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불균등 발전의 불가피한 점을 인정할 경우, 그로 인해 불이익을 받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우리는 이런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기본 틀을 만드는 일을 피해 다니면서 갈등이 생길 때마다 미봉책을 써왔다. 그래서 이른바 ‘우는 아이 젖 주기’ 현상이 생겨났다. 저출산·고령화·저성장 추세로 인해 2040년에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30%는 1995년 대비 인구가 절반으로 떨어져 사실상 기능상실 상태에 빠질 것으로 예측되는데, 그중 절대다수(96%)가 지방 중소도시다. 지방의 쇠퇴는 해당 지역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중앙정부의 지원 없이는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없는 지방 중소도시들은 정부예산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고, 조만간 이 문제로 인해 온 나라가 골머리를 썩일 것이다. 따라서 지방도시 정책의 근본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마강래 교수가 최근 출간한 <지방도시 살생부>의 핵심 내용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골치가 아팠다. 그간 지방과 관련된 이야기는 ‘수도권 대 지방’이라는 이분법 구도에 충실해 복잡하게 생각할 것이 없었는데, 이 책은 기본적으로 지방에 대한 강한 애정을 바탕에 깔고 제3의 길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할 게 많아질 수밖에 없고, 그래서 골치가 아팠던 것이다. 하지만 지적인 자극을 주고 성찰을 해보게 만드는 유익한 골치 아픔이었다. 특히 다음과 같은 주장이 그런 경우였다. “수도권 규제의 효과가 나머지 88%를 차지하고 있는 지방 곳곳에 균등하게 배분되게 해선 안 된다. 국토균형발전 정책에서의 균형은 수도권과 ‘맞짱’ 뜰 만한 지방 대도시들을 키우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죽도 밥도 아닌 상태로 국가적 재정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크다.” 이 주장의 선의와 취지는 십분 이해하면서도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현 ‘서울공화국’ 체제는 다른 나라들과 맞짱 뜨기 위해 서울만 집중적으로 키운 결과가 아니었나? 그로 인해 한국이 발전한 건 인정하더라도 문제는 그 비용, 즉 지방의 낙후다. 똑같은 일이 지방 내에서 벌어지지 않을까? 나는 전북에서 가장 큰 도시인 전주에서 살지만, 평소 서울공화국 체제를 비판해온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이른바 ‘전주 패권주의’에 반대해왔다. 호남선 철도의 주요 경유지를 익산에서 전주로 바꾸려는 시도가 있었을 때도 그렇게 하는 것이 전북의 발전에 더 큰 도움이 되리라는 것은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익산 편을 들었다. 집중의 효율성이라고 하는 경제 논리를 몰라서가 아니라 뭐든지 독식하지 않고 나눠 갖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마 교수의 주장을 반박하려는 게 아니다. 마 교수가 지방 중소도시들의 생존전략으로 내세운 “분산·팽창하면 죽고, 집중·압축하면 산다!”는 슬로건은 그의 치밀한 연구 결과에 힘입어 설득력이 높다. 문제는 집중·압축의 영역에서 배제된 사람들에 대한 고려일 텐데, 이게 바로 우리 모두를 골치 아프게 만드는 문제다. 집중·압축을 어렵게 만드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마 교수가 인터뷰한 <기독교방송>(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서 이 문제가 잘 지적되었다. 정관용씨는 “집중하게 되면 소외되는 지역에서 표가 안 나오지 않습니까? 바로 그것 때문에 못 하는 거 아닐까요?”라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고, 마 교수는 그래서 행정구역 개편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 문제는 행정구역 개편의 수준을 넘어서 전반적인 한국 사회의 작동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한다. 불균등 발전의 불가피한 점을 인정할 경우, 그로 인해 불이익을 받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상을 할 것인가? 그들에게 “그냥 팔자소관으로 알고 니가 당해!”라고 말하는 철면피 수법으로 대응할 것인가? 우리는 그간 이런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기본 틀을 만드는 일을 피해 다니면서 갈등이 생길 때마다 땜질식으로 해결하는 미봉책을 써왔다. 그래서 누가 더 크게 우느냐에 따라 보상의 크기도 달라지는 이른바 ‘우는 아이 젖 주기’ 현상이 생겨났고, 한국이 세계적인 ‘시위 공화국’이 된 결정적 이유가 되었다. <지방도시 살생부>는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을 모색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주고 있다. 이 책은 정치논리와 경제논리의 상호 소통과 타협의 필요성을 시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방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분별한 예산 낭비를 비롯하여 범국민적인 공론조사를 해야 할 의제들을 많이 담고 있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낼 만하다. 지방 문제, 아니 한국의 미래에 관심을 가진 분들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지방도시 살생부를 없애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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