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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크리틱] 진실의 말, 유희의 말 그리고… / 허문영

등록 2018-02-02 18:13수정 2018-02-03 08:50

허문영
영화평론가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에 갔다가 문화정보원 건물 초입에 있는 ‘비트폴’이라는 설치미술을 보았다. 독일의 미디어 아티스트 율리우스 포프의 작품이다. 벽면 상단을 따라 설치된 긴 수도관 같은 것에서 물이 흘러나오는데, 유심히 보면 얇은 막의 형상으로 떨어지는 물은 순간적으로 글자를 구성했다 순식간에 흩어져 내린다. 작품 앞에는, 작가의 말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해설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설명이 붙어 있다.

“동시대는 정보과잉의 시대입니다. ‘비트폴’은 이런 시대에 정보의 태어남과 사라짐을 상징합니다. 작품의 물줄기가 만들어내는 ‘텍스트’는 지금 이 순간 인터넷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말’입니다.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생성되고 사라져버리는 정보. 작품은 이런 정보과잉을 상징합니다.”

나는 내가 쓰는 말이 저러한 말이 되지 않기를 원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진실이 한 작품의 등가물이 된다면 그 작품은 지당하신 말씀의 반복일 뿐일 것이다. 하지만 대상을 평할 때, 그것에 담긴 진리의 진술을 외면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가능할까. 게다가 작가조차 자신의 작품이 그런 진실의 표현이라고 믿고 있다면, 결국 구경꾼에 불과한 우리가 달리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아이들 무리가 그 설치미술 앞에 몰려가더니 한 아이가 소리를 질렀다. “야, 글자가 지나간다.” 그 아이는 지금 ‘정보과잉의 상징’을 읽고 있는 게 아니라, 무정형으로 보이던 물의 흐름이 불현듯 자신이 아는 형상으로 나타나자 그 순간의 경이로움에 감탄하고 있다. 유동적이고 불규칙한 자연의 질료가 갑자기 글자라는 고정되고 규칙적인 문명의 형상으로 등장하는 마법이 그 아이의 감각을 사로잡았을 것이다. 나는 내가 쓰는 말이 저 아이의 천진한 경탄에 가까운 것이 되기를, 수전 손택의 표현을 빌리면 해석학이 아니라 성애학에 가까운 것이 되기를 바라왔던 것 같다.

그 바람에는 아마도 개인의 지적 무기력과 함께 회의의 태도도 가세했을 것이다. 이미 너무나 많은 진실의 말들이 쏟아져 나와 있는데 달리 더 할 말이 남았을까. 한때 어둠을 밝히는 불꽃과도 같았던 진실의 언명들이 이젠 대도시 밤거리의 네온사인과 같은 것이 된 건 아닐까. 특별하게 뛰어난 정신이 아니라면 이 진실 포화의 시대에 또 다른 진실을 말할 수 있을까. 그러니 이제 말할 수 있는 건 작품의 진리 값이 아닌, 그것의 내적 활력밖에 남지 않은 게 아닐까.

하지만 그 바람은 잘 실현되지 않았다. 근본적으로 비언어적 체험인 감각적 황홀을 언어화하는 것의 어려움 때문만은 아니다. 진리 담론에 기대지 않고 일관된 유희적 태도로 무언가 말하고 쓴다는 것은 철저한 진리 추구의 태도 못지않은 강인한 정신을 필요로 하는 일이기 때문이며, 범박한 진리 담론은 어느새 뒷문으로 들어와 있기 십상이었다. 그러니 늘 둘 사이에서 서성이는 모양이 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기고임을 핑계 삼아 고백 비슷한 말을 늘어놓았다. 또 다른 한 가지 말을 공유하고 싶다. 우리가 나누고 싶은 말은 어느 쪽이든 강인한 정신을 필요로 하는 두 가지 담론만 있는 건 아니다. 오랫동안 “사람은 이해하거나 아니면 죽어야 한다”(버트런드 러셀의 표현)는 태도를 지녔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말년에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내가 가장 그리워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말을 장황하게 할 수 있는 상대이다.”(<비트겐슈타인 평전>, 필로소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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