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호
논설위원
한 중년 부부 관객에게 소감을 물었다. “자살인지, 타살인지는 잘 모르겠고, 결국 탐욕이 문제였네요”라는 철학적 반응이 나왔다. 영화 <김광석>, 평일 아침 극장이었다.
영화를 본 뒤, 수습기자 시절 첫 취재수첩을 들췄다. 3년 전 선배 형들이 저지른 집단 성폭행 사건 공범으로 엮여 보호실 철창 안에 갇혀 있다가, 새벽녘 ‘어떻게 왔냐’고 묻는 꾀죄죄한 기자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도 모르겠다”고 항변하던 유아무개(당시 21살·섬유공장 직원)씨. 취재 경력 2주일, 기자라 하기도 힘든 때였다. 하지만 경찰조서에는 만취해 몸도 못 가눴다는 피해자가 3년 전 상황을 범인 4명 몸동작 하나하나 생생히 기억한다는 게 납득이 안 됐다. 이를 묻자, 당혹스러워하던 경찰관 표정이 되살아난다. “검사님이 ‘다른 놈들은 다 시인하고 피해자랑 합의도 했다. 너만 남았다. 계속 이러면, 1년 받을 거 2년 받는다’고 다그쳐 자포자기했어요”라고 그는 말했다. 며칠간 허둥대다, 라인이 바뀌고, 그리고 잊어버렸다. 또 당뇨병 환자 황아무개(45)씨가 교통사고로 경찰조사를 받다 수갑 찬 상태로 쇼크사 했는데, 가혹행위 또는 방치가 없었는지 의혹이 일었다. 이 역시, 벽에 막혀 관뒀다. 수습 첫 경찰서에서 일어난 일만 추린 것이다. <김광석>을 보며, 기자로서 부끄럽고 그들에게 미안했다. <문화방송>(MBC) 이상호 기자가 김광석을 취재할 때, 그도 수습기자였다. 그리고 나와 달리, 20년을 추적했다.
다만 2012년 백지연 인터뷰에서 “100% 아니면 못 쓴다” 했는데, 아쉽게도 영화가 ‘100%’는 아닌 것 같다. 또 김광석의 아버지, 어머니, 형, 누나, 동료 등 죽음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의 주장은 차고 넘치는데, 경찰과 부검의 등에 대한 취재 장면은 없다. <김광석> 비판은 몇 가지로 압축된다. 우선, 명확한 근거 없이 타살 혐의점을 강하게 풍겨 특정인에 대한 인권침해 요소가 강하다는 점, 또 확실치 않은 정황에 의존하는 등 논리적 귀결성이 떨어져 저널리즘 기본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김광석>이 저널리즘 관점에선 보완할 점이 많다고 본다. 설령 결과적으로 그의 주장이 사실로 판명된다 하더라도, 현 취재 단계에서 그렇게 보도하느냐는 다른 문제다.
하지만 언론은 ‘합리적 의심’에 근거해 의혹을 제기하는 게 역할이다. ‘무죄 추정 원칙’은 사법적 논리다. 언론에 이를 따르라 한다면, 수사권 없는 언론은 발표 기사 외에 무엇을 쓸 수 있을까. 그리고 서해순은 어쨌든 김광석과 관련해선 ‘공인’이다. ‘합리적 의심’과 ‘무책임’, 또는 ‘냉정’과 ‘열정’, 또는 사회적 ‘공기’와 ‘흉기’, 그 사이에 희미한 선이 있을 것이다.
18일 밤 이상호 기자와 통화했다. ‘의혹 제기에서 멈췄어도 말하고자 하는 바를 충분히 알릴 수 있었을 텐데, 이렇게까지 몰아붙여야 했느냐’고 물었다. 그는 “영화라는 매체 특성”을 이야기했다. “시사보도처럼 두루뭉술하게 갔다면 공론화가 될 수 있었을까”라고 했다. <김광석>에 ‘이상호’만 보인다는 지적에는 “스토리를 ‘김광석 사건을 추적하는 기자’로 잡았다. 외국의 경우,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마이클 무어 등 감독이 출연해 풀어나가는 방식이 흔하다. 영화 <공범자들>도 비슷한 형식이다. 또 김광석의 저작권과 초상권을 서해순씨가 다 갖고 있어, 포스터에 김광석을 쓸 수 없었고, 노래도 김광석이 작곡하지 않은 곡만 겨우 썼다”고 했다. 그는 “지금 왜 김광석이냐, 생뚱맞다 할 것이다. 나는 공권력의 태도와 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싶었다. 한 해 변사자가 3만명이다. 의문이 있어도, 그냥 지나간다. 김광석, 그의 딸, 모두 변사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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