 인용한 대로, 국내 종이신문 이용률은 2010년 52.6%에서 2017년 16.7%로 급감했다. 여기에 국내 뉴스시장은 포털과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사이비언론 조직과 개인에 의한 사이비 뉴스, 가짜 뉴스가 판치는 새로운 뉴스시장으로 사람들이 몰려갔다. 전통적인 신문과 방송을 이용하고 진지하게 토론하고 얘기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온라인 네트워크로 이주, 몰려다니면서 공격과 비방, 혐오와 저주의 언어를 퍼붓는 ‘분열적 군중’의 일원이 되곤 한다. 대단히 무질서한 상태, ‘시스템이 망가진’ 공론장 한가운데에 한겨레가 놓여 있는 셈이다.

이렇게 훼손된 공론장에서는 가짜 뉴스가 진짜 뉴스를 밀어내고, 선정주의가 정의로움을 압도한다. 중요한 뉴스, 정의로운 보도는 진지하게 논의되기는커녕 화제가 되지 못한다. 거기에다 약간이라도 논리적인 하자가 있는 기사, 근거가 희박한 주장, 사실 확인에 실패한 기사, 오보와 편집 실수들이 있으면 이를 찾아내 과도한 비난과 비아냥거림을 퍼붓는다. 여기에 기자들의 무절제한 감정 표출, 신문사 내부 조직의 갈등과 분열의 노출은 굶주린 분열 군중의 게걸스러운 먹잇감이 된다. 한겨레도 이런 경험에서 예외는 아닐 것이다.

■ ‘사랑도 지겨울 때가 있다’

신문 구독이 줄고 안티집단이 생겨나는 데는 외부적인 요인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미디어환경이 상전벽해처럼 바뀌고 사람들의 생각과 정서도 변화하는데, 한겨레의 기사 쓰기와 신문 만들기는 ‘어제 한 일’을 오늘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시민편집인으로서 지난 1년간 한겨레를 꼼꼼히 읽어온 필자는 사회개혁을 이끄는 정의로운 신문, 한겨레를 재확인해서 좋았지만, 내외부에서 지적돼온 신문의 문제점은 그다지 개선되지 못해서 아쉬웠다. 한겨레는 여전히 ‘읽기가 힘들다’ ‘읽고 배울 거리가 많지 않다’ ‘논조가 정해져 있다’ ‘기획기사는 도식적일 때가 많다’는 인상으로 남는다.

한겨레는 가난한 청년 이야기를 자주 다룬다. 19일 1면 ‘한끼 2500원…청춘이 ‘스튜핏’인가요’, 21일 1면 ‘빚 80%가 학자금…반전 없는 ‘적자 청춘’’ 등의 기사들은 독립적 경제주체로 이행하려는 청년들의 팍팍한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헬조선’을 살아가는 한국 사회 청년들의 삶을 한달치 영수증을 통해 살펴보는 나름 참신한 시도였다. 어려운 처지의 청년들 이야기는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 하지만 이미 알려진 ‘헬조선 청년들’의 어려운 현실 이야기에 그쳐 답답하다. 가령 ‘이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어떤 희망이 있을 수 있는가? 우리 사회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로 이어지지 못해 아쉬움을 남긴다.

2일 1면 ‘‘17번 화장로’ 아무도 울어주지 않았다’ 기사 등 ‘고독사를 위한 권리장전’ 기획기사들은 고독사 문제를 진지하게 접근했지만, 5일 8면 ‘동네이웃·집주인이 손 내밀자…‘단절된 문’이 열렸다’는 식의 다소 싱거운 해결로 마무리해 버린다. 13일 8면 ‘돌봄노동 전문성 중요한데…“공짜 자원봉사” 왜곡된 시선’ 등 ‘값진 돌봄 값싼 대우’ 기획기사들도 돌봄 서비스의 가치를 조명하는 기획이었으나, 그다지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사랑도 지겨울 때가 있다’는데, 아무리 좋은 의도라 하더라도 반복적이고 도식적인 기획들은 무디어진 독자들에게 매력으로 작용하지 못한다.

최영재 한림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최영재 한림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 독자와 함께하는 ‘서비스 저널리즘’ 혁신을!

지금 한겨레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그것은 한겨레 중심, 한겨레 기자 중심으로 기사를 만들어 독자와 소통하려 들기 때문이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한겨레가 가르치려 든다’ ‘한겨레스럽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일 것이다. 무엇보다 독자들은 ‘배려받았다’ ‘서비스받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언제든지 접속해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매체가 넘쳐나고 정보와 지식이 홍수를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더 독자의 마음을 헤아려야 할지 한겨레가 더욱 치열하게 고민했으면 한다.

최영재 한림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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