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은 무슨 생각으로 ‘세계의 화약고’를 건드렸을까. 그 실마리가 ‘미국의 국가안보전략’ 보고서에 있다. “지하드 테러리스트 조직과 이란 등의 위협은 이스라엘이 이 지역 문제의 핵심 원인이 아니라는 인식을 만들어내고 있다. 미국은 공통 위협에 맞서는 데서 갈수록 더 이스라엘과의 공통 이해관계를 발견하고 있다.”
중동의 문제는 본인들만이 풀 수 있다. 민주주의는 모든 갈등을 공존·공영의 에너지로 바꿀 수 있는 열쇠다. 민중들은 이미 아랍의 봄을 통해 그 가능성을 보여줬다. 국제사회는 인내심을 갖고 이들의 노력을 지원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반대로 가는 조짐이 뚜렷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기독교·이슬람교·유대교의 공동 성지인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선언한 이후 이슬람권 전역에서 분노가 커지고 있다. 유엔 총회도 이 조처를 거부하는 결의안을 압도적 다수의 찬성으로 채택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무슨 생각으로 ‘세계의 화약고’를 건드렸을까. 그 해답의 실마리가 12월18일 발표한 ‘미국의 국가안보전략’ 보고서에 있다. “여러 세대 동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분쟁은 중동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막는 주요 요인으로 이해돼왔다. (하지만) 오늘날 지하드 테러리스트 조직과 이란 등의 위협은 이스라엘이 이 지역 문제의 핵심 원인이 아니라는 인식을 만들어내고 있다. 미국은 공통 위협에 맞서는 데서 갈수록 더 이스라엘과의 공통 이해관계를 발견하고 있다.” 곧 이슬람 지하드(성전) 테러리스트와 이란을 주적으로 설정하고 공동전선을 형성해야 하며, 이를 위해 미국과 중동 나라들은 이스라엘에 양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어느 미국 대통령도 입 밖에 꺼내지 않았던 독단이다.
지금 미국의 중동 정책은 트럼프 대통령의 극소수 측근이 주무른다. 핵심은 맏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과 데이비드 프리드먼 이스라엘 대사다. 유대인인 두 사람은 동예루살렘이 있는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을 위해 모금 활동을 하는 단체에서 열심히 활동한 전력이 있다. 쿠슈너는 ‘예루살렘 수도 선언’ 직전 사우디의 떠오르는 젊은 권력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만나 중동 전략에 관한 큰 틀을 논의했다고 한다. 무함마드는 최근 친이란이라는 이유로 카타르와 단교하고 친이란 예멘 반군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는 등 대이란 대결을 주도하는 인물이다. 두 사람은 아마도 대이란 전선을 강화하는 대신 이스라엘과 관련된 문제에는 사우디가 나서지 않는 쪽으로 뜻을 모았을 것이다.
서구의 침탈이 본격화한 19세기 이후 외세는 중동 나라들의 운명을 가름해왔다. 오랫동안 큰손이었던 영국이 2차대전 이후 중동 나라들의 잇따른 독립과 더불어 뒷전으로 밀리자 패권국인 미국의 영향력이 부쩍 커졌다. 1950년대 이후 이 지역의 모든 주요 사안에는 미국의 입김이 짙게 서려 있다. 트럼프 정부의 지금 행보는 미국우선주의라기보다 제국주의의 계보를 잇는다.
외세와 중동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한 지표가 이른바 ‘지하드 테러리스트’ 세력의 동향이다. 통상 중동으로 불리는 이슬람 지역은 아프가니스탄부터 사하라사막 북쪽 북아프리카 나라들까지 6억명 이상의 인구를 포괄한다. 무슬림(이슬람교 신자) 가운데 개인의 신앙을 넘어서 나라와 사회 전체의 이슬람화를 추구하거나 이를 지지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의 이념을 이슬람주의 또는 정치적 이슬람이라고 한다. 현대 이슬람주의 조직의 선구자는 1928년 이집트에서 만들어진 무슬림형제단이다. 전체 인구에서 이슬람주의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나라나 시기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절반 정도가 아닐까 한다. 이슬람주의자 중 적어도 90% 이상은 폭력에 반대하고 민주적 원칙에 따른 사회 변화를 추구한다. 이들은 2010년 말부터 2년가량 진행된 ‘아랍의 봄’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슬람주의자 가운데 테러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신정 체제를 만들려 하는 이들이 바로 이슬람 극단주의자 또는 지하드 테러리스트다. 이들은 극소수지만 지역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근본주의 성향은 그냥 무슬림에서 이슬람주의자, 극단주의자 쪽으로 갈수록 더 심해진다.
현대 이슬람 극단주의자는 여러 세대를 거치며 진화해왔다. 1세대의 주역은 옛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1979~89)에 항의해 전사(무자헤딘)로 참여한 이들이다. 이때의 경험이 국제 지하드의 원형이 된다. 1991년 걸프전과 미군의 사우디 주둔 등으로 미국이 전면에 등장하자 지하드의 주된 대상이 바뀐다. 이후 해외 미국 시설을 공격하고 급기야 2001년 9·11 미국 동시 테러를 감행한 이들이 알카에다를 비롯한 2세대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시작되면서 3세대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2004년 한국인 김선일씨를 살해한 ‘유일신과 성전’ 조직 등 무장단체가 그들이다. 이때부터 중동과 유럽을 중심으로 민간인 대상 테러가 늘어난다. 2011년 시작된 시리아 내전은 극단주의자가 활동할 공간을 넓혀주면서 4세대 세력을 탄생시킨다. 그 한가운데에 2014년 출범한 이슬람국가(IS)가 있다. ‘외로운 늑대’형의 동조성 테러가 서구와 중동에서 부쩍 늘어난 것도 이 시기다.
이렇듯 이슬람 극단주의자는 외세의 움직임과 맞물리면서 세력을 키워왔다. 이와 관련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현지 정권의 자율적 역량 강화를 지원하고 이란과의 관계를 재정립함으로써 상황 변화를 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시도가 채 열매를 맺기도 전에 거꾸로 뒤집고 있다.
중동 지역 갈등은 다원적이다. 각각 사우디와 이란을 수장으로 하는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의 대결을 큰 틀로 하는 여러 종파 갈등, 복잡한 정치세력 사이의 정파 대결, 오랜 전통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종족·지역 모순, 외세의 입김에서 벗어나려는 민족 투쟁, 왕정과 독재정권에 맞서는 민주화운동 등이 그것이다. 중동 나라들은 1인당 소득에서 산유국과 비산유국의 차이가 크며, 산유국도 대부분 석유 외의 산업 기반이 취약하다. 게다가 민주주의 수준이 높지 않고 국가적 과제를 풀어나갈 역량이 떨어진다.
이런 문제점을 잘 들여다볼 수 있는 ‘모순의 결정체’가 사우디다. 이 나라는 인구가 이집트·터키·이란 등의 3분의 1 수준이지만 러시아와 함께 최대 산유국이어서 경제력은 중동 최강 수준이다. 세계 원유의 10~15%를 공급하고, 매장량에서는 지구촌 전체의 20% 이상을 차지한다. 게다가 사우디 원유는 생산 단가가 낮아 수익성이 높다. 그런데도 사우디 국민의 삶의 질은 시원찮다. 청년 실업률이 35%에 이르고, 5분의 1에 가까운 인구가 극빈층이다. 유전이 많은 동부 지역이 오히려 가난해 지역 갈등도 심하다.
국내총생산의 45%, 정부 수입의 75%를 차지하는 석유산업을 비롯해 국부의 절대다수는 7천명에 이르는 왕족의 손에 있다. 중동에서도 가장 완고한 사우디 왕정의 주된 정통성 유지 수단은 돈과 종교다. 사우디가 본거지인 와하브파 이슬람을 지원하고, 오일달러를 풀어 국민의 불만을 누그러뜨리는 것이다. 근본주의 성향의 와하브파는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주요 공급처가 돼왔다. 무함마드 왕세자를 중심으로 지난해부터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비전 2030’ 프로젝트는 이런 모순을 해결하고 석유 없는 경제구조를 구축해 새 국가를 만들겠다는 것이지만, 동력이 제한돼 있고 전망도 불투명하다.
원칙적인 얘기지만 중동의 문제는 본인들만이 풀 수 있다. 민주주의는 모든 갈등을 공존·공영의 에너지로 바꿀 수 있는 열쇠다. 민중들은 이미 아랍의 봄을 통해 그 가능성을 보여줬다. 국제사회는 인내심을 갖고 이들의 노력을 지원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반대로 가는 조짐이 뚜렷하다. 특히 트럼프 정부가 조정자 역할을 포기하고 종파·패권 대결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을 더 부추기는 쪽으로 움직이는 것은 큰 잘못이다. 신정국가인 사우디·이란만큼이나 트럼프 정부의 중동 정책도 근본주의적이다. 지금과 같은 추세가 계속된다면 머잖아 미국을 주된 대상으로 하는 5세대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등장할 소지가 다분하다.
중동에서는 1950~60년대에 세속 정부가 추구하던 아랍민족주의가 힘을 발휘한 바 있다. 1967년과 73년의 3·4차 중동전에서 아랍 나라들이 이스라엘에 패하고, 기독교 세력과 여러 이슬람 정파가 뒤엉킨 레바논 내전이 1975년 시작되자 이슬람 근본주의가 힘을 얻기 시작했다. 이후 중동은 정치 구조에서 큰 변화 없이 세계의 화약고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시 새로운 피를 부르는 중동에서 누가 이익을 얻을 수 있을까?
김지석 대기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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