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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승욱의 증상과 정상] 자기와의 연대

등록 2017-10-29 19:00수정 2017-10-29 19:28

이승욱
닛부타의숲·정신분석클리닉 대표

세상의 모든 연대에 앞서 우리는 먼저 자신과 연대하면 좋겠다. 연대는 타자에 대한 연민과 깊은 우정에서 시작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연민과 선한 우정으로, 자기와의 연대를 이야기하려 한다. 먼저 게으름에 대해 말하고 싶다.

이옥순은 그녀의 책 <게으름은 왜 죄가 되었나>에서 부지런함과 게으름은 서로 반대말이 될 수 없음을 설명한다. 개미와 베짱이같이 게으름을 죄악시하는 메시지가 유포되는 것은 지배자, 자본가의 이득이 우선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게으름에 대해 통용되는 믿음은, ‘쓸모없는 정신상태이며 쓸모없는 인간이 되는 지름길’ 정도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게으른 삶을 강력히 소망한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많이 벌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게으르게 살기 위함’ 아닌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월든>에서 소개한 에피소드처럼 말이다. 전세계를 다니며 무역을 하고 많은 돈을 벌고 있다며 떠벌리는 부유한 무역상에게 소로는 묻는다. “그렇게 돈을 많이 벌어서 무엇을 하려 하는가?” 그러자 그 무역상은 “이렇게 조용한 바닷가에 집을 짓고 바다를 보며 편하게 살고 싶어서”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소로는 속으로 생각한다. ‘나는 지금 벌써 그렇게 하고 있는데….’

게으름에 대한 우리의 야망(?)을 정리하자면 이런 것이 아닐까. ‘게을러질 수 있을 때까지 게으르면 안 된다!’ 게으를 수 있는 권리, 게으름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은 환상하는 만큼의 부를 가질 수 있게 되었을 때이며 그 이전에는 게을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 게으름에 대한 우리의 양가적인 태도인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잠깐의 휴식조차 편히 누리지 못한다.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어학 공부를 해야 하고, 빈 시간이 있으면 자기계발서를 읽으며 심기일전을 도모하며, 새벽잠을 포기하면서 또 하나의 자격증을 따려 한다. 이렇게 열심히 살지 않으면 자신이 시간을 허비한다면서, 자신은 곧 도태될 것이라며 불안해하고 자책한다.

왜 게으르게 살면 안 되는가? 중요한 원인은 자신의 ‘게으름’에 대해 자기 스스로가 가장 신랄하게 비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내면의 목소리는 사실 자신의 것이 아니라 타인의 가치가 내재화된 것일 가능성이 크다. 게으르지 말라는 부모의 강압, 최선을 다하라는 학교의 주입, 열심히 살자고 독려하는 직장 상사들…. 그래서인지 우리는 사실 너무 열심히 산다. 전국의 모든 술집에서 술 취한 우리는 제각각 목소리를 높여 얘기한다. 나 정말 열심히 살아왔다고, 나 정말 최선을 다해 인생을 살았다고. 울분을 토하며 자신이 게으르지 않았음을 웅변한다.

언뜻 모순적으로 읽히겠지만, 게으름은 우리를 안정시키는 ‘에너지’이다. 모든 에너지는 다 좋다. 진정한 문제는 게으름이 아니라 쉼조차 게으름이라고 믿는 태도와 그것을 비난하는 마음이다. 많은 생물체는 먹이를 구하는 때를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을 놀고 쉬고 장난치고 그렇게 아주 게으르게 지낸다. 인간도 그럴 수 있지 않은가 말이다. 충분히, 충분히, 충분히 쉬었다고 느낄 때까지,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쉬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먹고사냐고 힐난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삶을 상상이라도 하자. 최소한, 충분히 게으를 수 없다면, 게을러지고 싶은 자신을 비난하지는 말자. 그래야 우리 생명을 온전히 보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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