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에디터 2012년 11월 공산당 총서기에 취임해 중국 최고지도자가 된 시진핑은 첫 지방 시찰로 광둥성을 방문해, 당 내부 관계자들에게 “왜 소련이 해체되고 공산당은 붕괴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시진핑은 “그들은 이상과 신념을 포기했기 때문”이라며, 당이 쇄신하지 못한다면 소련 붕괴가 중국에서 재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시진핑 주석이 처음부터 인민들을 향해서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중국몽’의 화려한 비전을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당 내부를 향해서는 위기감을 경고해온 것은 의미심장하다. 시 주석은 자신이 위기를 돌파할 ‘난세의 영웅’임을 강조하며 ‘시진핑 1인체제’ 권력 강화의 정당성에 대한 컨센서스를 만들어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강조해온 것도 ‘소련 붕괴’의 교훈이다. 푸틴은 “소련의 붕괴를 안타까워하지 않는다면 심장이 없는 사람이며, 소련이 예전 모습 그대로 재창조되기를 바란다면 두뇌가 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해왔다. 푸틴은 소련 해체 뒤 미국 등 서방이 강요한 충격요법으로 러시아 경제가 만신창이가 되고 국제적 지위는 추락했던 재앙으로부터 자신이 나라를 구해내 강대국으로 부흥시켰음을 자랑한다. 시진핑과 푸틴이 개헌과 4번째 대선 승리를 통해 스트롱맨 장기집권 시대를 확고히 다진 것은 ‘역사의 귀환’이다. 18세기 이후 서구 제국주의와의 경쟁에서 패배했던 옛 유라시아 제국들의 부활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서구에 괴롭힘 당한 피해자로서 ‘치욕의 시대’를 겪었다고 강조하지만, 청 제국은 몽골과 위구르, 티베트 등 소수민족들을 정복해 광활한 영토를 넓혔고 러시아 역시 원주민들을 죽이거나 몰아내고 시베리아를 정복했다. 좀더 직접적으로는 1989~1991년 사회주의권 몰락과 냉전 종말 이후 기고만장했던 미국식 세계질서에 대한 분노와 반감이 이들의 에너지가 되고 있다. 시진핑은 서구식 민주가 아닌 레닌주의적 이데올로기와 중화민족주의 강화를 통해 사회를 강력하게 통제하고, ‘국가가 통제하는’ 시장 중심 경제개혁을 달성한다는 청사진을 추진해왔다. 푸틴 역시 서구의 제재와 개입을 비난하며, 스탈린 시대와 러시아 제국의 유산, 러시아 정교를 활용한다. 이들의 정당성이 강렬한 민족주의에 있기 때문에 대외정책은 더욱 강경해질 것이다. 서구식 자유민주주의의 최종적 승리로 “역사의 종말”이 왔다는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예언과 달리, 미국의 패권 아래 강요된 신자유주의하의 극심한 빈부격차와 일자리 없는 성장은 절망과 분노의 에너지를 키웠다. 미국과 유럽을 휩쓸고 있는 극우 포퓰리즘 정치와 흔들리는 미국 패권의 또다른 일면이 시진핑과 푸틴의 민족주의에 기반한 신권위주의 통치다. 냉전 이후 미국식 모델의 실패에 대한 ‘역사의 복수’다. 반면 냉전이 끝나던 1989~1991년 한반도는 냉전 탈출의 기회를 잃어버린 채 남겨졌다. 노태우 정부는 탈냉전의 흐름을 읽고 북방정책을 추진해 소련·중국과 수교했고,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1991), 남북기본합의서(1992),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으로 나아갔으나, 한반도를 둘러싼 어떤 당사자도 평화체제에 대한 원대한 로드맵을 구상하고 실현하지 못했고 결국 북핵 위기가 본격적으로 악화되었다. 냉전 이후 체제가 균열을 일으키는 지금 한반도는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맞이했다. 신냉전과 냉전 극복의 상반된 두 흐름이 한반도 주변에서 숨가쁘게 경쟁하고 있다.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이란 과제를 우리가 해결하지 못하면, 한반도는 신냉전, 신제국적 힘에 갇혀 험난한 미래를 겪게 된다. 반면 이 과제를 풀어낸다면 한반도는 동북아 평화의 완충지대로서 새 질서의 축이 될 수 있다. 4·5월의 외교로 한반도의 봄을 만들어가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역사적 기회일지 모른다.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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