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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크리틱] 조금씩 나빠진다는 것 / 허문영

등록 2017-11-10 17:54수정 2017-11-10 19:32

허문영
영화평론가

담배를 피우러 심야의 런던 거리에 나섰을 때, 도로 저쪽에서 화물트럭 한 대가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나도 모르게 움찔하며 보도 안쪽으로 몸을 피했다. 물론 그 트럭은 차도를 질주하고 있었을 뿐이지만 나는 짧은 순간이나마 공포를 느꼈다.

10년 만에 다시 찾은 런던은 겉으론 별로 변한 게 없었다. 하지만 과민함 탓인지 잠시 머무는 이방인으로서의 내겐 그때의 런던이 아니었다. 거리를 걸을 때에도, 공연장에 앉아 있을 때에도, 시장의 인파 속에 떠밀려 갈 때에도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이나 미친 트럭이 이곳을 지옥으로 만들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완전히 지우지는 못했다.

영국에서 올해 5월22일(맨체스터)과 6월3일(런던)에 끔찍한 테러가 발생한 곳도 공연장, 인도, 시장이라는 일상공간이었다. 아마 이슬람국가(IS)가 바란 것도 이런 것이었을지 모르겠다. 풍요롭고 평온한 서구의 이미지에 공포와 불안의 오점을 각인시키는 것 말이다. 아이에스와 무관한 무차별 테러리즘까지 가세하면서, 그 오점은 이제 서구의 일상적 이미지가 된 것처럼 느껴진다.

런던에서 10년간 살아온 한국인에게 테러 이후의 생활 감각이 변하지 않았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트럭을 보면 테러 사건이 잠깐 떠오르긴 하지만 별로 달라진 것은 없다”고 말했다. 역시 내 불안은 이방인의 과민함 탓일까.

올여름, 한반도의 전쟁 위기가 공공연히 말해질 때, 몇몇 외신은 한국인의 놀라운 평온함을 기사화한 적이 있다. 이번은 좀 다르다는 느낌이 있긴 했지만, 나 역시 심각한 불안을 느끼진 않았던 것 같다. 누구도 사재기를 하지 않았고, 이민을 서두르는 사람도 있다는 얘기도 듣지 못했으니 많은 한국인이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외부인의 눈엔 불안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데, 정작 그 불안의 조건을 떠안고 살아가는 현지인은 왜 태연한 걸까.

이런 궁금증을 가진 적이 있다. 2차대전 때 유대인은 그토록 엄청난 학살을 당하면서도 변변한 저항을 하지 않거나 심지어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였던 것처럼 보일까. 물론 이후로 이런저런 자료를 통해 많은 국지적 저항과 탈출 시도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학살 규모에 비해 저항이 너무 왜소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로만 폴란스키의 영화 <피아니스트>(2002)를 보면서 궁금증이 약간 풀렸다. 나치가 유대인에게 처음 강요한 것은 유대인임을 나타내는 노란 표지를 가슴에 다는 것이었다. 일터와 집을 지킬 수 있다면 그 정도 굴욕은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다음 단계는 유대인 주거지 격리였다. 아직은 먹고 살며 가족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해서 받아들인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잘 알려져 있듯 박해의 단계는 집단수용소 생활, 강제 중노동의 일상, 그리고 가스실행으로 옮겨간다.

조금씩 나빠지면 얼마나 나빠졌는지 느끼기 힘들다. 정말 무서운 것은 견디기 힘들 만큼 나쁜 것이 아니라 견딜 만큼 나쁜 것이다.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선 나빠진 것들에 대한 부정적 감각을 마음속 깊이 밀어넣어 그것에 얼마간 둔감해져야 한다.

런던의 질주하는 트럭을 보며 서울을 더 평온한 곳으로 느끼는 이 감각의 관성은 얼마나 강인한 것인가. 굴욕과 불안과 공포의 조건을 그 안에서 견뎌야 하는 사람들에겐 둔감해지는 것 외엔 다른 선택이 없는 걸까. 점점 나빠져서 돌이킬 수 없이 되어버린 또 다른 문제는 얼마나 많은 걸까. 런던의 밤거리는 이런저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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