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지성팀 기자 한 해를 마감하는 시기가 되면 읽어본 책 중에서 ‘올해의 책’을 선정해보곤 한다. 올해는 책지성팀에서 한 해를 마감하는 상황이라 좀 더 각별하다. 책기자 생활은 이제 9개월째에 접어들었는데,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 매주 그득하게 쌓이는 새 책 중에 기사를 쓸 만한 책을 고르고, 지면의 어떤 자리에 쓸 것인지 정하는 일부터가 만만찮다. 2~3일 만에 두툼한 책을 다 읽어서 핵심 내용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살짝 평가를 곁들인 기사를 써내는 것도 항상 버겁다. 게다가 9월부터는 <한겨레 티브이>에서 ‘해시태그#책’이란 이름의 방송을 시작해서 거의 매주 책을 두 권은 읽어내야 한다. 월화수목은 지면용 책을 읽고, 금토일은 방송용 책을 읽는 강행군의 연속이다. 어려움이 있지만 얻는 것도 값지다. 이전 같았으면 내 관심사 안에서만 책을 읽었을 텐데, 여기선 내 취향을 고려해서 책을 정할 수 없으니 내 관심사 밖의 책도 많이 읽게 됐다. 그러다 보니 그동안 내가 읽던 책의 범위가 상당히 협소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특히 ‘성과 문화’면을 맡으면서 페미니즘 책을 많이 접하게 됐고, 페미니스트가 되는 건 이 세상을 변화시킬 가장 가깝고 확실한 길임을 알았다. 올해도 인상적인 책이 많았다. 난 문학 담당은 아니지만, 스탈린 시대를 관통한 러시아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의 내면의 고통을 그려낸 줄리언 반스의 소설 <시대의 소음>은 내겐 ‘올해의 소설’이었다. 낯설지만 새로운 언어로 여성시를 나날이 풍성하게 피우는 김혜순 시인의 <여성, 시하다>를 읽고 처음으로 시인을 인터뷰한 건 한동안 잊기 힘든 기억이 될 것 같다.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와 뤼트허르 브레흐만의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처럼 인류의 미래를 전망하는 책들도 빠질 수 없다. 기본소득론자인 브레흐만을 만나 하라리의 비관적 전망을 묻자, 그는 하라리를 비판하며 “믿는 대로 될지어다”(물론 한국말로 이렇게 답한 건 아니다)라며 긍정적 전망을 가져야 미래가 바뀐다고 반복해 강조했다. 하라리의 전망을 의식하되, 브레흐만의 윤리로 실천해야 하지 않나 싶었다. 올해 최고의 책을 뽑으라면, 조지프 히스의 <계몽주의 2.0>을 꼽고 싶다. 원서 제목을 그대로 번역했는데, 많이 팔릴 만한 제목이 아니기 때문인지 별다른 주목은 못 받았다. 사실 나도 책 방송에서 다루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쳤을 것 같다. 이 책은 현대에 왜 부족주의에 빠진 이들, 음모론을 말하는 자들이 횡행하고 수많은 사람이 그들에게 열광하는지, 왜 비정상이 정상을 이기는 건지 다양하고 적절한 사례와 과학적 근거로 해부한다. 우파는 사람들의 본능을 자극하고 동물적 상태로 끌어내리기만 해도 승리를 거두지만, 좌파는 사람들이 본능을 억누르고 이성을 따르도록 설득해야 하는 더 어려운 과제를 짊어지고 있다. 사형제 찬성론자는 ‘저 나쁜 놈 죽여라’라고 계속 외치면 되지만, 사형제 폐지론자는 사람들을 단번에 사로잡을 구호를 만드는 데 성공한 적은 없다. 기울어진 운동장은 한반도만의 상황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 조건이다. 그렇기에 진보좌파가 혐오와 배제를 일삼는 것은 결국 스스로가 선 기반을 허무는 사실이라는 것도. 요즘 출판시장이 많이 어렵다. 책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자신만의 올해의 책 목록을 만들어 주변 사람들과 공유해보면 어떨까. 언론사에서 선정한 올해의 책 목록에서 몇 권 사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한겨레> 책지성팀이 뽑은 올해의 책은 오는 22일치에 나갈 예정이다.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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