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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두루마기

등록 2005-11-21 17:42수정 2005-11-21 17:42

유레카
엊그제 끝난 아펙 정상회의 마지막 날, 얼굴빛이 제각각인 정상들이 두루마기 차림으로 나란히 선 모습은 보기에 흐뭇했다. 겨울철 방한 용도를 아는지, 소매 안으로 손을 넣은 이들한테선 제법 자연스런 맵시가 풍겼다.

두루마기는 겨드랑이 아랫자락이 세폭으로 갈라져 치렁치렁한 도포에서 나왔다. 고려의 백적포, 조선의 직령포 등이 그것인데, 도포는 사대부와 유생들의 예복이자 외출복이었다. 조선 후기까지 도폿자락 휘날리며 거리를 걷는 것은 양반들만의 특권이었다. 두루마기는 19세기 말 개화기 복식개혁 때 평민 사이에 두루 퍼졌다. 고종은 장옷, 통치마, 도포 등을 없애고 간편하고 실용적인 옷을 권장했다. “솜을 덧대면 이불로 쓰기에도 마땅한 옷으로 평판이 자자했다”(국어학자 송백헌)고 전한다.

평민의 옷은 허례와 치장 대신 실용을 택했다. 도포의 넓은 소매와 술띠는 사라지고, 긴 옷자락은 짧아졌다. 말의 뿌리도 아랫 자락이 터지지 않고 ‘두루 막혔다’는 데서 왔다는 게 정설이다. 양반·상민·남녀를 가리지 않고 입었고, 흰색은 때가 많이 타니 색색의 물감을 들였다. 남자는 방한용으로, 여자는 멋내기에 제격이어서 ‘만민 평등의 옷’(역사학자 이이화)으로 평가받았다. 일제는 고종의 장례식 때 전국에서 두루마기를 입은 조선인이 몰려들자 백의에 대해 심한 거부감과 경계심을 나타냈다.

정상들이 입은 두루마기는 국내 최고 한복 디자이너가 만들었다. 벌당 수백만원은 족히 된단다. 질감이 좋고 번쩍임이 적은 최고급 자미사 비단을 썼고, 십장생 등 다양한 전통 문양을 손으로 직접 새겨넣었다. 몇몇 정상은 그 아름다움을 극찬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두루마기 차림의 정상들을 뒤에 둘러세우고 “역내 격차와 양극화 해소”를 주창했다. 정상들이 반상 구별을 없앤 ‘평등의 옷’을 입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 아름다움에 더 매료되지 않았을까.

김회승 논설위원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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