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적인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는 대결이 열리기 전부터 상대를 자극하는 발언으로 요란한 심리전을 펼쳤다. 1964년 체력과 기량 등에서 월등한 소니 리스턴을 링에 눕히며 세계챔피언에 오른 알리의 비결은 상대에 대한 철저한 탐구였다. 상대에 대한 인터뷰를 모두 읽고 침대에서도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할지 연구해 그의 심리적 약점을 파악하고 경기 전엔 말로 미친 듯이 도발했다. 상대가 링에서 알리의 몸놀림보다 그의 입에 주목하도록 만드는 전략이었다.
병법의 핵심인 ‘지피지기 백전불태’는 적과 아군의 취약점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능력이 승패를 가른다는 걸 알려주는 말이다. 소프트웨어 분야에는 ‘제로데이(Zero Day) 취약점’이 있다. 소프트웨어의 보안 결함이 발견돼 노출된 상태로, 이를 악용한 악성코드와 해킹이 우려되지만 아직 보안 패치가 만들어지기 전의 보안 위협을 말한다.
인공지능과의 공존과 경쟁 상황에 대한 논의가 늘고 있는데, 감정인식 기술의 발달은 새로운 차원의 인간 취약점을 드러내고 있다. 국외에서 아이보, 페퍼, 지보, 코즈모 등 소셜로봇 시장이 활성화하면서 업체들은 사용자가 로봇과의 관계를 심화하도록 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소셜로봇 코즈모를 개발한 개발사는 “사용자에게 깊은 감정적 유대를 형성하기 위해서, 돌봄을 게을리하면 사용자가 죄책감을 느끼도록 설계했다”고 밝혔다.
로봇공학과 인간공학은 소셜로봇 개발을 위해 인간 심리와 감정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감정적 취약점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감정적 존재로서 사람이 기계에 ‘취약점 노출’ 상태가 된 것이다. 인간의 취약점이라고 말할 수 있는 본능적 반응의 메커니즘을 기술과 도구가 활용하는 상황에 대한 인지가 요구된다. 향후 사라질 직업이 많지만, 인간의 취약점을 연구하고 대비책을 만들어내는 영역의 일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본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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