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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종구 칼럼] ‘이용마법’ 제정과 암과의 싸움

등록 2017-12-06 18:57수정 2017-12-06 19:23

김종구
편집인

지난 1일 저녁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3층 청암홀에서 리영희상 시상식이 열렸다. 올해로 5회째를 맞은 이 상의 수상자는 <문화방송> 이용마 해직기자다. 복막암으로 투병 중인 그는 휠체어를 타고 시상식장에 나왔다. 부인, 쌍둥이 아들과 함께 시상식 연단에 오른 그는 수상 소감을 이어가다 말미에 이르러 “이제…”라고 말을 꺼내더니 한동안 말을 잊지 못했다. “생명의 불꽃이 조금씩 소진되는 걸 몸으로 느끼고 있는데요….” 일순간 시상식장에 있던 모든 사람의 가슴속에 찬비가 훑고 지나갔다.

시상식을 지켜보면서 조급증이 밀려왔다. 그의 복직이 더는 미룰 수 없는 절체절명의 과제라는 게 식장에 있던 사람들의 한결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다행히 이 기자를 비롯한 문화방송 해직 언론인 6명이 8일자로 모두 복직하기로 했다는 기쁜 소식이 엊그제 전해졌다. 복직 조처가 이 기자의 생명의 불꽃을 다시 타오르게 하는 기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가 제안한 ‘국민대리인단 제도’를 통한 공영방송 사장 선임 방안은 시상식 사전행사로 열린 방송사 노조 관계자들의 토크쇼 주제였다. 이 제안은 그가 병마와 싸우면서도 끝까지 붙잡고 있는 공영방송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화두의 결과물이다. 생명의 불꽃을 태우는 고통 속에서 피어난 그의 혼이 느껴진다.

이른바 ‘이용마법’의 제정 필요성은 최근 진행돼온 방송사 사장 선임 과정을 지켜보면서 더욱 절실히 다가온다. 요즘 언론계 사람들끼리 만나 방송사 사장 문제를 이야기하다 보면 늘 ‘청와대의 의중이 누구에게 있느냐’를 두고 설왕설래가 오간다. 언론계 사람뿐 아니다. 어떤 지인은 며칠 전에 전화를 걸어 “문화방송 사장으로 청와대가 점찍은 사람이 누군가요?”라고 물었다. <와이티엔> 사장 선임 때도 그랬고, 이번 문화방송 사장 선임 과정을 지켜봐도 청와대가 관여한 흔적은 전혀 없다. 이런 모습은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없었던 일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별로 믿으려 하지 않는다. 방송사만이 아니다. 국가 기간통신사인 <연합뉴스> 차기 사장 문제를 놓고도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장 사전 내정설, 이사장과 사장의 동반자설 등 벌써부터 온갖 설이 난무한다.

문화방송 전임 사장의 축출과 새로운 사장의 선출이라는 ‘응급조처’는 온당하고도 불가피하다. 하지만 공영방송의 운명을 응급조처로만 연명해나갈 수는 없다. 이번 기회에 튼튼한 건강 체질로 바꾸지 않으면 병통은 언제든지 재발한다.

문화방송 사장을 추천하는 방송문화진흥회의 옛 여권 추천 이사 두 명이 사퇴한 뒤 자유한국당은 ‘보궐승계권’을 주장하며 자신들이 이사 추천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자신들이 한 짓은 까맣게 잊은 억지의 극치였다. 하지만 새 여권이 이사 추천권을 가져야 할 정당성을 ‘과거 선례’에서 찾는 것을 보는 심정도 결코 편치 않았다. 영국 공영방송 <비비시>(BBC)의 경우 사장을 임명하는 ‘비비시 트러스트’ 위원 전원을 문화부 장관이 추천해 총리를 거쳐 왕이 임명하지만 정파성 시비가 없다. 오랜 기간 쌓인 관행과 문화가 올바로 정립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잘못된 관행과 문화가 더욱 굳어지는 느낌이다. 제도의 일대 혁신이 없이는 이 지긋지긋한 사슬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이용마 기자가 제안한 ‘국민대리인단 제도’를 시행하려면 현실적으로 여러 가지 난관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그 기본 정신을 살려 우리 현실에 적합한 안을 만들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정의당 추혜선 의원이 발의한 법안도 이 기자의 제안과 일맥상통한다. 문제는 정치권이 머리를 맞대고 열린 마음으로 최선의 해법을 찾으려는 의지가 있느냐다.

이용마 기자는 자연치료로 암과 싸워오다 최근 들어 항암제 치료를 시작했다. “더 늦기 전에 마지막 도전을 해보려고 합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알 수 없고요. 인명은 재천이라고 하니까 운명을 하늘의 뜻에 맡기고, 또 운명을 받아들일 줄 아는 것이 어떻게 보면 우리가 해야 할 겸손함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그가 수상 소감에서 끝맺은 말이다. 그가 암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한다. 정치권력의 방송장악이라는 고질적 암을 영원히 퇴치하기 위한 제도 혁신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것은 암과 처절한 혈투를 벌이는 이용마 기자를 향해 우리 사회가 보내는 최고의 응원이 아닐까 한다.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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