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1648년 성립한 베스트팔렌 체제는 이후 국제 질서의 토대로 확산됐다. 베스트팔렌 평화조약은 30년 전쟁의 산물이다. 가톨릭과 신교의 투쟁으로 시작된 이 전쟁은 프랑스가 가톨릭계인 신성로마제국에 대항해 참전하면서 정치와 종교가 뒤섞인 이전투구가 됐다. 동맹국을 서로 바꿔가며 인구밀집지역을 공격한 이 전쟁은 보편성이나 종파 간 단결을 외치는 가식적 주장들을 산산조각 냈다.
베스트팔렌 체제는 다양성을 출발점으로 삼았는데 제국이나 왕조, 종파가 아니라 국가를 기본요소로 삼았다. 교회가 정당성의 원천이 되지 못하고 신성로마제국이 약화되면서 세력균형이 질서를 구축하는 개념이 됐다. 각 사회를 현실로 인정하면서 공동의 질서에 끌어들였다. 20세기 중반 이 체계는 모든 대륙에 자리잡았다.(<헨리 키신저의 세계 질서>, 헨리 키신저, 민음사)
1947년 예루살렘을 어떤 국가에도 속하지 않는 국제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한 유엔 결의 제181호는 모든 종파들의 공존을 규정했다는 점에서 베스트팔렌 개념에 해당한다. 그리스도교, 유대교, 이슬람교 등 3개 종교가 예루살렘을 모두 신성시한다.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 역시 예루살렘에서 양쪽이 공존하는 ‘2국가 해법’을 전제로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선언하더니 최근 이스라엘과 협상하지 않는다고 팔레스타인에 원조 중단을 협박했다. 베스트팔렌 국제 질서의 주요 관리자는 미국이다. 1947년 영국령 팔레스타인을 아랍 국가와 유대 국가로 분할하도록 한 유엔 결의 역시 미국과 영국의 주도로 이뤄진 베스트팔렌 체제다. 베스트팔렌 체제는 아랍·아프리카·아시아 나라들에는 제국주의와 동전의 양면이다. 그런 베스트팔렌 체제의 수호자인 미국이 스스로 그 질서를 깨트리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백기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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