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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화재진압, 감·경험만으로? / 오윤주

등록 2018-01-09 18:01수정 2018-01-09 19:19

오윤주
충청강원팀 기자

지금 또 불이 나면 살 수 있을까? 충북 제천 화재 참사가 우리 사회에 던진 불덩어리 같은 화두다.

“지금 불이 나도 똑같은 상황이다. 그래서 인재다.”(제천 화재 참사 유족대책위원회)

“최선을 다했지만 우리가 가진 소방력으로는 역부족이었다.”(제천소방서)

사망 29명, 부상 39명 등 사상자 68명을 낸 대형 참사의 책임 앞에 유족과 소방당국 간 간극은 뚜렷하다.

장비·인력이 부족했다는 소방당국의 태도는 숫자가 증명한다. 지난달 21일 오후 3시53분 제천 ‘노블 앤 휘트니스’ 화재 신고 7분 뒤 현장에 도착한 소방인력은 의무소방대를 포함해 13명이었다. 제천소방서의 관할 면적은 883㎢로, 소방서당 25㎢인 서울의 35배다. 제천시민 13만6500명을 담당하는 구조대원은 4명이다. 이날 구조대는 고드름 제거 작업에 출동했다가 선착대보다 8분 늦게 현장에 도착했다. 구조에 필수인 사다리차와 굴절차는 1대씩밖에 없다. “한 번에 30~40명이 출동하고, 주변 소방서에서 바로 지원 가능한 서울이라면 상황이 달랐을 것이다. 안타깝지만 여긴 시골”이라는 충북 소방 책임자의 말은 설득력 있다.

하지만 부족한 소방력만으로 제천 참사를 다 덮긴 어렵다. 희생이 너무 컸다. 유족들은 소방당국의 안이한 대처를 꼽는다. 특히 20명이 희생된 2층을 주목한다. “2층에 사람이 있다. 빨리, 빨리”를 수십 차례 외쳤지만 소방당국은 머뭇거렸고, 그사이 구조를 위한 ‘골든타임’을 놓쳐 희생이 커졌다는 것이다. 현장 상황 전파가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충북 소방상황실은 무전 전파가 여의치 않자 화재 신고 11분 뒤인 오후 4시4분과 6분 두 차례에 걸쳐 공용 휴대전화로 현장 지휘부에 ‘2층에 다수의 사람이 있다’는 것을 통보했다. 하지만 정작 구조대 등과 이 정보가 공유되지 않았다. 먹통 무전 얘기도 나온다.

현장에선 무전 등을 통한 정확한 상황파악과 소통은 간데없고, 소방관의 직감과 경험만 존재했다. 대부분 소방력은 감에 따라 발화지점인 1층 주차장 화재 진압에 주력했다. 구조대는 경험을 믿고 지하실에 먼저 들어갔고, 2층 비상구 쪽은 불길·농연 탓에 진입조차 못 했다. 화재 신고 45분 뒤에야 2층 유리창을 깨고 진입했지만 단 한명도 구하지 못했다. 구조대는 “2층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정확히 알았다면 더 많은 인력을 요청하고 재차 진입을 시도했을 것”이라고 뒤늦게 밝혔다. 유족들이 분통을 터뜨리는 이유다.

언제까지 부족한 소방력의 감·경험에만 매달려야 할까? 백드래프트 우려와 상관없이 화재 현장의 상황·온도·산소량·유해 정도까지 파악해 모니터로 전송할 수 있는 정찰 로봇, 짙은 연기 속에서 인적을 감지하는 열화상 카메라 등 굳이 많은 소방력이 진입하지 않아도 상황을 살필 수 있는 장비는 있다. 하지만 ‘법정 인원도 못 채우는 마당에 장비는 무슨…’이라는 논리에 막혀 있다.

유족들은 애초 장비·인력의 한계를 지닌 소방당국을 이해하려 했다. 책임자 처벌보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바랐다. “우리를 믿어 달라”는 문재인 대통령과 이근규 제천시장 등의 말을 믿고 참사 닷새 만에 희생자 29명의 장례를 마무리하고 기다렸다. 대승적 결단이었다.

하지만 소방당국은 ‘인력·장비 부족’만을 되풀이하고, 정부는 겨우 소방도로 불법주차 차량 강제제거 조처 정도를 내놨다. 유족은 이제 엄정 수사, 책임자 처벌을 넘어 정부·지자체 등의 관리책임론을 제기하며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 중앙·지방 정부가 답을 해야 한다. “또 불이 나면 국민을 살릴 수 있나?” 감·경험이 아닌 능력으로.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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