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발
미국 ‘베이비 붐’ 세대(1946~64년 출생)의 첫 주자들이 내년이면 환갑을 맞는다. 전체 인구의 4분의 1(7600만명)을 차지하는 ‘베이비 부머’들이 본격적인 은퇴 시기에 접어드는 것이다.
이들은 대규모 수요와 공급을 창출하며 전후 미국 경제의 토대가 됐다. 젖먹이 땐 유아산업이, 학교에 진학할 즈음에는 교육시장이 큰 호황을 누렸고, 가정을 꾸릴 때가 되자 주택·건설산업이 급성장했다. 투자가 조지 소로스는 이를 두고 “좁은 골목길도 탱크가 한번 지나가면 큰 길이 된다”고 비유했다.
머리 수만 많은 게 아니다. 이들은 90년대 신경제로 규모와 생산성을 동시에 키웠고, 두터운 금융자산도 쌓았다. 현재 미국 전체 실물·금융자산의 67%는 이들의 소유다. ‘부머 파워’가 최대 노동력에서 최대 구매력으로 진화한 셈이다. 워런 버핏을 제치고 갑부 1위에 오른 빌 게이츠는 그 상징이다.
예비 은퇴자의 막강한 구매력은 미국 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대표 산업 자리에는 석유나 자동차가 아닌 건강의료 산업이 올라섰고, 최대 기업 제너럴일렉트릭은 주력 사업을 전기·전자에서 투자·금융과 헬스케어로 바꾼 지 오래다. 낙관론자들은 신경제에 버금가는 경제 부흥기를 예상하기도 한다. 자산 거품과 저축 없는 소비에 대한 우려는 한쪽 귀로 흘리는 분위기다.
한국 쪽은 어떤가. 전쟁 직후인 1955년부터 피임약이 출현한 63년 사이에 태어난 800만명(총인구의 16.8%)을 베이비 붐 세대로 본다. 절대인구 수로 보면 60년대 말 출생자까지를 포함하기도 한다. 어떻든, 첫 주자가 올해 만 50살이니 미국에 비하면 아직 한창 때다. 한국의 베이비 부머들도 이 땅에 처음 분유 광고를 탄생시켰고 콩나물 교실을 거쳐 아파트 200만호 건설을 이끌었다. 본격적인 산업화의 주력인 동시에 그 수혜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미국 쪽 세대들이 노후 소비를 설계하는 지금, 대부분의 한국 쪽 사람들은 여전히 생계로 허리가 휜다. 노후가 불안하긴 하지만 여윳돈을 챙길 여력이 없다. 예·적금 등 개인 금융자산은 부채를 빼면 1인당 평균 1천만원을 조금 웃돈다. 월평균 가구소득(294만원) 기준으로 3~4개월치 월급밖에 안 된다. 무엇보다 치솟는 집값과 교육비 부담을 감당하기에도 숨이 가쁘다. 내집이든 전세든 2억원짜리 아파트에 산다면 금리를 연 5%만 쳐도 연간 1000만원의 주거비용을 무는 셈이다. 사교육비를 합쳐 초등학생은 1인당 연간 평균 585만원, 고등학생은 887만원(2004년 한국교육개발원)이 교육비로 들어간다.
나라에 기댈 형편도 못 된다. 선진국은 노후 소득에서 공적연금 등 국가 지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을 훨씬 웃돈다. 그러나 우리는 6%에 불과하다. 노후는 주로 자녀의 지원(56%)과 근로소득(26%)에 의존한다. 이대로라면 은퇴해도 계속 밥벌이를 하거나 자녀한테 기대야 한다는 얘기다. 미국처럼 달러 곳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국가 재정으로 미래 세대 부담만 늘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자녀한테 기댈 수 없음을 알면서도 뼈를 깎는 ‘기러기 아빠’를 감수한다. 노후연금 들 여유가 생기면 아이 학원비에 보태는 게 도리라고 생각한다. 팔지도 못할 내집 한채에 매달려 고비용을 치르는 것도 그리 현명해 보이지 않는다. 특별한 횡재가 없다면, 한국의 50~60대들은 늙어서도 생존을 위한 경쟁의 굴레를 벗어나긴 힘들 것 같다. 어찌하겠는가, 그게 ‘낀 세대’의 운명이라면.
김회승 논설위원 honesty@hani.co.kr
김회승 논설위원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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