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에디터 문정인 청와대 통일외교안보 특보가 보수세력의 단골 표적이 됐다. 보수 야당은 문정인 특보를 철없는 “반미주의자”나 “북한 대변인”으로 몰아붙이며 해임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보수세력은 왜 문정인 특보를 미워하는가?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문 특보가 지난 6월 워싱턴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북한이 핵·미사일 활동을 중단하면 미국과 협의해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축소할 수 있고 한반도에 전개되는 미국의 전략무기를 축소할 수 있다”고 발언한 데 대해 보수 언론이 포문을 열었다. 최근에는 “한-미 동맹이 깨진다고 하더라도 전쟁은 안 된다”는 문 특보의 발언이 도마에 올랐다. 따져보면 북한의 핵·미사일 활동 중단과 한-미 연합훈련 축소로 북핵 협상의 돌파구를 마련하자는 제안은 미국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제기된 외교 해법이고, 실제 지난 8월 미국은 한-미 을지훈련 참가 규모를 축소했다. “한-미 동맹이 깨진다고 하더라도 전쟁은 안 된다”는 발언을 ‘한-미 동맹을 깨자는 주장’으로 교묘하게 몰아붙이는 이들은 한국이 한-미 동맹을 깨지 않기 위해 전쟁이라도 벌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인가. 그들은 문정인 특보를 공격함으로써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이 친미세력이 그어놓은 선 안에서 절대로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고자 한다. 한-미 관계는 소중하지만 한-미 동맹을 종교처럼 떠받들면서 미국과 다른 어떤 목소리도 낼 수 없게 된다면 문제라는 문정인 특보의 주장을 그들은 불편해한다. 문 특보는 외교적 해법으로 북핵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제안하는 미국 내 저명한 전문가들과 협력해왔고, 중국·일본·러시아에도 폭넓은 인맥을 가진 외교·안보 전문가다. 한-미-일 협력과 함께 중국·러시아 등과의 관계도 발전시켜 한국의 외교 공간을 넓혀야 한다고 제안해왔다. 한-미 동맹을 중시하면서도 한국의 입장에서 정책을 추진할 수 있고 중국, 러시아와도 협력할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을 한국의 친미 보수세력은 참을 수 없는 것이다. 병자호란 시기에 ‘명은 천자의 나라이고 청은 오랑캐’라고 주장하며 “명의 재조지은(망할 위기에서 구해준 은혜)”만을 떠받들다가 온 나라를 재앙으로 몰아넣은 이들과 과연 다를까. 현재 상황에서 한국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계속 미국에 끌려만 간다면 그 끝은 무엇일까?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위트로 국내·국외에서 매일 불안을 부추기고 있고, 백악관 참모들, 국무장관 등과 불화를 빚으며 내분으로 갈팡질팡하고 있다. 트럼프의 측근이었던 공화당의 밥 코커 상원 외교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분별없는 위협이 미국을 3차 세계대전의 길로 이끌 위험이 있다”고 비판할 정도다. 군과 장성들에게 힘을 싣고 국방예산을 전년 대비 10% 이상 늘리고 있지만, 외교를 담당하는 국무부는 노골적으로 무시하며 주요 자리도 채우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한국에도 “한-미 에프티에이(FTA) 폐지” “주한미군 철수” 위협 등으로 에프티에이 재협상, 사드 조기 배치를 밀어붙일 뿐, 동맹을 존중하는 태도는 찾아볼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협박성 트위트를 앞세워 동맹국들에 값비싼 첨단무기 구매를 압박해 군수업체들의 배를 불리고 무역협상에서 미국에 유리하도록 ‘항복’을 받아낼 수 있겠지만, 결국 미국 패권의 쇠락을 가속화하는 소탐대실일 수밖에 없다. 미국의 소프트파워와 시스템의 설득력은 무너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수소폭탄 실험에 대한 보복으로 핵 공격을 명령한다면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어떻게 할 것인가? 최근 <워싱턴 포스트>는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 매티스 장관이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려 할 수도 있지만 아마도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명령을 따르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한국은 어떻게 할 것인가?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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