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팀 기자 1977년 서울 용산 장미맨션에는 얼마 전 퇴역한 미 공군 대령 존 하프스터가 살았다. 주한 미 군사고문단(JUSMAG-K) 공군 부단장을 맡았던 그는, 이제는 미 군수업체 노스럽 코퍼레이션의 항공기부문 한국지사장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하프스터는 미 캘리포니아 노스럽 본사에서 보내준 13분짜리 F-18기 프로토타입 홍보 필름 등을 한국군에 보내며 마케팅을 했다. 나중에 노스럽과 합병하는 미 군수업체 그러먼도 같은 해 경기 평택 캠프 험프리스로 ‘A6E 인트루더’ 공격기의 홍보 필름을 보냈다. ‘어떤 날씨, 어느 시간’(any weather, any time)에도 공격이 가능하다는 문구가 적힌 19분짜리 영상이었다. 이 역시 한국군에 전달된다. 앞서 1974년에는 미 군사고문단의 대니얼 매킨토시 대령을 수신인으로 페어차일드사의 ‘A-10 뉴 선더’ 테스트 필름이 항공우편으로 전달된다. 이것도 한국군이 접수한다. 옛날 잡동사니를 수집하다 보니 장미맨션을 거주지 겸 사무실로 썼을 40년 전 노스럽사 한국지사장의 낡은 명함과 오래된 필름 등속이 손에 들어왔다. 실제 구매로 이어지는 사례는 적었지만, 미 정부와 군수업체에 한국은 40년 전부터 최우수 잠재 고객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1978년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회의 한-미 관계 보고서인 ‘프레이저 보고서’에는 군사원조 대신 막대한 국방비를 한국 스스로 떠안는 구조로 만들기 위해 한국 경제를 키워야 한다는 전략적 판단이 담겨 있다. 나중에 없던 일이 됐지만 카터 행정부의 주한미군 철수안이 진행되던 1978년 2월, 하원 청문회에선 이런 말이 오갔다.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최신예 A-10 근접공중지원기를 구매할 의사가 있는가?”, “한국 경제가 호경기를 누리고 있다면 행정부는 왜 8억달러의 군 장비를 판매가 아닌 증여 형식으로 공급하는가?”(의원), “한국은 미군의 단계적 철수에 따라 예상 밖의 엄청난 경비를 지출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우리가 군 장비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이는 한국에 경제·정치적 위협을 야기시킬 것이다. 문제의 8억달러는 55억달러의 한국군 전력증강계획의 일부이다.”(해럴드 브라운 국방장관, <경향신문> 참조) 1949년 9월 국회에 나온 이승만 대통령은 미 군사고문단 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요청했다. 이후 미 군사고문단은 장비 및 훈련 지원, 안보협력, 미 국방부가 대신 구입한 장비를 한국 정부에 넘겨주는 대외군사판매(FMS), 미 군수업체와 한국 정부 간 직접상업판매(DCS) 지원 업무 등을 맡았다. 한국군의 독자적 능력이 커지면서 고문단, 지원단을 거쳐 지금은 합동군사업무단이라는 명칭으로 불리지만, 여전히 미 군수업체 무기를 한국에 판매하는 통로 구실을 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한국에서 수십억달러에 달하는 장비를 주문하는 것으로 말씀했다. 미국은 전투기든 미사일이든 가장 훌륭하다.” 캠프 험프리스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영접을 받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정상회담 뒤 무기판매 성과를 자랑했다. 한반도 위기 상황에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판매상이 휩쓸고 지나갔고, 장미맨션에선 꿈도 못 꿀 매출을 단 한 번에 올렸다. 문재인 정부가 한-미 동맹을 망친다고 비판하는 자유한국당에서는 “쓸데없는 곳에 돈 안 쓰고 그나마 무기를 샀으니 다행”이라고 했다. 트럼프에게 쓴 수십억달러 ‘특수활동비’는 여야 모두 대환영이다.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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