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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병익 칼럼] 민영익의 시계, 뉴턴의 시계관

등록 2017-11-30 17:51수정 2019-10-17 16:32

뉴턴은 시계 태엽과 같은 정확한 엄밀성에 주목하며 자신의 우주관을 폈지만 민영익은 시계를 신기하게 보면서도 경망스러운 이물로 여겼다. 그가 이 시계를 난초화처럼 즐겨, 척사와의 갈등을 이겨내고 근대로의 인식 전환에 노력했다면 우리 민족의 운명은 달라졌을까, 어땠을까.

김병익
문학평론가

소설가 김원우의 근작 장편 <운미 회고록>은 근래의 우리 소설문학에서 매우 육중한 무게로 다가오는 문제작으로 읽힌다. 한말의 척신으로 민씨 세도정치의 중추이면서 난화(蘭畵)에서도 대원군과 맞설 화가이기도 한 운미 민영익(芸楣 閔泳翊: 1860~1914)의 생애와 그의 시대를 독특한 회고록 형식으로 재현함으로써 개화기 당대만이 아니라 오늘의 우리 고민스러운 정황을 돌이켜보게 만드는 까다로운 작품이어서다.

국운이 쇠하면서 중국, 일본, 러시아 혹은 미국 등의 외세들을 뒤에 업은, 작가 자신이 ‘난해하다’란 말을 자주 써야 하듯, 어려운 시대의 답답한 체제 속 복잡한 정국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들을 통해 전환기적 우리 근대사를 재해석하도록 작가는 독자를 족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장대한 서사에서 나는 얼핏 지나칠 한 대목에 눈을 오래 멈추었다.

한미수호통상조약에 따라 보빙사 전권대사로 미국에 파견된 민영익은 미국 아서 대통령의 호의로 한국인으로서는 최초의 세계 일주 여행을 하는데 그 어디에선가 서양 시계 두 개를 산다. “기다란 쇠줄이 치렁치렁 달린 회중시계와 굵다란 가죽줄이 붙어 있는 손목시계의 하얀 자판 위를 재깍거리며 일정한 속도로 굴러가는 초침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참으로 신비스럽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러나 그 ‘신비스럽던’ 시계를 그는 오래잖아 수행원 현홍택에게 주어버린다. 양물(洋物)을 즐기는 자신이 ‘경망’스레 보이는 것 같고 게다가 그 시계에서 ‘이물감’을 느낀 탓이었다. 시계 이야기는 그 이후 다시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이 사소한 삽화는 에드워드 돌닉의 <뉴턴의 시계>를 떠올려주며 나를 붙잡았다.

내가 근년에 본 것들 가운데 가장 재미있게 읽은 이 책은 정작 그 제목(원제는 ‘시계태엽 우주 The Clockwork Universe’이다)으로 쓰인 시계 이야기는 없이 민영익보다 2세기쯤 앞서 태어난 뉴턴의 생애(1642~1727)를 중심으로 그가 이룬 과학적 업적과 근대로의 극적 전환을 이루는 과학사적 시대상을 미국 과학저널리스트가 매우 요령 있게 묘사하고 있다. 16, 17세기는 갈릴레이, 데카르트, 라이프니츠 등 중세를 탈피하고 새로운 과학시대를 여는 천재들의 세기였지만 그럼에도 중세적 어둠은 아직 아주 걷히지 않고 있었다. 셰익스피어가 만든 극장은 2천명을 수용할 만큼 컸지만 화장실 하나 없었다. 뉴턴 자신도 그처럼 중세/근대가 중첩된 면모를 갖고 있었다.

1930년대 경제학자 케인스가 경매에서 구입한 뉴턴의 친필 원고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처럼 방대한 50만 단어가 사용된 연금술 관련 글이었다. 만유인력과 운동의 법칙, 라이프니츠와 발명자 명의 싸움에서 이긴 미적분 수학 등으로 근대과학의 문을 연 천재 뉴턴도 중세적 미몽에서 미처 벗어나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중세의 연금술 덕분에 근대의 화학이 발전했다고 하지만). 돌닉은 그런 뉴턴에게서 “우주를 거대한 ‘시계태엽’ 장치로, 신은 뛰어난 시계공으로 간주되던” 근대의 과학적 세계관을 본 것이다.

이 근대과학자들은 신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하느님도 모가 있는 원을 만들 수 없다”는 과학적 엄격성을 확신하고 있었다. 수학자이면서 철학자였던 파스칼 등 당대 최고의 학자들은 신을 “한낱 창조자가 아니라 특별한 창조자이며 최고의 수학자”라고 보았다. 뉴턴은 우주와 세계에서 신의 창조적 설계를 보았다고 믿었지만, 그의 후대 과학자들은 그런 그의 시각을 통해 오히려 신의 창조적 계획을 부정하는 역설을 발전시켜 다윈의 진화론으로 신 중심주의에서 벗어나게 된다.

어떻든 뉴턴의 시대는 아직 중세적 어둠을 걷어내지 못한 가운데 근대로의 대전환을 추구하던, 신구가 뒤섞인 혼돈의 시대였다. “시계장치 우주는 정말로 굉장히 매끄럽게 작동했기에 뉴턴의 적들이 주장했듯이 뉴턴은 신이 들어갈 자리가 없는 우주관을 내놓은 것”이었다. 뉴턴은 시계태엽과 같은 정확한 엄밀성에 주목하며 자신의 우주관을 폈지만, 민영익은 시계를 신기하게 보면서도 경망스러운 이물로 여겼다. 그가 이 시계를 난초화처럼 즐겨, 척사와의 갈등을 이겨내고 근대로의 인식 전환에 노력했다면 우리 민족의 운명은 달라졌을까, 어땠을까.

문제의 이 ‘시계’ 때문에 구해 읽은 경제사학자 카를로 치폴라의 <시계와 문명>은 내 궁금증에 시사적인 답을 준다. 시계는 서양에서 13세기에 개발되고 14세기에 널리 보급되어 교회와 시청 건물에 설치되기 시작하며 17세기에는 제네바에만 30여명의 시계 장인과 꽤 많은 직공들이 있었다. 루소와 그의 아버지도 시계공이었지만, 갈릴레이, 하위헌스, 라이프니츠 등 많은 과학자들이 시계의 정밀성과 정확성에 기여했다. 시계는 “물리학과 역학의 이론적 발견이 실용화한 최초의 산업”으로서 흐르는 자연의 시간을 인간의 생활 속으로 끌어들여 ‘저녁 기도 시간’에서 ‘오후 7시’로 정량화시켰고 그럼으로써 실험과 계측을 기본으로 삼는 근대과학자들에게 망원경, 현미경과 함께 가장 중요한 과학 탐구의 도구가 되었다.

그 시계가 동양에 들어온 것은 선교사들을 통해서였는데, 청의 강희제는 선물받은 시계를 좋아했지만 ‘고급한 장난감’으로 여겨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치폴라에 따르면 그러나 일본에서는 1550년 프란시스코 사비에르가 야마구치의 성주에게 시계를 선물함으로써 서기(西器)의 실물을 보게 되고, 막부의 쇄국정책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달리 “기계식 시계를 자체적으로 만드는 방법”을 배워 16세기 말에 그 제작에 성공한다. “그들은 단순히 서양 시계를 모방하는 대신 실제로 자신들의 필요에 맞게 변형하여 확실히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 일본의 ‘탈아입구’(脫亞入歐) 지향을 이 시계 사례가 먼저 보여준다.

그러니까 시계는 민영익과 뉴턴에게나, 혹은 중국과 일본에서나 근대로의 전환의 계기로 제시되었다. 뉴턴과 그의 시대는 측시(測時)를 실험 연구와 일상생활의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일상의 삶을 재편성하며 근대화의 길로 들어섰다. 일본도 그 방향으로 따라갔지만, 민영익과 청나라는 재미있는 장난감으로 가지고 놀다 버림으로써 근대과학적 탐구에서 낙후되고 말았다. 우리가 항용 몇‘시’라고 하는 것은 ‘시계의’(o'clock) 숫자로서 생활과 의식의 진행 기준이 된다. 인식과 사유, 정신과 활동이 이 관념에 맞추어 질서를 잡고 진행의 틀을 확보함으로써 시간의 소유를 통해 공간세계를 확보할 수 있는 계기를 이룬 것이다. 시계가 기계적인 톱니바퀴로 시간을 분할하고 그 순응을 강제함으로써 시침에 따르는 우리의 삶이 타자화하는 소외를 대가로 치르게 되는 것도 분명하지만, 그것은 피할 수 없는 현대성의 대가일 것이다.

이 착잡한 생각에 문득 한마디 말이 덧붙는다. 우리 문학사에서 80대 중반의 ‘시간을 초월한 최고령 작가의 신작소설집’이 될 최일남 선생의 창작집 <국화 밑에서>의 한 대목은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시계공이나 되는 건데”라는 아인슈타인의 탄식을 인용한다. 원자력 시대를 연 아인슈타인은 정작 원자탄의 그 비인간적인 위력에 경악하여 러셀과 세계적인 반핵운동을 전개했다. 20세기의 천재 아인슈타인 앞에서 우리는 아직 19세기의 민영익과 17세기의 뉴턴이 시계를 놓고 벌이는 씨름을 보듯 트럼프와 김정은의 핵 씨름을 보며 역사 종말의 시계를 재야 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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