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팀 기자 누구나 다 아는 윈스턴 처칠이 아닌 네빌 체임벌린 전 영국 총리가 한국 정치에 강제 소환되는 때가 있다. 보수가 정권을 내주고, 진보가 대화에 나서고, 북한이 호응할 때다. 이 삼박자가 맞아떨어지면 2차 세계대전 발발 직후인 1940년 11월 세상을 떠난 체임벌린은 제삿날도 아닌데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지구 반대편으로 불려나와 부관참시 당한다.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역사적인 첫 남북정상회담을 한 2000년에도 그랬다. 6·15 남북공동선언 뒤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낭만적 대북관을 경계해야 한다며 체임벌린이 히틀러와 만나 평화에 사인한 1938년 9월의 뮌헨회담을 언급했다. 회담 11개월 뒤 2차 세계대전이 터졌듯이 대화로는 북한 도발을 막지 못한다는 것이다. 체임벌린이 영국 하원의 ‘프라임 미니스터 퀘스천’(PMQs)을 여의도에서 기대했다면 뮌헨 못지않은 착각이다. 햇볕정책을 계승하고 2차 남북정상회담을 한 노무현 정부 때도 보수야당은 체임벌린을 불러낸 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네 죄를 네가 알렷다’ 치도곤부터 했다. 그렇게 노무현 대통령은 제2의 체임벌린이 됐다. 1차 세계대전에서 백만명을 잃은 영국이 더 이상의 전사통지서를 원치 않았다거나, 전쟁을 수행할 경제·군사적 상황이 아니었다거나, 오히려 뮌헨회담으로 시간을 벌어 레이더 방공망과 공군력을 어느 정도 갖출 수 있었다는 다른 평가, 복잡한 컨텍스트는 낄 자리가 없다. 어설픈 영국 신사가 독일 야바위꾼을 만나 속옷까지 탈탈 털렸다는 보수의 체임벌린 서사는, 협상을 해봤자 적국만 도와준다는 단순 플롯의 전쟁물 시나리오로 각색된다. 이명박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돈봉투까지 주려 했고, 박근혜 정부는 통일은 대박이라고 했다. 그 이름만 나와도 보수야당이 거품 무는 황병서와 김영철이 보수정권 시절 남쪽을 드나들었지만, 체임벌린은 여의도로 불려 오지 않고 런던에서 9년의 안식을 누렸다. 진보가 하면 종북이고 보수가 하면 대화이기 때문이다. 이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3차 남북정상회담이 코앞이니 체임벌린은 알람 맞춘 듯 벌떡 일어나 각 잡고 앉을 판이다. 동남풍 따위로 전쟁하는 <삼국지>를 즐겨 인용하던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지난해 말부터 체임벌린 교훈을 입에 달기 시작했다. 단번에 2천년 가까운 인식론적 단절이니 그의 정치적 비유도 제법 현실적으로 바뀌었다. 다만 체임벌린에 이어 총리가 된 처칠을 다룬 영화 <다키스트 아워>를 본 뒤 처칠 빙의가 깊다. 자기 당에서도 미움받던 처칠이 전시내각 지하벙커에 홀로 앉아 전 유럽의 평화를 고뇌하는 모습이 자신과 겹쳐졌던 모양이다. 그렇지 않다면 청와대 여야 5당 대표 회동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외교·안보 분야 참모 한 명 없다”며 때아닌 장탄식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오랜 기간 집권하고도 안보 경보음 울릴 정치적 레이더 하나 남지 않았다니, 방산비리 수준인 보수정당의 전력 부실을 노출하는 우를 범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홍 대표는 요즘 참모 하나 없이 페이스북을 상대로 나홀로 전시내각 놀이를 하는 것 같다. 협상과 대화, 군사적 선택의 갈림길에 서야 했던 서구 정치지도자들은 뮌헨회담이 남긴 정치적 트라우마와 80년째 싸우고 있지만 홍 대표는 그럴 이유가 전혀 없다. 홍 대표가 맞다면 그건 한반도 전쟁이니까. 여의도의 처칠이라면 그 유명한 하원 연설을 이렇게 바꿀지 모르겠다. ‘이때가 가장 웃긴 시절이었다’(This was their funniest hour).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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