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겨울올림픽이 기대 이상의 큰 성공을 거두었다. 막바지 북한의 참여 결정으로 최고의 ‘평화올림픽’이 되었고, 고된 훈련과 온갖 역경을 이겨낸 선수들이 만들어낸 성공 또는 실패 신화는 지구촌 사람들을 함께 웃고 울게 했다. 조직위와 자원봉사자, 지역주민들의 친절과 봉사는 ‘문제가 없어서 문제’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올림픽 행사 자체와 참가 선수, 관중들이 이렇게 성숙한 모습을 보인 반면, 언론의 올림픽 보도가 성공적이었는지는 의문이다. 북한의 올림픽 참여를 둘러싸고 국내 일부 정파적 언론들은 공격과 분열 보도에 골몰했고 자국 선수 위주의 보도, 금메달 집착 성과주의 보도, 감정 자극 선정적 보도의 문제점도 여전했다.
한겨레는 남북 단일팀 구성과 북한 응원단 활동 등 ‘평화 올림픽’과 관련한 내용들을 객관적이고 충실하게 보도했으며, 특히 남북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과정에 관한 단독 보도가 많았다. 또 북한의 올림픽 참여 결정으로 촉발된 국내 정파 간 분열과 외교적 갈등 표출 상황을 비교적 차분하게 보도하는 한편 보수 야당과 언론의 공격과 왜곡, 선정 보도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제동을 걸었다. 올림픽 기간 고정기획물로 신설한 ‘지르메통신’과 ‘알쓸평창’에서 전하는 올림픽 현장스케치 기사들도 흥미롭게 읽을 만했다. ‘김아랑 헬멧에서 세월호 리본 사라진 이유’(21일 디지털판), ‘평창올림픽 돈 주고도 못 사는 세가지’(20일), ‘여자컬링 마늘 대 양파 대결’(24일) 등은 기자의 뉴스 센스가 빛나는 기사들이었다. 그러나 ‘각본 없는 드라마’처럼 전개되는 흥미진진한 올림픽 경기들,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꿈을 이룬 선수들에 관한 ‘진한 감격과 감동의 이야기’를 전하는 데는 뭔가 모자란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 섬세한 스토리텔링이 아쉬웠던 올림픽 보도
이번 평창올림픽에서는 특히 젊고도 어린 선수들이 고된 훈련과 불의의 부상, 실패와 좌절, 상처와 고통 등 저마다 고난의 시간을 이겨내고 꿈을 이뤄낸 이야기들이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한겨레는 22일 2면 ‘전 국민이 “영미~영미~” 평창 최고 인기스타로 떴다’, ‘10년 전 방과후 수업으로 시작한 ‘팀 킴’, 4년 전 소치 대표 탈락 아픔 딛고 결실’, 20일 사설 ‘이상화의 눈물…감동의 ‘평창 드라마’’, 19일 2면 ‘넘어져도 악플에도…의연한 서이라, 메달은 못땄지만…미소 지은 김아랑’, 13일 10면 ‘긴장했다는 클로이 김, 점수 봐선 긴장 안한 듯’, 12일 2면 ‘7번 수술 ‘불운의 아이콘’, 8번째는 ‘불굴의 아이콘’ 되다’―쇼트트랙 임효준의 인생극장’ 등의 기사와 사설에서 역경을 딛고 정상에 오른 대표선수들을 보도했다. 하지만 많은 경우 기사 제목부터 너무나 익숙한 표현이 대부분이었고, 기사 내용도 선수들이 힘겨운 과정과 위기의 순간을 이겨내고 메달을 땄다는 다소 도식적인 구조로 흘렀다. 텔레비전 생중계를 통해 사람들이 이미 경기의 흥미진진함과 감동을 일차적으로 맛본 상황에서 신문은 경기 뒤의 이야기들, 오랜 세월 고된 훈련 과정, 부상과 슬럼프의 위기, 경기에 임하는 긴장감과 실수의 두려움, 경기를 마치고 밀려오는 기쁨과 안도감, 회한 등 고비고비 선수들의 마음을 스쳐가고 되새겨졌을 감정과 정서적 요소들을 섬세한 스토리텔링으로 엮어내는 데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 마음과 정신, 영혼을 울리는 스토리텔링의 힘
김연아 선수 등 금메달 피겨선수들을 키운 브라이언 오서 코치는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위대한 선수는 실패를 통해 성장한다. 제자들이 삶의 기술(life skill)도 배우기를 바란다”고 했다. 쇼트트랙 최민정 선수의 엄청난 스피드는 “훈련도 코치가 짜주는 대로 따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엄청나게 많이, 치밀하게 공부”하는 몰입하고 즐길 줄 아는 ‘재능’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상화 선수는 경기 뒤 태극기를 들고 관중석을 향해 돌면서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고, 인터뷰에서 “전설로 남고 싶었는데 남았죠. 뭐. 저 엄청 수고했어요”라고 했다. 스스로를 칭찬하고 위로할 줄 알고, 그렇게라도 어려운 순간들을 버티고 이겨내는 ‘자기위로법’을 터득했을 이상화 선수가 대단하고 자랑스럽다. 차가운 얼음 위를 달려야 하는 스켈레톤 윤성빈 선수는 어릴 때 추위를 많이 타고 무서워서 스켈레톤을 못 하겠다고 호소하자 어머니는 ‘너의 결정을 존중할 테니 알아서 판단하라’는 믿음을 줬다고 한다. “쇼트 경기를 끝내고 다짐했던 것처럼 넘어져도 벌떡 일어났다”는 남자 피겨 차준환 선수, “후회 마라, 좋았다면 추억이고 나빴다면 경험” 글귀를 되새기며 쇼트트랙 경기에 임한 심석희 선수. 어린 선수들이 극도의 긴장감과 실수의 두려움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안쓰러움과 함께 공감과 감동을 하고, 동시에 어린 선수에게서 배우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감정과 정서, 마음과 정신, 영혼을 건드리고 움직이며, 그 과정에서 깨달음과 배움, 지혜를 터득하게 하는 것이 스토리텔링의 힘이다. 한겨레의 올림픽 기사는 유사한 정보와 이야기 요소를 담고는 있었지만 독자의 깊은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스토리텔링의 힘이 왠지 느껴지지 못했다.
■ 이야기를 ‘듣는 신문’의 시대로
한겨레는 비인기 종목의 경기 규칙, 경기가 밤에 많이 열리는 이유 등도 친절하게 설명했다. 그러나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설명에서 더욱 세심한 배려가 필요해 보였다. 불모지였던 스켈레톤 종목에서 윤성빈 선수는 어떻게 2위와 큰 차이의 1위에 올라설 수 있었을까? 예상 밖의 은메달을 획득한 여자 컬링팀의 저력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27일 9면, ‘평창서 일낸 젊은 피, 베이징도 기대할게’ 기사에서 피겨스케이팅 싱글 차준환과 최다빈, 김하늘 선수가 4년 뒤 베이징올림픽에서 메달 가능성이 있다고 했는데, 가능성은 어느 정도이고 어떻게 가능할까? 평창올림픽 개회식과 폐회식 행사에 대한 평가가 극단적으로 갈리는데, 왜 그럴까? 한겨레에서 앞으로도 이런 궁금증들을 풀어주는 ‘이야기 기사’를 많이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제 ‘읽는’ 신문, ‘보는’ 신문에서 ‘듣는’ 신문의 시대로 가고 있다.
최영재 한림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