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금융팀장 2년여 전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청년들의 ‘출발선’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취재한 적이 있다. 취재팀은 청년들의 주거부담을 살펴보기 위해 갓 결혼한 신혼부부 두 쌍을 비교해봤다. 맞벌이를 하는 이들의 월평균 근로소득은 가구당 400만원과 600만원 정도였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양쪽 모두 도시근로자 2인가구의 평균소득을 웃도는 수준이다. 결정적으로 이들의 출발선을 갈라놓은 것은 ‘집’이었다. 월 400만원을 버는 부부는 10평(33㎡) 남짓한 다세대주택의 전세 대출금(1억4천만원)을 갚느라 소득의 절반가량을 쓰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이 부부의 최대 고민은 전셋값이 2년 뒤 얼마나 뛸지 모른다는 불안감이었다. 반면에 월 600만원을 버는 부부는 부모로부터 30평대(99㎡) 아파트 전세금 4억원을 받았다. 약간의 대출을 끼면 금세 ‘내집 마련’이 가능해 보였다. 주거부담의 차이는 당장 두 부부 간 소비지출 여력을 갈라놓았고 갈수록 자산 격차도 크게 벌려놓을 것으로 짐작됐다. 심지어는 출산 계획도 바꿔놓고 있었다. 실제로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른 시점에서 주거 계획을 세워야 하는 청년들은 부모 지원 없이는 기성세대가 해온 평범한 삶의 이행 경로를 밟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오죽하면 올해 초 가상통화 투자 광풍이 불었을 때 “대한민국에서 어쩌면 집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는 청년들의 자조 섞인 이야기가 나왔으랴. 이런 현실은 최근 ‘토지공개념’을 명시한 개헌안을 두고 촉발된 이념논쟁을 무색하게 만든다. 청와대의 개헌안 128조(국가는 토지의 공공성·합리적 사용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특별한 제한을 하거나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가 ‘사회주의 헌법’이라며 보수 야당이 색깔공세를 펴고 있지만, 부동산 자산 격차가 초래하는 불평등에 눈과 귀를 닫겠다는 소리로만 들린다. 토지는 다른 재화와 달리 공공성이 강하다. 개개인에게 소유권이 있더라도, 국가가 사회 인프라를 깔기 위해 개발해서 자산가치를 높여놨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토지는 소수 기득권의 배를 불려주는 대신, 전체적으로는 주거불안이라는 고통만 안겨주는 역할을 해왔다. 집을 두 채 이상 보유한 다주택 가구는 전체 가구의 15%(2016년) 정도인데, 이들이 전체 주택의 60% 이상을 갖고 있다. 자기 집에서 발생하는 귀속임대료까지 감안하면 2007~2015년에 해마다 450~500조원(GDP의 37.8%)의 부동산 소득이 발생했다는 추정 분석(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교수)도 있다. 공교롭게도 관련 개헌안이 나온 21일은 수억원대 시세차익을 보장한다는 ‘로또 아파트’로 떠들썩했던 ‘디에이치자이 개포’(서울 강남구 일원동 개포주공8단지 재건축 아파트)의 청약 접수일이었다. 수억원대 시세차익이 보장된다는 기대감에 ‘로또’로 불리며, 평균 25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특히 이 아파트의 분양가는 대부분 9억원을 넘어 중도금 대출이 되지 않기 때문에 ‘부자들만의 리그’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미 당첨 결과가 나온 특별공급 물량 가운데선 20대 이하 ‘금수저 청약 당첨자’가 14명이나 된다. 이런 속에서 평범한 서민들의 관심은 소모적 이념논쟁보다는 토지공개념을 현실에서 체감할 수 있을 것인가에 있다. 개헌이 되더라도 보유세 강화, 개발이익 환수 등 각종 제도와 법률로 이를 구현해나가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이다. 역대 정부에서도 여러차례 시도한 일이지만 거센 조세저항 등에 부딪혀 수포로 돌아간 적이 더 많았다. 오랜 세월 고착화된 부동산을 통한 자산축적의 관습은 당장의 부동산 부자뿐 아니라 그 대열에 편입하고 싶은 잠재적 계층까지 저항을 넓혀온 탓이다. 지난 연말 보유세 개편 카드를 꺼내든 현 정부 역시 시장과 여론의 눈치만 살피고 있던 중이었다. 따라서 이번 개헌안이 후퇴 없이 추진되는 한편, 이를 발판으로 우리 사회에서 부동산 자원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배분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질 필요가 있어 보인다. 적어도 불로소득으로 수십억을 챙길 수 있는 사회, 초등학교 어린이들의 꿈이 건물주인 사회, 부동산으로 계급이 나뉘는 사회는 탈피해야 하지 않는가.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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