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굿바이, 정보담당관 / 석진환

등록 2017-10-31 18:27수정 2017-10-31 18:58

석진환
법조팀장

불과 1년 전만 해도 <한겨레>에는 두 부류의 기자가 있었다. ‘아이오’(IO)를 만나는 기자와 ‘아이오’를 만나지 않는 기자.

아이오(Intelligence Officer)는 일선 ‘현장’에 나가 정보 수집을 담당하는 국가정보원 직원을 뜻한다. 정보담당관이라는 공식 호칭이 있지만, 과거 국정원과 ‘긴밀’했던 검찰이나 경찰, 정치권에선 이들을 ‘연락관’이라고 불렀다. 명함에는 이름과 전화번호만 ‘달랑’ 적혀 있었다. 스마트폰 시대에도 그들은 보안을 이유로 꽤 오랫동안 피처폰을 썼다. 말쑥한 차림에 낡은 폴더폰을 쥐고 이름만 적힌 명함을 건넸던 이는 100% ‘그 회사’ 사람이었다.

<한겨레> 기자 중에 정보기관의 언론사 염탐에 문제의식이 분명했던 이들은 아이오를 만나지 않았다. 아이오가 전화하면 “정보기관 사람을 만날 이유가 없다”고, 단호히 때론 정중하게 거절했다고 한다.

나는 아이오를 만나는 쪽이었다. 대통령부터 범죄자까지, 기자는 누구든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적당한 선을 지키면 취재에 도움이 되고 정보의 깊이도 다를 거란 기대가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기사 쓰는 데 보탬이 된 적도 있다. 언론 담당 아이오를 포함해 국회나 검찰, 정부 부처 등을 취재하며 만났던 아이오들은 젊고 똑똑했으며, 또한 신중했다. ‘기관원’이라는 단어가 주는 눅눅한 느낌도 없었다.

하지만 최근 ‘까도 까도 나오는’ 국정원의 불법행위를 매일 다루다 보니 혼란스러움이 밀어닥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그들을 활용해 ‘국가정보원’이 아닌 ‘정권’안전기획부를 운영한 건 명백한 사실이다. 내가 만난 이들 중 누군가는 발을 깊이 담갔을 수 있고, 불법적인 행위를 했을 수도 있다. 예전 ‘만남’이 적절했는지 되돌아보는 일은 오롯이 내 몫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와서 든 생각이지만, 이명박 정부가 국정원 모토(원훈)로 ‘무명의 헌신’을 내세우고, 박근혜 정부가 ‘소리 없는 헌신’을 강조한 것 자체가 그들의 정보기관 이용 방식을 드러낸 게 아닐까 싶다. 표현만 바꿨을 뿐 1961년 박정희가 만든 중앙정보부의 모토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것과 똑같다. ‘정보는 국력이다’라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모토엔 적어도 ‘몰래 공작’의 음습한 냄새는 없다.

‘모토’를 끄집어내 이전 정권에 시비를 거는 이유는 내심 특정 정권의 수준과 철학이 젊은 공무원들의 삶을 너무나 모질게 흔들었다는 안타까움 때문일 것이다. 그들 중 누군가는 자신이 속한 국가조직이 불과 몇년 만에 30년 전으로 퇴행하는 모습에 괴로워했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가정에서 ‘당신은 그런 일 안 했지?’라는 눈초리에 시달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 아이오는 모두 자신의 일터를 떠나 거짓말처럼 증발했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 6월 국정원 개혁과 적폐 청산의 일환으로 ‘국내 아이오 제도의 완전하고 즉각적인 폐지’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금 어느 사무실 한쪽에서 당장 ‘할 일이 없는’ 상실감에 시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지난 9년을 청산하는 지금의 ‘살풀이’가 끝나면 궁극적으로 아이오들의 삶이 더 나아질 것으로 믿는다. 정권을 위해 ‘무명의 헌신’을 요구받지 않을 것이고, 자기 일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모르는 불안한 운명도 벗어났다고 본다. 그러니 정부가 앞으로도 ‘아이오 제도’가 절대로 부활하지 못하도록 쐐기를 박아주길 바란다. 이제 다시 만날 순 없지만, 떠나간 그들 역시 제대로 된 자신의 자리를 찾게 됐으면 한다.

soulfat@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이러다 다음 전쟁터는 한반도가 된다 1.

이러다 다음 전쟁터는 한반도가 된다

다시 전쟁이 나면 두 번째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김연철 칼럼] 2.

다시 전쟁이 나면 두 번째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김연철 칼럼]

북 파병에 ‘강경 일변도’ 윤 정부…국익 전략은 있나 3.

북 파병에 ‘강경 일변도’ 윤 정부…국익 전략은 있나

이미 예견됐던 ‘채식주의자’ 폐기 [한겨레 프리즘] 4.

이미 예견됐던 ‘채식주의자’ 폐기 [한겨레 프리즘]

[사설] 배달앱 수수료 인하안, 더 이상 시간 끌어선 안 된다 5.

[사설] 배달앱 수수료 인하안, 더 이상 시간 끌어선 안 된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