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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지석의 화·들·짝] 시대는 어떻게 바뀌는가(하), 지금부터

등록 2018-02-06 17:45수정 2018-02-06 19:14

신자유주의의 미래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트럼프식 포퓰리즘의 약효가 떨어지고 신자유주의 세계화 체제가 형태를 약간 바꿔 상당 기간 지속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신자유주의가 여러 요동 속에서 빠르게 힘을 잃으면서 자연스럽게 새 체제가 만들어지는 경우다.

1인당 소득에서는 금세기 안에 남이 북을 따라잡을 가능성이 거의 없지만, 지구촌 인구의 절대다수가 중산층 이상의 삶을 누리는 날이 그렇게 멀지 않다. 이런 시대를 ‘신복지국가-다극화 시대’라고 부를 수 있다. 이르면 2020년대 중반, 늦어도 2030년대에는 시작될 시대다.

앞글에서 언급했듯이,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승리하고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국민투표가 가결된 것을 계기로 ‘신자유주의-남북 시대’의 재편기에 강한 제동이 걸렸다. 하지만 지금이 재편기 속 조정기인지, 아니면 해체기의 시작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이는 지배세력의 전략이 분명하지 않은데다 지구촌 민중의 힘이 모이지 못하고 있는 탓이 크다. 이런 가운데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생산력 발전 추세에 대한 논의가 무성하다.

지금 시기의 위상을 파악하기 위한 중요한 열쇠는 트럼프 정부의 성격에 대한 관점이다. 냉전 종식 이후 신자유주의와 남북 갈등을 주도한 나라가 미국이고, 변화의 주된 실마리도 미국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우선 분명한 사실은 트럼프 정부가 추구하는 경제·사회 체제가 기존의 신자유주의와는 다르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는 세계화한 금융자본과 다국적 기업이 주도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기서 세계화 부분을 약화하고, 국제 규범보다 미국의 이익을 앞세우는 경제 국수주의 노선을 추구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신자유주의를 부정하는 듯하지만, 금융자본 및 다국적 기업(특히 군수·에너지 산업)과 트럼프 정부와의 결탁은 이전과 다를 바가 없다.

신자유주의는 지난 수십년 동안 각국 안에서나 세계적으로나 부익부 빈익빈을 강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 결과 주도세력인 ‘세계화한 엘리트’ 층과 일반 대중 사이에 큰 벽이 생겼으며, 이는 트럼프의 집권과 브렉시트의 주요한 배경을 이룬다. 트럼프가 신자유주의를 부정하거나 극복하려면 이 모순 자체를 타파해야 하지만 트럼프는 그럴 의지도 역량도 없다. 대중의 불만을 정치 기반으로 삼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신자유주의의 미래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트럼프식 포퓰리즘의 약효가 떨어지고 신자유주의 세계화 체제가 형태를 약간 바꿔 상당 기간 지속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모순이 아무리 크더라도 다른 선택지가 약하면 이 길로 가기가 쉽다. 다른 하나는 신자유주의가 여러 요동 속에서 빠르게 힘을 잃으면서 자연스럽게 새 체제가 만들어지는 경우다. 지금이 전자 쪽이라면 재편기 속 조정기가 되고, 후자라면 해체기의 시작이 된다.

또 다른 축인 남북 갈등도 전망이 단순하지 않다.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서구 몫이 줄고, 남에 속하는 중국·인도·중남미·동남아·중동·아프리카·러시아 등의 역할이 커지는 것은 확실하다. 관심의 초점은 양쪽 비중이 뒤집혀 서구가 사실상 지배력을 잃는 것이 언제이냐는 점이다. 서구가 세력 전이를 인정하는 순간 남북 관계는 이전과 양상이 크게 달라진다. 그 시기는 2020년이 될 수도 있고 2030년이 될 수도 있으나, 적어도 한 세대 이후까지 멀리 있지는 않다. 2020년대 중반을 넘지 않는다면 지금이 해체기의 시작이고, 2030년쯤이나 그 뒤라면 재편기 속 조정기가 된다.

시대 변화를 결정하는 힘은 여기서도 세 가지가 함께 작용한다. 우선 지배세력의 움직임이다. 이와 관련해 현재 선진국으로 꼽히는 미국·유럽·일본 등이 어떤 전략을 추구하는지가 중요하다. 트럼프 정부는 중장기 전략이 취약하다. 최근 발표한 국가안보전략이나 국방전략, 핵태세 검토 보고서 등에서는 중국과 러시아를 사실상 주적으로 설정하고 ‘도전 불용’ 뜻을 분명히 밝히고 있지만, 실제 행동에서도 이 방침이 엄격하게 관철되는지는 의문이다. 예를 들어 ‘강한 미국’을 앞세우고 군비를 증강하면서도 동맹국과 협력국을 소홀하게 여기는 태도가 함께 나타난다. 게다가 미국의 지도력이 떨어지면 유럽 쪽과의 분열도 커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트럼프 정부의 정책에 비판적인 유럽 나라들 또한 지구촌 전체와 관련해서는 책임감과 의지, 역량이 모두 부족하다.

두번째는 생산력이다. 4차 산업혁명에서 선진국이 앞서갈 것은 거의 확실하다. 특히 미국은 3차 산업혁명 때부터 유지해온 기술적 우위를 갖고 있다. 하지만 지구촌 전체 생산력 증가분의 3분의 2 이상은 남에서 나온다. 신자유주의-남북 시대가 끝나고 새 시대가 시작될 때쯤이면 혁신의 주된 동력 또한 남으로 옮겨질 가능성이 크다. 바꿔 말하면, 그것이 바로 새 시대의 주된 징표다.

가장 중요한 건 민중의 움직임이다. 2008년 경제위기와 빈부 격차 심화 등에서 보듯이 신자유주의의 모순은 커져왔다. 저항하는 민중의 힘도 남과 북을 가리지 않고 축적돼왔다. 하지만 그 힘은 출구를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다. 아랍의 봄을 이끈 힘과 트럼프를 당선시킨 힘은 기존 체제에 대한 저항이라는 본질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는 그 힘이 기존 체제의 청산과 새 체제의 탄생을 이끌 만한 지도력과 비전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사실에 있다. 당분간 지구촌의 요동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새 체제에 대한 전망은 우리에게 더 절실하다. 심화하는 양극화, 취약해지는 인구 구조, 정착되는 저성장 기조 등으로 볼 때 지금 체제는 이미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대안으로 내세운 ‘사람 중심 경제’는 아직 하나의 개념에 그친다. 분명한 것은 어떤 체제든 사회 통합과 경제 활성화를 함께 이룰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남의 약진은 한반도 문제 해결에서 새로운 기회와 위기를 함께 제공한다. 중국의 성장은 단기 또는 중기적으로 미-중 패권 갈등을 심화시킬 것이다. 하지만 두 나라가 타협할 여지는 항상 있다. 핵심은 미국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의 팽창을 어느 정도 용인하느냐에 있다. 어떤 식이든 두 나라가 갈등보다 합의를 추구한다면 한반도 문제에 끼칠 영향은 부정적이지 않다.

중국의 부상은 또한 북한에 대해 개혁·개방 압력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 남북 체제 대결은 이미 끝난 지 오래지만 경직된 북한 정권은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이런 태도는 국제 고립을 심화시키거나, 더는 버틸 수 없을 때까지 체제 모순을 증폭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중국 모델의 현실성은 더 커지게 될 것이다.

핵 문제와 남북한 관계만 떼어놓고 보면 우리의 선택이 가장 중요하다. 평화 유지와 분단체제 극복에 대한 의지가 분명하다면 언제든지 새 기회가 생길 수 있다. 핵 문제 해법을 추구하는 지속적 동력이 우리에게서 나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길이 보인다.

신자유주의-남북 시대의 이후에는 어떤 시대가 올까? 경제·사회 체제의 면에서는 국내 통합과 국제 협력을 병행하는 신복지국가 체제를 생각할 수 있다. 냉전 시대 서방 선진국의 복지국가 체제가 벽에 부닥치자 신자유주의가 그 뒤를 이었다. 이제 신자유주의의 모순을 넘어서서 새 복지국가 체제를 내다보는 것은 역사의 이치에 맞다. 새 체제는 이전 복지국가 체제와는 달리 지구촌 모든 나라가 함께 추구할 수 있는데다 높은 생산력을 기반으로 하는 점에서 생존력이 더 강할 것이다.

북의 우위를 전제로 한 남북 사이 대립과 갈등은 명실상부한 다극화로 대체될 가능성이 크다. 세계는 앞으로 미국·유럽뿐만 아니라 동아시아·남아시아·러시아·중남미·중동·아프리카 등의 다중심으로 짜일 것이다. 이는 근대 이전 지구촌의 모습을 보여주는 점에서 자연스럽다. 1인당 소득에서는 금세기 안에 남이 북을 따라잡을 가능성이 거의 없지만, 지구촌 인구의 절대다수가 중산층 이상의 삶을 누리는 날이 그렇게 멀지 않다.

이런 시대를 ‘신복지국가-다극화 시대’라고 부를 수 있다. 이르면 2020년대 중반, 늦어도 2030년대에는 시작될 시대다. 이 시대에는 기후변화, 에너지, 식량, 수자원, 일자리 부족과 인간 소외 등 지구 차원의 문제가 훨씬 더 현실적인 과제로 다가올 것이다. 패권국가의 존재감이 약해지는 만큼 나라 또는 권역 사이의 치열한 경쟁도 예상된다.

앞으로 몇 해는 기존 질서의 모순이 커지고 새 질서에 대한 욕구가 높아지는 기회의 시기다. 촛불혁명을 이뤄낸 우리는 좀 더 넓고 길게 보고 자신감 있게 나아갈 필요가 있다.

김지석 대기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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