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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크리틱] 두 다큐멘터리 / 허문영

등록 2017-10-20 19:11수정 2017-10-20 19:32

허문
영화평론가

극영화를 보면서도 잘 짜인 이야기의 영화보다는 다큐멘터리적인 영화에 이전보다 더 끌리게 된다.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과 프랑스 누벨바그가 그랬듯, 영화가 모종의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다큐멘터리의 방식에서 영감을 얻어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 사람의 관객으로서도 스크린에 등장하는 거리와 건물과 행인과 풀잎과 강물이 이야기의 도구로서가 아니라 단독자로서의 생기와 표정으로 빛날 때, 더 깊은 감흥을 느끼게 된다.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에 대해서도 이전보다는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된다. 물론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보다는 사람들의 일상을 다룬 다큐멘터리에 더 많은 눈길이 간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4편의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그중 두 편의 다큐멘터리에 대한 짧은 소감을 말하려 한다.

한 편은 프랑스 감독 에마뉘엘 그라가 만든 <마칼라>이다. 올해 칸영화제 비평가 주간에서 대상을 받은 이 다큐멘터리는 콩고의 외딴 산간에 사는, 아내와 두 아이를 둔 젊은 사내가 숯을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파는 과정을 꼼꼼히 기록한다.

사내의 작업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원시적이다. 족히 200살은 되어 보이는 거대한 나무를 손도끼 하나로 패고 또 패어 베어낸 뒤 즉석에서 흙을 모아 숯가마를 만들고 불을 지핀다. 더 놀라운 것은 운반 과정이다. 먼저 자전거 하나에 1톤이 넘는 숱을 아슬아슬하게 쌓아 묶는다. 사내는 부서질 듯한 자전거를 끌고 시장까지 50㎞ 거리를 며칠에 걸쳐 비틀거리며 걸어간다. 굉음의 화물차가 자전거를 쓰러뜨리면 다시 묶어 세우면서 황갈색 흙바람이 끝없이 불어오는 메마른 길을 그렇게 하염없이 걸어간다.

이 고단한 노동의 기록에는 모종의 감동이 있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장면들이 있다. 사내의 가족은 쥐를 구워 먹는다. 쥐가 식용인 지역에선 일상일 것이다. 그런데 이 장면은 두 번 등장하고 쥐는 매번 클로즈업된다. 감독에게 이들이 쥐를 먹는다는 사실이 왜 중요했을까. 혹시 한 아프리카인의 일상이 얼마나 비정상적인 것인지 강조하고 싶었던 것일까. 결국 그는 비서구의 비참과 가난을 스펙터클화하고 있는 건 아닐까. 보는 내내 이런 의구심을 지우기 힘들었다.

다른 한 편은 중국 감독 왕빙의 <미세스 팡>이며,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여인 팡슈잉의 마지막 날들을 기록한다. 기념사진을 찍는 듯 세 장소에서 미세스 팡이 서 있는 짧은 시작 장면들이 지나가면 7개월 뒤 삐쩍 마른 얼굴로 입을 벌린 채 허공을 바라보며 누워서 죽어가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등장한다.

이 갑작스러운 전환을 제외하면 이 다큐멘터리의 놀라운 점은 놀라운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 거의 변화 없이 누워 있는 그녀의 모습과 그녀를 돌보는 가족의 일상이 전부다. 우리는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없으며, 근심과 피로가 뒤섞인 가족들의 표정과 몸짓도 전혀 특별할 게 없고, 슬픈 음악도 흐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의 죽어가는 얼굴, 말할 수도 표현할 수도 없는 얼굴을 지켜보며 문득 깨닫게 된다. 미세스 팡과 별로 다르지 않았던, 아니 더 고통스러웠던 선친의 마지막 날들을 함께했던 나도 죽음에 조금씩 다가가고 있던 한 인간의 얼굴을 이토록 오래 바라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어떤 설명도 애도 장치도 없이 왕빙의 카메라는 죽음을 앞둔 한 여인의 얼굴을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인간의 예의와 카메라의 예의를, 그리고 죽음 자체를 숙고하게 한다. 이런 다큐멘터리는 잊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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