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변화에는 여러 힘이 작용하기 마련이다. 그 힘은 통상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다. 지식·기술·조직력 등이 뒷받침하는 생산력 발전, 지배세력에 대한 민중의 투쟁, 지배세력 사이의 치열한 경쟁이 그것이다. 모든 변화의 바탕에 다수 민중의 생각과 행동이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80년대에는 세계사에서도 보기 드문 민주화 운동의 성장과 생산력의 비약이 나타난다. 영화 <1987>에서 확인할 수 있는 거대한 에너지는 냉전 기간 내내 축적된 민중의 힘의 표출이다. 하지만 이 힘은 한반도 전역에 미치지 못했으며, 동북아 지역의 냉전 지배세력을 바꾸는 데도 부족했다.
한반도를 사이에 놓고 미국·일본과 중국·러시아가 대치하는 동북아 신냉전 양상이 이어지고 있다. 냉전이 끝난 지 이미 한 세대가 지난 점을 생각하면 뭔가 한참 잘못된 것 같다. 하지만 세상은 이전에도 바뀌어왔고 지금도 바뀌고 있다.
지금 시대를 제대로 알려면 먼저 가장 가까운 과거인 냉전 시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여러 유산이 이어진데다 구조와 변화 패턴에서 닮은 점이 있기 때문이다.
냉전 시대는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지구촌 전체가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라는 진영 대결을 벌인 시기다. 강대국과 약소국 사이 또는 약소국 사이의 전쟁은 있었으나 이전과 달리 강대국 사이 전쟁은 없었다. 그래서 ‘냉전’ 시대다. 통상 2차대전이 끝난 1945년부터 독일의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1989년(또는 독일 통일이 이뤄진 1990년)까지의 기간으로 정의된다.
냉전 시대는 네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정착기, 발전기, 재편기, 해체기가 그것이다. 기승전결의 이야기 구조다.
정착기는 틀이 짜이는 시기다. 종점은 반둥회의가 열린 1955년이다. 세계 인구의 55%를 차지하는 아시아·아프리카 29개 나라는 이 회의를 통해 새 국제질서의 제3세력이라는 입지를 갖게 된다.
미국은 공산주의 확대 저지를 선언한 트루먼 독트린(1947년), 서유럽에 대한 원조 계획인 마셜 플랜(1947~51년), 2차대전의 적인 독일·일본의 재건 지원 등을 통해 새 틀 짜기를 주도한다. 1949년에 끝난 그리스내전과 1950~53년의 한국전쟁 또한 중요한 구실을 한다. 제한된 규모의 전쟁과 희생이 새 체제 구축에 필요했던 셈이다.
발전기에는 대결이 본격화한다. 양 진영 사이의 이념·체제 경쟁, 핵무기 경쟁, 경제 경쟁에다 제3세계를 대상으로 한 치열한 외교 경쟁도 벌어진다. 이 시기 내내 인류는 공포에 시달린다. 핵전쟁 문턱까지 간 쿠바위기(1962년)가 그 상징이다. 서구 나라들의 경제 규모가 빠르게 커진 반면 사회주의권의 침체 조짐이 나타난 것도 이 시기다.
발전기는 양 진영의 내부 모순이 커진 시기이기도 하다. 1964년 북베트남 폭격으로 시작된 미국-베트남 장기전과 이에 맞물려 지구촌 전역에서 거세진 반전운동은 미국의 위신과 지도력, 경제력에 큰 타격을 준다. 여기에다 서구 젊은층이 한꺼번에 들고일어난 68혁명은 기존 체제와 냉전 질서를 한꺼번에 거부하려는 데까지 나아간다. 사회주의권에서도 체코슬로바키아의 자유화 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한 체코사태(1968년)를 통해 소련 체제의 한계가 뚜렷해진다. 아울러 정치 노선 등을 둘러싸고 195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중-소 갈등이 1969년 무력 충돌로까지 비화한다.
이 시기의 끝을 알린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1969년 괌 선언(닉슨 독트린)은 베트남에서 손을 떼겠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일차적으로 내부 모순의 해결을 겨냥하고 있지만, 이런 시도는 곧 냉전 체제의 재편으로 이어진다. 경제 침체와 사회주의 종주국으로서 위신 하락에 시달려온 소련 또한 변화에 호응한다.
재편의 핵심 키워드는 데탕트(긴장완화)다. 미국과 소련 사이의 여러 핵·미사일 제한·관리 협정과 미-중 수교로 대표되는 데탕트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전제로 한다. 곧 상대의 세력권을 존중하고 평화를 유지하면서 상황을 개선해 나가자는 것이다. 주요한 성과 가운데 하나가 1972년 체결된 미-소 전략무기제한협정이다. 이 협정은 ‘공포의 균형’을 공식화해 핵전쟁의 위험을 크게 낮췄으며, 이후 핵 경쟁 제한 노력의 토대가 된다.
데탕트는 새로운 시도였으나 냉전의 본질적인 모순을 해결하지는 못한다. 핵무기를 비롯한 군비 경쟁은 멈추지 않았고, 제3세계를 무대로 한 간접 대결은 오히려 더 심해진다. 그 결과 데탕트의 유효성에 대한 의심이 커지면서 냉전은 최종 시기에 돌입한다.
해체기의 시작은 1979~80년이다. 이란 학생들의 테헤란 미국대사관 점령 직후 소련이 무리하게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고, 신보수주의를 내건 로널드 레이건과 마거릿 대처가 미국과 영국에서 새 지도자가 된 것이 분기점이다.
이 시기에는 사회주의권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폴란드에서 첫 깃발이 오른다. 이 나라 출신 첫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의 고국 방문(1979년)과 전기 기사인 레흐 바웬사가 주도한 첫 독립 노동조합 결성(1980년)이 그것이다. 젊고 개혁적인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1985년 소련 최고 지도자가 된 뒤 소련·동유럽권의 개혁·개방은 뒤집을 수 없는 흐름이 된다. 레이건 대통령이 핵 군축 협정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손발을 맞춘 것도 중요하다. 그렇다고 냉전 종식이 미국의 시야에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중앙정보국(CIA)의 해외 공작은 더 강화돼 여러 추문이 불거졌다.
냉전의 끝은 고르바초프의 자발적인 동유럽 패권 포기에 호응해 현지 민중이 기존 체제에서 이탈하면서 갑자기 찾아온다. 폴란드와 헝가리·체코에 이은 동독인들의 민주화 요구는 마침내 냉전의 상징이던 베를린장벽을 무너뜨린다. 레이건과 고르바초프는 1989년 12월 지중해의 몰타에서 회담을 갖고 이런 변화를 추인하면서 냉전 종식을 선언한다.
시대의 변화에는 여러 힘이 작용하기 마련이다. 그 힘은 통상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다. 지식·기술·조직력 등이 뒷받침하는 생산력 발전, 지배세력에 대한 민중의 투쟁, 지배세력 사이의 치열한 경쟁이 그것이다. 어떤 시기에 어떤 힘이 중심이 되는지는 주·객관적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모든 변화의 바탕에 다수 민중의 생각과 행동이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정착기를 주도한 것은 지배세력이었던 강대국 사이의 경쟁이다. 당시 희생자가 됐던 민중의 힘은 이후 시기로 갈수록 더 중요해진다. 그 힘은 재편기를 끌어내고 해체기에도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생산력 발전의 차이가 진영 대결의 승패를 가르는 주요인이 된 것도 확실하다.
냉전이 세계사적 현상이라 하더라도 지구촌 모든 나라에 동일하게 적용되지는 않는다. 제3세계 나라들은 냉전의 질곡에다 남북문제로 일컬어지는 북쪽의 억압, 그 속에서 더 나은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갈등과 폭력을 감수해야 했다. 이들 나라에서도 세 힘은 함께 작용하지만, 본질적인 것은 역시 민중의 힘이다. 물론 지배세력을 얘기할 때는 외세를 반드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예외 없이 냉전의 네 시기에 상응하는 변화를 겪는다. 정착기에는 지구촌 어느 나라보다 큰 고통을 겪으며 냉전의 최전선이 된다. 외세를 중심으로 한 지배세력의 힘과 그들 사이의 경쟁은 압도적이었다. 최선은 한국민 전체가 하나로 결집해 대처하는 것이다. 분단은 그럴 수 없었던 주·객관적 상황의 산물이다. 곧 우리에게는 ‘냉전=분단’이다.
냉전의 발전기는 분단 체제의 발전기가 된다. 4·19혁명의 좌절, 5·16쿠데타와 그 주도 세력의 장기 독재, 반공이데올로기의 득세, 북한-소련-중국에 맞서는 한-미-일 삼각 안보협력 체제 구축 등은 그 표현이다. 냉전과 분단, 강압적 근대화의 모순 속에서도 민중의 힘은 생산력 발전과 민주화 운동의 양면에서 꾸준히 성장한다.
앞선 두 시기가 그랬듯이 재편기도 우리 힘으로 시작되지 않았다. 제3세계 여러 나라처럼 현실 인정이라는 데탕트의 전제는 오히려 억압적인 체제의 강화로 표출된다. 1970년대에 해당하는 이 시기는 80년대 이후의 큰 전환을 준비한 역량축적기이기도 하다.
80년대에는 세계사에서도 보기 드문 민주화 운동의 성장과 생산력의 비약이 나타난다. 영화 <1987>에서 확인할 수 있는 거대한 에너지는 냉전 기간 내내 축적된 민중의 힘의 표출이다. 하지만 이 힘은 한반도 전역에 미치지 못했으며, 동북아 지역의 냉전 지배세력을 바꾸는 데도 부족했다.
냉전의 끝은 서구 민주자본주의 나라와 동서 민중의 승리였으나, 우리는 결국 냉전을 제대로 종식하지 못한 채 냉전 이후 시대를 맞게 된다.
김지석 대기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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