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환 한국권투위원회 회장과 엑토르 카라스키야 파나마 국회의원이 27일 서울 올림픽파크텔에서 ‘4전5기 챔피언 홍수환 40주년 타이틀전’ 기념행사에서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11전 11케이오승. 신설된 세계복싱협회(WBA) 주니어페더급 세계챔피언 타이틀을 놓고 홍수환과 맞붙기 전, 엑토르 카라스키야(파나마)의 전적이다. 이 중 아홉번이 1, 2라운드에 끝낸 것이다. 강한 주먹과 빠른 스피드를 동시에 갖췄다. ‘링 위의 백작’ 알렉시스 아르궤요(니카라과)는 카라스키야의 경기를 보고선 “내가 본 선수 중 최고다. 영 챔프가 탄생할 것”이라고 했다. 홍수환과의 대결 당시 17살7개월이었던 그는, 만일 이겼다면 윌프레도 베니테스(푸에르토리코·17살5개월)에 이어 사상 두번째 최연소 세계챔피언이 될 뻔했다.
카라스키야는 이듬해 서울에 와 황복수에게 판정승을 거두는 등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더블유비에이 페더급 타이틀에 도전했으나, 노련한 에우세비오 페드로사(파나마)에게 11라운드에 케이오당하는 등 홍수환전 이후 전적은 7승4패로 가라앉았고, 81년 21살에 은퇴하고 만다. 파나마인들이 ‘돌주먹’ 로베르토 두란의 뒤를 이으리라 기대했던 ‘지옥에서 온 악마’는 그렇게 사라졌다.
40주년을 맞아, 국회의원이 된 카라스키야가 26일 한국을 찾아 홍수환과 반갑게 재회했다. 3번 이상 떨어진 뒤 당선된 더불어민주당 ‘카라스키야 모임’(김부겸 김영춘 김두관 김영호 등 8명) 의원들과도 만났다. 홍수환 한국권투위원회 회장은 기념식에서 “카라스키야 덕분에 지금까지 먹고산다. 내가 진 시합의 40주년 행사를 한다고 부른다면, (나라면) 갔을지 모르겠다”며 감사를 표했다. 카라스키야도 “그 시합은 내게 인생을 가르쳐준 경기”라고 화답했다.
그의 이름 엑토르(Hector)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의 영웅과 같다. 트로이 총사령관으로 지략과 용기와 성품을 갖춘 인물이었으나, 그리스의 명장 아킬레우스와의 결투에서 패해 처참한 죽음을 맞는다. 하지만 신화가 아닌 삶은 ‘한판 승부’로 끝나지 않고, 주연과 조연이 따로 있지 않다.
권태호 논설위원 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