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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크리틱] 큰 시대, 작은 사람 / 이명원

등록 2018-02-09 17:30수정 2018-02-09 19:15

이명원
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1980년대와 1990년대의 의미에 대해 숙고해 볼 계기가 있었다. 이 시대의 의미를 직접 물었던 것은 아니다. <1987>, <택시운전사>, <변호인> 등과 같은 영화를 논의하면서 재현의 정치성과 의미화의 문제를 묻고, 1980년대 한국 사회의 성격에 대한 논의를 할 계기가 있었다. 심광현, 이광일, 박영균과의 좌담이 계기였는데, 논의를 진행하다 보니 숙고할 것이 제법 있었다.

가령 이 영화들에 등장하는 대학생들은 어떤 면에서 보자면, 당대 학생운동의 급진적 면모와 다르게 순진하거나 낭만적으로 재현된다. 반면 <1987>의 박처원과 같은 폭력의 담지자들은 매우 역동적인 면모를 보여주어 문학에서의 피카레스크 소설(악당소설)을 닮아 있다. 악당들은 가공할 힘과 풍부한 내면성을 갖는 반면, 이에 대항하는 대학생들은 낭만적 단순화 탓에 캐릭터가 왜소해진 듯한데, 이 영화적 재현의 기묘함은 아마도 보수정권 9년의 문화정치적 함의와 관련해 논의되어야 할 듯했다.

이 좌담의 바로 직전에는 1990년대를 상기할 수 있는 자리에 참석했다. 상허학회에서 주최한 <잡지로 보는 ‘1990년대’론>이라는 심포지엄이었다. 이 심포지엄에서는 <녹색평론> <문화/과학> <키노> <또 하나의 문화> <이프> <문학동네> 등의 매체를 중심으로 논의하면서, 1990년대의 시대적 성격을 묻는 발표자와 토론자의 논의가 이어졌다.

내가 이 심포지엄에 참석하면서 다소 흥미롭게 느꼈던 것은 1990년대를 이 매체들과 함께 체험의 영역에서 수용한 사람들과 문헌을 통해서만 검토할 수 있었던 신진 연구자들 사이의 의미화의 편차였다. 체험 세대들은 해당 매체를 열독하거나 편집했던 자신의 기억을 고백적으로 피력하면서 매체사적 의미와 중요성을 열정적으로 논의했다. 반면 문헌 검토에 기반해 매체 연구를 진행했던 연구자들은 다소는 차갑고 냉정한 평가를 피력했다.

한국의 1990년대는 작가주의에 기반한 시네필리아와 영화산업주의, 과학적 문화론, 급진적 페미니즘, 생태학적 문명 전환, 문학의 진영 해체와 상업주의화 등이 숨 가쁘게 동시적으로 진행되던 시대였는데, 이것이 단지 매체 자체의 차별화 욕망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었다. 동구 및 소비에트 진영의 몰락과 한국 자본주의의 신자유주의화로의 편입, 1990년 민자당으로의 3당 합당을 통한 급진적 민주주의 요구의 보수적 봉합, 1991년 5월투쟁의 갑작스러운 소멸에 따른 거시적인 시대 변동이 대중적 감정 구조와 연동해 나타난 거대한 변화였던 것이다.

‘감정 구조’는 시대적인 것이기도 하고 세대적인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현실에 의해 구조화되는 것이기도 하고, 동시대의 주동 세력들이 적극적으로 구성해가는 것이기도 하다.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객관화하고 의미화하는 과제는 그것이 오늘의 현실을 구성해낸 계기적 기원에 해당되기 때문에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분절된 시간의 계측 단위 속에서 특정한 주관적 기억만을 토대로 시대를 재구성한다면 주관주의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반대로 역사화된 시간의 다층적인 상황과 맥락에 대한 공감능력이 배제된다면, 관찰자들의 객관주의가 항용 초래하듯 당대를 살아갔던 사람들의 가열한 정념과 신념, 행위들을 현재의 관점에서 기묘한 낯섦의 감각으로 차갑게 단순화할 가능성 또한 없지 않다. 큰 시대를 살아냈던 작은 사람들을 점묘하면서도 벽화 그리기를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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