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난관은 경제가 아니라 정치·외교 쪽에 있다. 핵심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공산당이 지배하는 권위주의 체제의 앞날에 대한 문제가 있다. 다른 하나는 현실주의와 자유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서구 중심 국제질서와 중국의 갈등이다. ‘선두 강대국’이 되겠다고 한 이상 패권국인 미국과의 알력은 피할 수 없다.
중국의 부상 자체는 지구촌 역사 발전의 필연이다. 중국은 자신의 꿈의 실현이 인류의 부채가 아니라 자산이 되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를 진전시키고 불균형을 개선하며, 대외적으로 평화·협력의 원칙을 충실히 지키고 지구적 삶의 환경 개선 등 인류 과제의 해결에 기여하는 일이다.
‘중국의 꿈’은 웅대하다.
2050년 전까지 중국을 ‘부강하고 민주문명적이며 조화롭고 아름다운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으로 건설하겠다는 국가 비전이 10월 하순 끝난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공식화됐다. 공산당 창당 100돌(2021년)과 신중국 성립 100돌(2049년)이 이정표다. 2020년까지 샤오캉(小康,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림) 사회를 만들고, 2035년까지 선진국으로 진입하며, 2050년까지 종합 국력과 국제 영향력에서 선두를 차지하는 강대국이 되겠다고 한다. 누구와 싸워도 이기는 일류 군대를 만들겠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다분히 미국을 의식한 이런 비전은 중국 개혁개방의 설계자인 덩샤오핑(1904~97)의 구상을 구체화한 것이기도 하다. 그는 2000년까지 빈곤 해소 단계인 원바오(溫飽) 사회를, 2020년까지 샤오캉 사회를, 2050년까지 이상적 복지사회인 대동(大同) 사회를 이루겠다고 했다.
중국은 이런 꿈의 실현이 200년 전 지구촌 최대 경제권이었던 자신의 위상을 되찾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앞으로 서구와는 다른 새로운 문명표준을 제시하겠다고 말한다. 실제로 지구촌의 근대화 초기인 1830년에 중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몫은 지금의 미국보다 컸다. 과연 이런 꿈은 순조롭게 이뤄질 수 있을까? 또 과거 서구 나라들처럼 그 과정에서 인류에 큰 짐을 지우지는 않을까?
1인당 소득에 관한 한 중국이 2035년까지 선진국에 진입할 가능성은 크다. 중국의 현재 국내총생산은 80조위안으로, 1인당 9천달러 수준이다. 2035년까지 연 5~6%씩 성장하면 1인당 소득은 대략 3~4배로 늘어나 3만~3만5천달러가 된다. 지구촌 전체의 평균 소득은 그때까지 최대 2배로 높아져 1인당 2만달러 정도가 될 것이다.
중국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30년 정도의 고도성장을 경험했다. 이후 중국의 성장률 하락 폭은 우리보다 크지 않다. 우리와 다른 중국 경제의 특성이 여기에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수십년 동안 자본 부족과 무역적자에 시달렸지만, 중국은 초기부터 무역흑자를 계속 냈고 저축률이 높아 자본이 별로 모자라지 않았다. 외국인 직접투자도 우리보다 훨씬 활발했다. 또 우리는 1인당 소득이 9천달러에 이른 1990년대 중반에 도시화가 거의 끝났으나 중국에는 지금도 농촌에 수억명이 산다. 노동력에 관한 한 그만큼 여유가 있는 셈이다. 중국은 중소득국에서 고소득국으로 올라가는 데 필수적인 혁신 능력에 대한 준비도 과거 우리보다 낫다.
물론 중국 경제는 여러 심각한 과제를 안고 있다. 불평등 문제가 특히 그렇다. 지금의 중국 경제는 세계 경제의 축소판이다. 15% 인구의 선진국이 지구촌 소득의 60%가량을 차지하고 아래쪽 절반 인구는 힘겹게 살아가듯이 중국도 심한 불평등 구조를 갖고 있다. 이 문제를 개선하지 못하면 성장 추세를 이어가기가 만만치 않다. 하지만 중국 국내의 불평등 해결이 세계 전체의 그것보다 어려울 것으로 볼 이유는 없다.
큰 난관은 오히려 경제가 아니라 정치·외교 쪽에 있다. 핵심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공산당이 지배하는 권위주의 체제의 앞날에 대한 문제가 있다. 중국 안에서는 이와 관련해 두 시각이 있다. 주류는 서구의 눈으로 중국 정치를 재단하려 하지 말고 중국에 맞는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쪽이다. 민주주의를 제한적으로 수용하겠지만, 나라의 통합과 발전을 위해서는 권력집중 체제가 유지돼야 한다는 것이다. 고도성장의 자신감, 안정 욕구 등과 결합한 이런 시각은 결국 기득권 구조를 옹호하는 성격을 갖는다. 이런 인식은 ‘중국 모델’ 강조, 중화민족주의, 중국예외주의 등으로 표현된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이번 대회를 통해 권력을 더 강화한 배경에 이런 분위기가 있다. 이는 분명 우리나라가 경험하고 쟁취한 민주주의의 일반론에 역행하는 것이지만, 지금 중국에 닥친 갖가지 문제를 해결하려면 강력한 지도력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근거가 없지는 않다.
이에 맞서 민주주의의 보편성을 주장하는 자유주의자들은 아직 중국 안에서 세력이 약하다. 하지만 일당독재가 영원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 속도 문제는 두고두고 중국의 앞날을 좌우할 난제가 될 것이다. 공산당도 이미 계급정당이라기보다 중산층 중심의 대중정당으로 바뀐 상태다.
다른 하나는 현실주의와 자유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서구 중심 국제질서와 중국의 갈등이다. 중국이 ‘선두 강대국’이 되겠다고 한 이상 기존 질서, 특히 패권국인 미국과의 알력은 피할 수 없다. 미국의 대외정책은 정권과 상황에 따라 제국주의·일방주의와 국제주의를 되풀이해왔으며, 특히 상대국에 따라 정책 기조를 달리한다. 중국도 나라별로 다르게 접근한다. 시진핑 정권은 초강국인 미국에 대해 신형 대국관계를 요구하며 평화로운 관계 재정립을 위한 협력과 대화를 강조한다. 이웃한 군사대국인 러시아와는 동맹에 가까운 관계를 만들어간다. 반면 자신보다 힘이 약하다고 여기는 주변국에 대해서는 ‘핵심 이익’을 내세우며 압박을 강화한다. 중동·유럽 등 멀리 떨어진 나라에 대해서는 일대일로 등을 통해 상호 이익을 강조하며 영향력을 키운다.
중국의 이런 위계적인 대외정책은 오랫동안 이어져 온 중화주의 천하관과 조공질서를 일정 부분 반영한다. 시진핑 주석은 인의를 기반으로 하는 ‘왕도’와 무력에 기대는 ‘패도’를 구분하고 중국은 왕도를 추구한다고 했다. 그러나 미국처럼 그의 대외정책도 왕도와 패도가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중국 외교의 핵심 과제는 미국과의 관계다. 두 나라의 국력 전망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시각이 대체로 일치한다. 21세기 중반까지 경제·군사·정치·기술·문화 등 모든 면에서 미국 우위가 유지되지만, 아시아·태평양 지역만을 놓고 보면 막상막하라는 예상이 그것이다. 이론적으로는 이 지역에서 미국 주도, 중국 주도, 공동 주도가 모두 가능하다. 실제로는 중국의 영향력이 향상되는 가운데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주도하지 못하고 사안별로 갈등과 협력이 되풀이될 것이다. 이념 또는 문명적 차원에서 보더라도 서구식 패턴에 중국식 사고방식이 뒤섞일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는 올해 대중국 수교 25돌을 맞았다. 교역 규모는 1992년 64억달러에서 지난해 무려 2114억달러로 늘었고, 이제까지 60여차례 정상회담이 있었다. ‘선린우호’로 출발한 두 나라 관계는 협력동반자(김대중 정권), 전면적 협력동반자(노무현), 전략적 협력동반자(이명박·박근혜), 실질적 전략적 협력동반자(문재인)로 발전해왔다. 이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문제에서 보듯이, 미-중 패권 갈등에 대한 우리나라 태도가 한-중 관계의 주요 변수가 되고 있다. 우리로선 두 가지 큰 선택이 가능하다. 하나는 힘의 외교를 전제로 어느 한쪽에 확실히 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미-중 협력의 매개가 돼 공존·공영을 이루고 북한 핵 문제도 평화롭게 푸는 길이다. 물론 그 중간에도 여러 길이 있을 수 있다.
지난 5년 동안 중국이 세계 경제 성장에서 차지한 비율은 30%를 넘었다. 그 비중은 앞으로 더 늘지 않고, 인도 등에 주된 자리를 물려줄 것이다. 그렇더라도 앞으로 수십년간 중국이 지구촌 경제 성장에서 차지하는 몫은 여전히 크며, 우리 경제에 대해서는 더 그렇다. 지난 수백년 동안 그랬듯이 세계는 앞으로도 각국의 발전 속도 차이로 요동을 치다가 모든 나라가 일정한 소득 이상이 되고 나면 새로운 균형을 이룰 것이다.
중국의 꿈에는 독소가 있다. 수시로 제기되는 황화론은 세계의 우려와 두려움을 보여준다. 하지만 중국의 부상 자체는 호불호를 떠나 지구촌 역사 발전의 필연이다. 중국은 자신의 꿈의 실현이 인류의 부채가 아니라 자산이 되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를 진전시키고 불균형을 개선하며, 대외적으로 평화·협력의 원칙을 충실히 지키고 지구적 삶의 환경 개선 등 인류 과제의 해결에 기여하는 일이다.
김지석 대기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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