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에서 5세기 동안 진행되어온 것들이 우리에게는 50년의 압축된 시간으로 달구어졌다. 후진국 콤플렉스를 벗어났다는 자부에도 불구하고, 두려움도 솟는다. 실용주의로의 일방적 기울어짐, 상아탑 연구들의, 버크가 말하는바 ‘지식의 맥도날드화’, 그럼으로써 성과의 성급한 환금주의, 학문의 권력화로 말미암은 속류화가 그렇다.
김병익
문학평론가 1890년대로부터 2차 세계대전 후에 이르는 서구 지식사회의 흐름을 휴스의 3부작(<의식과 사회>, <사회사상의 대이동>, <막다른 골목>)을 통해 짐작하게 된 내게 피터 버크의 <지식의 사회사> 2권(박광식 옮김)은 이 주제에 대한 내 관심의 폭을 크게 열어주었다. 케임브리지대학의 문화사 교수로 소개된 버크는 사회사상가의 이론이나 한 학파의 동태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식이라 부르는 것들의 전반적인 발전과 분화, 변화와 확장의 움직임을 사회사 방법으로 정리하고 있다. 제1권은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개발된 15세기 후반부터 프랑스 백과사전파에 이르는 지적 운동을 추적하고 있고 12년 후에 출판된 제2권은 산업혁명으로부터 현재까지를 조감하고 있다. 이 저자는 지식의 형성과 보급, 전승과 영향에 관계되는 ‘학식공화국’의 갖가지 구성 요소를 폭넓게 그리고 그 이상으로 자상하게 소개한다. 가령 17세기 말경에는 커피하우스가 중요한 지식교환소였다는 것, 1600년에서 1789년 사이에 발간된 프랑스의 정기간행물이 1267종이라는 것, 17세기 전반기에 어학사전들이 다투어 나왔고 그즈음 ‘교양적 지식’에서 ‘실용적 지식’이 분화되어 발전하기 시작했다는 것, 16세기에는 ‘창녀 가격표’가 간행될 정도로 정보화가 확대되었다는 것, 근대 초기부터 교회가 만든 금서 정책이 도서의 폐기, 은폐, 통제, 상실, 파괴 등등으로 자행되어 왔다는 것, 15세기에 ‘선박 설계도’에서 시작된 특허권 개념이 번지면서 지식의 상업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는 것, 도서관과 박물관이 19세기부터 경쟁적으로 책과 유물의 수집, 소장에 열성이었다는 것, 영어에서 ‘과학자’란 용어가 출현한 것은 1830년대였다는 것, 통계학은 정보와 지식의 팽창으로 19세기 초부터, 사회학은 졸라의 <제르미날>로 주목된 환경문제 촉구로 개발되기 시작했다는 것 등 생각하지도 못한 의외의 지식을 숱하게 제공한다. 또 중국과 일본에 대한 정보가 활발했다는 대목에 끼어 “한국에서는 인쇄에 대한 당국의 통제가 중국보다 훨씬 더 철저했으며 민간 차원의 서적 제작과 판매가 금지됐던 때도 있었다”는 서술이 아프게 반가웠다. “피레네 산맥 이쪽에서는 진실이고 그 너머에서는 거짓”이라는 몽테뉴가 주장한 지식의 상대성을 인정하고, 베이컨의 기억, 이성, 상상이란 인간의 세 능력이 역사, 철학, 시로 각각 표현된다는 지식론을 소개하면서도 깃털펜에서 타자기를 거쳐 컴퓨터의 글치기에 이르기까지 필기도구의 변화도 놓치지 않는다. 이런 폭넓은 저자 섭렵의 결말은 산업혁명 이후의 지식사회사를 러시아 경제학자로 스탈린에게 처형당한 콘트라티예프의 장기 파동설에 따라 50년 단위의 지적 비약 단계로 정리한다. 제1기 1750~1800년의 ‘지식의 개혁기’에는 기왕의 지식을 백과사전 등으로 재조직하면서 세계화와 계몽을 추구했다는 것, 다음 50년 ‘지식의 혁명기’에는 대혁명의 여파를 받으면서 교육제도가 개혁되고 역사주의의 등장으로 학문에 시간 개념을 도입했다는 것, 그다음 제3기 1850~1900년의 ‘학문의 분과화’ 시대에는 학위제 시행, 대중화와 도서관 등에 의한 수집 보관이 본격화되었다는 것, 이은 제4기의 ‘지식의 위기’에는 후설, 니체, 아인슈타인과 불확정설, 양차 세계대전으로 말미암은 과학의 위기에 대한 공포가 미만했다는 것이다. 1940년대부터 반세기에 이르는 제5기는 컴퓨터, 스푸트니크, 달 착륙과 더불어 스노가 말한 ‘두 개의 문화’ 현상이 심화되는 ‘지식의 기술화’로 진행되고, 독일 통일의 1990년대 이후 제6기 ‘재귀성의 시대’인 오늘날에는 월드와이드웹과 구글, 위키백과, 나노, 빅데이터 등으로 과학적 비약이 이루어지고 있다. 내가 지식 사회사의 진행에 관심을 가진 것은 지난해 갑작스레 우리 정치, 경제, 과학계에 ‘4차 산업혁명’이 크게 논의되고 우리의 미래에 대한 적극적인 재구성 작업을 독촉하는 움직임을 본 때문이기도 하다. 젊은 국문학도 안서현의 <계간지 시대의 비평 담론 연구>에서 나도 참여했던 1970년대의 계간지 운동이 학위논문 주제가 된 것을 보고 ‘현존에서 역사로의 이월’에 대한 감상 어린 소회에 젖어든 때문이기도 하며 1970년대 초에 활발했던 ‘한국사 시대 구분론’ 토론을 회상한 때문이기도 하다. 분명히 이 시대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실제에서 가상현실로, 자연지능에서 인공지능으로 전환과 비약의 단계로 오르고 있다. 이 변화를 실감하면서 그것을 어떻게 보고 판단하고 전망해야 할지 내 좁은 지력으로는 갈무리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새해에 바라볼 것은 없이 돌아볼 일만 엄청난 80년의 지난 시간을 정리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 변화는 콘트라티예프의 50년 주기가 아니라 10년 주기로 압축되어야 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첫 학기는 일본어로 배웠지만 여름방학을 지낸 2학기에는 한글로 공부했다. 김현이 자부한 ‘한글세대’의 첫 학년이었다. 그리고 10대는 한국전쟁과 전후의 빈곤 속에서 변방의 나라가 국제정치의 냉전 체제 속으로 제어되면서 우리와 세계와의 상호 인식이 이루어진다. 대학생 시절이던 20대에 4·19 이후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향한 국민적 미래 선택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되고, 30대는 유신의 포악에 맞선 진보 이념의 수입으로 인식의 개방을 얻는다. 40대는 올림픽, 소련 해체와 함께 이제껏 강요된 금서, 금기에서 벗어나고 50대는 독일 통일과 남북 정상회담을 보며 정치적 해금과 풍요 속의 미시권력 등장에 주목하게 된다. 이러는 사이 컴퓨터가 들어오고 인터넷이 보급되고 권력은 민주화하고 첨단산업에 도전하며 상아탑의 연구로부터 거리의 전철까지 아날로그 문화는 디지털 문명체제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서양에서 5세기 동안 진행되어온 것들이 우리에게는 50년의 압축된 시간으로 달구어진 것이다. 물론 우리의 지적 인식론적 변화도 일어났다. 내 20대는 서구의 인문주의가 주도했지만, 기자가 된 30대에는 한국학의 열기 옆에서 유학파들에 의한 경영학 행정학 같은 실용주의 학문이 확산되었고, 40대에는 포스트모더니즘과 해체주의가 지식사회의 주제로 떠올랐다. 이제는? 4차 산업혁명으로 과학-기술의 융합을 재촉하고 케빈 켈리가 말하는 정보, 생명공학, 로봇, 나노 등 4-O(info, bio, robo, nano)의 혁신적 지식들이 서슴없이 출현하고 새로운 연구 성과들이 인식의 재혁신을 유도하여 피터 왓슨의 이른바 ‘컨버전스’(수렴, 집중)와 재생산으로 더욱 진전된 지식체계를 만들고 있다. 숨차게 달려온 우리 사회도 유학과 번역 등으로 외국 학문을 적극 수용했다. 대학과 기업-기관의 연구비가 대폭 증액되고 연구 시스템의 강화 효과로 지식 개발에 높은 실적을 거두었다. 이제 후진국 콤플렉스 상태를 벗어났다는 자신만만해진 자부에도 불구하고, 경제에서도 그랬듯, 우리 지식사회의 압축 발전에 따를 부정적 전망에 대한 두려움도 솟는다. 실용주의로의 일방적 기울어짐, 상아탑 연구들의, 버크가 말하는바 ‘지식의 맥도날드화’, 그럼으로써 성과의 성급한 환금주의, 학문의 권력화로 말미암은 속류화가 그렇다. 지식과 사유들이 세계화 명분 속에서 왜곡되고 연구 작업이 실적주의로 퇴화하며, 기초학문과 인문학의 냉대로 ‘다르게 생각하기’의 창조적 정신의 위축은 결코 지나친 우려가 아니다. 지식이 현실적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오로지 진리 탐구의 의지로 추구되고 학자들의 이 열정과 연구의 그 성과들에 대한 순수한 경의 속에서 지식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었던 고전적 미덕이 그립다.
문학평론가 1890년대로부터 2차 세계대전 후에 이르는 서구 지식사회의 흐름을 휴스의 3부작(<의식과 사회>, <사회사상의 대이동>, <막다른 골목>)을 통해 짐작하게 된 내게 피터 버크의 <지식의 사회사> 2권(박광식 옮김)은 이 주제에 대한 내 관심의 폭을 크게 열어주었다. 케임브리지대학의 문화사 교수로 소개된 버크는 사회사상가의 이론이나 한 학파의 동태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식이라 부르는 것들의 전반적인 발전과 분화, 변화와 확장의 움직임을 사회사 방법으로 정리하고 있다. 제1권은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개발된 15세기 후반부터 프랑스 백과사전파에 이르는 지적 운동을 추적하고 있고 12년 후에 출판된 제2권은 산업혁명으로부터 현재까지를 조감하고 있다. 이 저자는 지식의 형성과 보급, 전승과 영향에 관계되는 ‘학식공화국’의 갖가지 구성 요소를 폭넓게 그리고 그 이상으로 자상하게 소개한다. 가령 17세기 말경에는 커피하우스가 중요한 지식교환소였다는 것, 1600년에서 1789년 사이에 발간된 프랑스의 정기간행물이 1267종이라는 것, 17세기 전반기에 어학사전들이 다투어 나왔고 그즈음 ‘교양적 지식’에서 ‘실용적 지식’이 분화되어 발전하기 시작했다는 것, 16세기에는 ‘창녀 가격표’가 간행될 정도로 정보화가 확대되었다는 것, 근대 초기부터 교회가 만든 금서 정책이 도서의 폐기, 은폐, 통제, 상실, 파괴 등등으로 자행되어 왔다는 것, 15세기에 ‘선박 설계도’에서 시작된 특허권 개념이 번지면서 지식의 상업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는 것, 도서관과 박물관이 19세기부터 경쟁적으로 책과 유물의 수집, 소장에 열성이었다는 것, 영어에서 ‘과학자’란 용어가 출현한 것은 1830년대였다는 것, 통계학은 정보와 지식의 팽창으로 19세기 초부터, 사회학은 졸라의 <제르미날>로 주목된 환경문제 촉구로 개발되기 시작했다는 것 등 생각하지도 못한 의외의 지식을 숱하게 제공한다. 또 중국과 일본에 대한 정보가 활발했다는 대목에 끼어 “한국에서는 인쇄에 대한 당국의 통제가 중국보다 훨씬 더 철저했으며 민간 차원의 서적 제작과 판매가 금지됐던 때도 있었다”는 서술이 아프게 반가웠다. “피레네 산맥 이쪽에서는 진실이고 그 너머에서는 거짓”이라는 몽테뉴가 주장한 지식의 상대성을 인정하고, 베이컨의 기억, 이성, 상상이란 인간의 세 능력이 역사, 철학, 시로 각각 표현된다는 지식론을 소개하면서도 깃털펜에서 타자기를 거쳐 컴퓨터의 글치기에 이르기까지 필기도구의 변화도 놓치지 않는다. 이런 폭넓은 저자 섭렵의 결말은 산업혁명 이후의 지식사회사를 러시아 경제학자로 스탈린에게 처형당한 콘트라티예프의 장기 파동설에 따라 50년 단위의 지적 비약 단계로 정리한다. 제1기 1750~1800년의 ‘지식의 개혁기’에는 기왕의 지식을 백과사전 등으로 재조직하면서 세계화와 계몽을 추구했다는 것, 다음 50년 ‘지식의 혁명기’에는 대혁명의 여파를 받으면서 교육제도가 개혁되고 역사주의의 등장으로 학문에 시간 개념을 도입했다는 것, 그다음 제3기 1850~1900년의 ‘학문의 분과화’ 시대에는 학위제 시행, 대중화와 도서관 등에 의한 수집 보관이 본격화되었다는 것, 이은 제4기의 ‘지식의 위기’에는 후설, 니체, 아인슈타인과 불확정설, 양차 세계대전으로 말미암은 과학의 위기에 대한 공포가 미만했다는 것이다. 1940년대부터 반세기에 이르는 제5기는 컴퓨터, 스푸트니크, 달 착륙과 더불어 스노가 말한 ‘두 개의 문화’ 현상이 심화되는 ‘지식의 기술화’로 진행되고, 독일 통일의 1990년대 이후 제6기 ‘재귀성의 시대’인 오늘날에는 월드와이드웹과 구글, 위키백과, 나노, 빅데이터 등으로 과학적 비약이 이루어지고 있다. 내가 지식 사회사의 진행에 관심을 가진 것은 지난해 갑작스레 우리 정치, 경제, 과학계에 ‘4차 산업혁명’이 크게 논의되고 우리의 미래에 대한 적극적인 재구성 작업을 독촉하는 움직임을 본 때문이기도 하다. 젊은 국문학도 안서현의 <계간지 시대의 비평 담론 연구>에서 나도 참여했던 1970년대의 계간지 운동이 학위논문 주제가 된 것을 보고 ‘현존에서 역사로의 이월’에 대한 감상 어린 소회에 젖어든 때문이기도 하며 1970년대 초에 활발했던 ‘한국사 시대 구분론’ 토론을 회상한 때문이기도 하다. 분명히 이 시대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실제에서 가상현실로, 자연지능에서 인공지능으로 전환과 비약의 단계로 오르고 있다. 이 변화를 실감하면서 그것을 어떻게 보고 판단하고 전망해야 할지 내 좁은 지력으로는 갈무리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새해에 바라볼 것은 없이 돌아볼 일만 엄청난 80년의 지난 시간을 정리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 변화는 콘트라티예프의 50년 주기가 아니라 10년 주기로 압축되어야 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첫 학기는 일본어로 배웠지만 여름방학을 지낸 2학기에는 한글로 공부했다. 김현이 자부한 ‘한글세대’의 첫 학년이었다. 그리고 10대는 한국전쟁과 전후의 빈곤 속에서 변방의 나라가 국제정치의 냉전 체제 속으로 제어되면서 우리와 세계와의 상호 인식이 이루어진다. 대학생 시절이던 20대에 4·19 이후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향한 국민적 미래 선택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되고, 30대는 유신의 포악에 맞선 진보 이념의 수입으로 인식의 개방을 얻는다. 40대는 올림픽, 소련 해체와 함께 이제껏 강요된 금서, 금기에서 벗어나고 50대는 독일 통일과 남북 정상회담을 보며 정치적 해금과 풍요 속의 미시권력 등장에 주목하게 된다. 이러는 사이 컴퓨터가 들어오고 인터넷이 보급되고 권력은 민주화하고 첨단산업에 도전하며 상아탑의 연구로부터 거리의 전철까지 아날로그 문화는 디지털 문명체제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서양에서 5세기 동안 진행되어온 것들이 우리에게는 50년의 압축된 시간으로 달구어진 것이다. 물론 우리의 지적 인식론적 변화도 일어났다. 내 20대는 서구의 인문주의가 주도했지만, 기자가 된 30대에는 한국학의 열기 옆에서 유학파들에 의한 경영학 행정학 같은 실용주의 학문이 확산되었고, 40대에는 포스트모더니즘과 해체주의가 지식사회의 주제로 떠올랐다. 이제는? 4차 산업혁명으로 과학-기술의 융합을 재촉하고 케빈 켈리가 말하는 정보, 생명공학, 로봇, 나노 등 4-O(info, bio, robo, nano)의 혁신적 지식들이 서슴없이 출현하고 새로운 연구 성과들이 인식의 재혁신을 유도하여 피터 왓슨의 이른바 ‘컨버전스’(수렴, 집중)와 재생산으로 더욱 진전된 지식체계를 만들고 있다. 숨차게 달려온 우리 사회도 유학과 번역 등으로 외국 학문을 적극 수용했다. 대학과 기업-기관의 연구비가 대폭 증액되고 연구 시스템의 강화 효과로 지식 개발에 높은 실적을 거두었다. 이제 후진국 콤플렉스 상태를 벗어났다는 자신만만해진 자부에도 불구하고, 경제에서도 그랬듯, 우리 지식사회의 압축 발전에 따를 부정적 전망에 대한 두려움도 솟는다. 실용주의로의 일방적 기울어짐, 상아탑 연구들의, 버크가 말하는바 ‘지식의 맥도날드화’, 그럼으로써 성과의 성급한 환금주의, 학문의 권력화로 말미암은 속류화가 그렇다. 지식과 사유들이 세계화 명분 속에서 왜곡되고 연구 작업이 실적주의로 퇴화하며, 기초학문과 인문학의 냉대로 ‘다르게 생각하기’의 창조적 정신의 위축은 결코 지나친 우려가 아니다. 지식이 현실적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오로지 진리 탐구의 의지로 추구되고 학자들의 이 열정과 연구의 그 성과들에 대한 순수한 경의 속에서 지식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었던 고전적 미덕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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