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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남의 통화는 왜 잘 들릴까 / 구본권

등록 2018-01-08 18:16수정 2018-01-08 19:41

‘예의바른 무관심’(civil inattention)이란 말이 있다. 미국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이 1970년대 복잡한 현대 도시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적 장치로 제시한 개념이다. 대중교통과 다중이용시설을 이용하는 도시생활은 어쩔 수 없이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고 옆사람의 내밀한 이야기를 듣게 되지만 서로 모른 척하는 게 에티켓이 된 현상에 대한 설명이다.

휴대전화는 편리함과 함께 수시로 주변 통화에 노출되게 만들고 지하철 등 공공장소의 전화통화 소리는 반갑지 않다. 목소리를 낮춘 통화가 두 사람이 시끄럽게 대화할 때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는 인간의 인지적 특성 때문이다.

<사이콜로지컬 사이언스> 2010년 9월호에는 “쌍방 대화 중 한쪽 이야기만 듣게 될 경우 우리 뇌는 대화의 연결을 예측할 수 없어 어려움과 혼란을 겪게 되는데 이 때문에 더 주의를 빼앗기게 된다”는 코넬대학 로런 엠버슨의 연구논문이 실렸다. 뇌의 언어처리 기능은 발화 다음에 어떤 말이 이어질지 예측하는 구조인데, 한쪽 말만 들리면 더 많은 주의력을 기울여 대화를 예측하게 된다는 것이다. 2013년 샌디에이고대학 연구진도 실험으로 이를 입증했다. 전화통화에 노출된 집단은 대화에 노출된 집단에 비해 인지적 과제를 수행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이어질 대화를 예측할 수 없는 데서 오는 인지적 부담과 함께 옆사람의 전화통화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는 점, 호기심을 자극하는 사적인 내용이 들려와 저절로 귀를 기울이게 된다는 점 등이 다른 사람의 통화 소리가 소음도와 상관없이 유난히 신경을 거스르는 이유라고 심리학자들은 설명한다. 아무리 ‘예의바른 무관심’으로 타인의 통화 내용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려 해도 우리의 인지적 본능이 저절로 귀를 쫑긋하게 만드는 만큼 공공장소 통화는 조심스러워야 한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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