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준
성공회대학교 교수·대중문화 평론가
2018년 벽두에 ‘크리틱’에 이름을 내민다고 하니 ‘올해의 키워드에 대해 말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이것저것 뒤지다가 단어 하나가 눈에 띈다. 소확행,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란다. ‘아는 척’을 조금 하자면, 일본에서 조용히 만들어진 단어가 대만에서 소란스럽게 유행했고, 그 과정에서 표기(발음)가 ‘小確幸’(쇼캇코)에서 ‘小确幸’(샤오췌싱)으로 슬쩍 바뀌었다. 한글에 도착하여 ‘소확행’이라고 쓰면서 의미는 또 한번 바뀐다.
지난해 11월부터 굴지의 포털 사이트에서 ‘2018 트렌드 키워드 #1’로 소개되고 <트렌드 코리아 2018>이라는 책에도 비중 있게 언급되었으니 이 단어는 여기저기서 회자될 모양이다. 이에 대한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는 게 예의겠지만, 이 책의 저자 가운데 한 명이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어이없는 주장을 했던 그 인물이라는 정보는 전하고 싶다. 유행이 한참 지난 단어를 이제야 수입해 왔으니 감각도 뒤처져 보인다는 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확행 부동산’까지 나왔다고 하니 마케팅 용어로 응용되는 단계까지 급속하게 접어든 모양이다.
사실 이 말이 그다지 새로울 건 없다. ‘행복은 먼 곳에 있지 않다’는 식의 아주 진부한 세속의 윤리를 ‘힙’(hip)하게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행복이란 ‘저런 삶이 아니고 이런 삶이야!’라고 방향을 가리키는 사회적 약속이라면, 소확행도 그런 약속의 한 종류다. 약속이란 허황되게 끝날 때가 너무나 많아서, ‘알면서도 속아주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번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지인의 도움으로 대만에서 나온 문헌 하나를 읽으니 소확행이 ‘소비 트렌드 담론’과는 다른 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2014년 8월에 출간된 <섬나라 키워드>(島國關賤字)라는 책에서 한 저자는 소확행을 심지어 ‘소규모 혁명’과 연관시키고 있다. 이 혁명은 권력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전통적 혁명과 다르다고 말하면서, 그 예로 인디음악, 시민기자, 독립서점, 환경보호, 다큐 촬영 등을 들고 있다. ‘그런 게 무슨 혁명이냐?’는 시선에 대해서는 “이 소규모 혁명은 성공할 날은 없지만 작은 날들을 오래 살 수 있다”고 응답한다. 즉, 소확행을 소비 트렌드가 아닌 삶의 윤리의 문제로 사유하려는 것이다.
나는 이런 ‘혁명가들’ 일부와 알고 지내는 편이다. 대만과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있고, ‘한 줌의 세력’일지는 몰라도 그들 가운데 ‘래디컬’한 경우도 꽤 있다. 그들은 ‘민주화’나 ‘통일’이 언젠가는 행복을 선사할 것이라는 약속에 큰 기대를 갖지 않는다. 그건 너무 거대하고 불확실해서 오히려 신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케팅 트렌드 소확행’과는 결이 다른 작은 목소리와 작은 실천을 담는 것이 내가 쓰는 이 지면의 ‘2018년 키워드’ 가운데 하나가 될 것 같다.
그래도 소확행 비스무레한 것을 몸으로 실천해보기로 했다. ‘욜로족’인 척하면서 ‘혼영’을 하는 것으로 연말연시에 ‘작은 날들’을 보내기로 했다. 영화는 다름 아니라 <1987>과 <강철비>. 영화를 소비하면서 의식도 고양하는 것을 맞춤형 소확행으로 삼아보려 한 셈이다. 그런데 그놈의 ‘세대 탓’인지 영화를 보고 난 뒤 ‘한국인이 행복해지기 위한 조건들은 너무나 거대하고 불확실하다’는 사실을 재확인하고 만다. 소확행, 그거 아무나, 아무 데서나 하는 것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