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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제록스 / 구본권

등록 2018-02-04 18:21수정 2018-02-04 19:03

네이버는 지난해 6월 인공지능 관련 특허를 1000여건 보유한 제록스 리서치센터유럽을 인수해 네이버 랩스유럽으로 간판을 바꿨다. 일본 후지필름은 지난달 31일 61억달러에 제록스 본사 지분 50.1%를 사들여 두 회사를 합병한다고 발표했다. 제록스는 이메일, 문서공유, 클라우드 등에 경쟁력을 잃고 지난해 4분기 19억달러 손실을 기록했다.

제록스는 1959년 세계 최초로 자동복사기를 출시하며 현대사회의 전형적 풍경을 만들고 제품 이름(Xerox)을 ‘복사하다’라는 뜻으로 사전에 올린 혁신기업의 대명사였다. 캐나다 미디어학자 마셜 매클루언은 “구텐베르크는 만인을 독자로, 제록스는 만인을 발행인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기술기업답게 제록스는 혁신에 적극적으로 투자했다. 최고의 정보기술연구소인 제록스 팰로앨토리서치센터(PARC)를 설립해 그래픽사용자환경(GUI), 이더넷, 유비쿼터스 컴퓨팅, 객체지향 프로그래밍, 레이저프린터 등 혁신적 기술을 다수 개발했다. 하지만 레이저프린터 빼곤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남 좋은 일만 한 셈이 됐다. 1988년 엠에스(MS)가 매킨토시를 베꼈다며 애플이 ‘룩앤필’ 소송을 제기했을 때, 빌 게이츠가 스티브 잡스에게 “실은 우리 둘 다 제록스의 그래픽사용자환경을 훔쳐다 쓴 것 아니냐”고 반박한 것은 널리 알려진 일화다.

대조적으로 후지필름의 생존력이 돋보인다. 지난 시절 최고 기술기업이던 코닥과 제록스가 디지털에 무너졌지만, 필름과 복사기 산업에 뒤늦게 뛰어든 후지필름은 화학기술을 활용한 신산업 분야를 개척하고 있다. 코닥은 필름의 종말을 예견하고 디지털카메라를 처음 발명했고, 제록스는 혁신적 정보화 도구를 개발했지만 이들의 기술은 연구실을 벗어나지 못했다. 기존의 안정적 수익구조가 보유자산의 활용과 모험적 시도를 막는 걸림돌이 된다는 ‘혁신기업의 딜레마’를 확인하게 해주는 사례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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