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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개헌의 목적: 사법부 독립과 법관 자치 / 박경신

등록 2018-03-27 18:32수정 2018-03-27 19:03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오픈넷 이사

개헌의 목적으로서 제왕적 대통령제 해체, 사법부 독립, 지방분권 확보 등이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입법으로 달성할 수 있는 것을 힘들게 헌법으로 개정한 후에도 실제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법률에 변화가 없다면 개헌은 그야말로 ‘쇼’가 된다. 지방분권의 예를 보면, 지자체를 ‘지방정부’라고 바꿔 부르는 것보다 중앙정부가 지방 행정조치를 직접 취소할 수 있도록 하는 지방자치법 제169조를 개정 내지 폐지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

물론 개헌으로 장래의 논의 지평에 변화를 가하여 법률상의 변화들이 발생하는 사상적 토대를 세울 수 있다. 입법은 정치적으로 어려우니 더 높은 추상의 차원, 즉 헌법에서 동의를 얻고 그 동의를 기반으로 법률 개정 논의를 진행하는 것이다. 현재 대통령 개헌안에서 ‘국회의 의석은 투표자의 의사에 비례하여 배분해야 한다’는 조항은 그런 ‘신의 한수’일 수 있다. 개정이 어려운 선거법의 비례대표제를 강화할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왕적 대통령제의 변화 없이 입법부가 이런 변화를 일궈낼 수 있을까?

또 하나 가능성은 개헌이 사법부의 논의 지평에 영향을 주는 경우다. 미국의 경우, 노예제 존속을 두고 다툰 남북전쟁이 끝난 후 그 성과를 헌법에 포함시키면서 수정헌법 제14조 평등보호 조항이 제정되었고, 그 이후에 수많은 인종차별적, 성차별적 법제들이 위헌 결정을 통해 폐지되는 근거가 되었다. 개헌이 사법부의 논의 지평에 심대한 변화를 가하여 사회 전체적인, 그리고 장기적인 변화를 일궈낸 것이다. 마지막으로, 위헌 결정 없이도 즉 법의 외피가 바뀌지 않아도 동일한 법의 새로운 해석과 적용을 통해서도 법의 실질이 바뀔 수 있고, 개헌은 그런 변화의 문헌적 근거가 될 수 있다.

여기에 이 글의 동기가 있다. 이와 같은 변화의 전제조건은 건전한 사법부의 존재이다. 즉 헌법에 담긴 우리들의 열망을 읽어내되 우리들 다수의 욕심에 휩쓸리지 않고 소수에게도 공정한 원칙들을 도출해내는 독립적인 사법부이다.

2018년 현재, ‘사법부의 독립’은 사법부라는 집단을 외부 권력으로부터 밀폐하는 것보다는 개별 재판이 독립적일 것, 즉 법관 독립을 더 요구한다. ‘대법원장으로부터의 법관의 독립’이라는 면에서 현재 대통령 개헌안은 국회 개헌특위 권고안보다 나쁘다. 국회안은 전국의 모든 법관들이 참여하는 법관회의가 대표들을 선출하고, 이들이 참여하는 ‘사법평의회’가 대법관들을 임명하고, 그 대법관들이 대법원장을 호선하도록 하였다. 이렇게 되면 대법원장의 권력은 평판사 집단에서 나오기 때문에 위에서 평판사들에게 압력을 행사할 수 없게 된다. 국회안의 ‘사법평의회’에 국회 임명 위원을 다수로 만든 부분은 반드시 고쳐야 하지만, 적어도 ‘법관 자치’라는 대전제 속에서 ‘제왕적 대법원장’은 사라진다. 그러나 대통령안은 법관인사위원회를 새롭게 제안할 뿐 그 구성을 어떻게 사법평의회처럼 민주적으로 만들지에 대한 내용이 빠져 있다. 게다가 대통령이 계속 대법원장을 직접 임명한다. ‘제왕적 대법원장’이 존속할 가능성이 높다.

사법부를 강건하게 세우지 못하면 제왕적 대통령제의 완화라는 개헌 목적에도 영향을 준다.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에서 대통령을 견제할 후보 권력은 사법부이다. 사법부 수장의 권력을 강화하는 것은 법관 독립이라는 시대 사명에 어긋나므로 결국 법관회의처럼 판사 집단 전체를 민주적으로 대변하는 기구가 대통령에게 맞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유럽이나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법관 독립에 대해 아무런 대책이 없이 70년을 버텼다. 이번만큼은 시정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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