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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병익 칼럼] “몸은 땅에, 영혼은 노을에”

등록 2017-09-28 17:52수정 2019-10-17 16:32

지난 무더위를 나는 조선희가 소설로 재현한, 나보다 한 세대 위의 <세 여자>와 지냈다. 나는 상실과 포악의 시대에 이념과 실천으로 도전하는 세 여자와 11명의 율사들을 통해 불의와 부정에 저항한 인물들의 이 땅에서의 그 뜨거운 투쟁에 감동했다. 그 서사들은 열정이 연민을 불러오는 고단한 우리 민족사가 당한 수난의 그림이었고 그 인물들에 서린 안타까움이었다.

김병익
문학평론가

지난 무더위를 나는 조선희가 소설로 재현한, 나보다 한 세대 위의 <세 여자>와 지냈다. 작가는 러시아의 카레이스키 무용가 비비안나가 방한하며 보여준 사진에서 물놀이를 하는 천진한 세 처녀를 발견하고 그들의 생애를 추적해서 주세죽, 허정숙, 고명자를 불러냈다. ‘20세기의 봄’이란 부제의 시대와 그 발랄한 여인들의 연배가 봄처녀다운 것도 맞지만, 그들의 생애는 결코 봄이 아니었고 그처럼 결코 순진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제각각의 ‘인생유전’을 살아야 했던 기구한 운명이었다. 그들은 모두 당대 유행의 ‘주의자’로서 임원근, 박헌영, 김단야 등 역시 공산당원과 결혼하여 독립과 혁명 운동에 동참했다.

소설의 시작은 상해였지만 그들의 삶은 한반도와 상해, 연안의 중국, 동경과 미국, 모스크바와 알마아타로 뻗쳤고, 선택 혹은 추방이나 탈출로 식민지 백성다운 디아스포라의 길을 헤맸다. 그들은 남편들과도 도피행각으로 헤어지거나 기약할 수 없는 이산으로 흩어졌고 남편 친구와 재혼하며 동지적 관계를 유지한다. 그러나 양차 대전의 간전기(間戰期)는 세계 역사에서도 이념과 사상에서 가장 착잡하고 어지러운 시대였고 더구나 그들의 활동 무대인 중국은 국공 대결과 일본 침략으로 내전에 이른 전쟁터였으며 공산당원은 연안으로 장정의 지친 걸음을 옮겨야 했다. “이제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조국 해방을 한 뼘 당길 수 있다면 기꺼이 한 알의 밀알이 되리라는 인생관으로 살아온 세죽에게 1937년은 기독교적 또는 유물론적 가치관의 회의와 환멸에 처박히는 해였을 것이다.”

물장구를 치며 놀던 사진 속의 세 여인은 이후의 운명에서 제각각의 스산스러운 길로 갈라지게 된다. 모스크바공산대학에서 공부한 고명자는 일제 말기에 귀국해서 친일 잡지의 기자로 부역을 하고, 김단야와 재혼한 주세죽은 간첩 누명을 쓰고 딸 비비안나를 모스크바 유아원에 남겨둔 채 카자흐스탄으로 유배되며, 허정숙은 모스크바와 뉴욕에 유학을 다녀오고 무한에서 중국공산당에 합류, 모택동의 대장정에 동행하여 태항산에서 종전을 맞는다.

세 유랑녀들은 끝내 서로 어긋난 결말에 이른다. 강경 거부의 딸 고명자는 서울에서 6·25를 맞아 사역에 동원되며 굶주림과 병으로 더없이 쇠약해져 “공기가 무거워 숨쉬기조차 힘들” 정도의 사경 끝에 “마흔여섯 해를 머물던 한 영혼이 떠났음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상태로 고독하게 종생한다. 무용수가 된 딸을 보러 모스크바에 간 주세죽은 그녀를 맞는 사위에게 “입술을 들어올리기조차 힘든” 목소리로 “너무 피곤하구나. 비비안나에게 고맙다고 전해주게”란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둔다. “전쟁터와 감옥에서 비명횡사하거나 국경을 넘다 객사해 마땅한 험난한 시대에 침대 위에서 자연사를 누리게 되어 감사해하고 있었을까. 그녀는 거친 호흡을 몰아쉬더니 마침내 고요해졌다.”

허정숙은 아주 다행한 마지막을 맞는다. 임원근 이후 송봉우, 최창익 등 여러 남편을 거쳤지만 팔로군으로 연안에서 활동했고 해방으로 귀국한 후 남로당과 연안파를 숙청한 김일성 치하에서도 문화선전상과 최고재판소장 등의 권세를 누리다 아흔 살로 장서했고 평양 애국열사릉에 묻혔다. 그녀야말로 “자신의 남자를 스스로 캐스팅했고 때로 비운이 감돌긴 했지만 끝까지 활기찬 인생을 살았다.” 5개국어를 하는 당대 최고 인텔리인 허정숙도 그러나 삶의 비감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50년 인생인데 한 5백년은 산 것 같구나. 인생이 너무 길구나” 한탄하며 행군 중에 숨진 두 병정의 주검을 이름없는 산골짜기에 묻고서 “몸이 땅에 묻히면 영혼은 노을에 묻히는가”라고 탄식한다.

나를 전율시킨 허정숙의 이 탄식은 아마 작가 조선희의 말일 것이다. 그녀는 비비안나가 한국에 왔을 때 보여준 세 처녀의 물놀이 사진에서 영감이 떠올라 ‘세 여인’의 생애를 추적하며 문학적 상상력으로 20여년 동안 숙성시켜 육화된 인물로 그 여자들의 운명을 재현했으리라. 그 운명들을 개인의 선택이라기보다 그들이 속해야 했던 시대의 아픔으로 바라본다. 주세죽이 남편 박헌영이 죽은 줄 알고 김단야와 재혼했다고 고백하자 박헌영은 이런 말로 아내를 용서한다: “우리가 살아온 시대는 개인의 이성과 판단을 넘어서 있소. 용서한다면 시대를 용서해야겠지.” 세 처녀는 개인을, 그 개인들의 선택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 시대에 구속되어 식민 통치와 현대사의 억압과 고통 속에서 시달려 시들고 만 ‘희생화’(犧牲花)였다.

조선희의 안타까운 민족 서사 <세 여자>에 달아 읽은 것이 장준환의 <변호사들>이었다. 허정숙의 아버지로, 딸의 도전적인 삶을 지원해준 변호사 허헌의 생애가 궁금해서 찾은 그 책의 낯선 저자는 19세에 이주하여 뉴욕에서 활동하는 재미 변호사로 소개되고 있다. 그 책은 한국 정치사와 법조계의 현실에 소상했고 저자는 내 가장 가까운 친구였던 고 황인철 변호사와 평소 존경해온 한승헌 선생을 포함한 11명의 변호사들의 의로운 저항적 활동을 묘사하고 있었다. 민권 변호사로서의 그들의 헌신은 대충 짐작하고 있었지만, 저자는 당시의 사법계와 정계, 사찰기관의 실제를 파헤침으로써 당시 법조계와 권력의 타락과 그에 항의하는 율사들의 민권과 민주주의를 향한 열정과 그 때문에 당해야 했던 수난들을 아프게 추적한다. 시위 학생들, 고문으로 간첩이 된 사람들에 대한 폭압과 그들의 인권을 방어하려는 변호인들의 고투는 식민지 시대의 민족변호사들에 결코 못지않은 것이었다.

민족-민권 변호사들이 식민-독재 권력들에 대항하며 대체로 무료 변론을 해온 율사들의 정신과 투쟁은 저자가 그들에게 붙인 제목들로 압축된다: “항소는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라며 사형을 선택한 안중근 의사의 변호인 안병찬, “만인 가운데 하나를 만나기도 어려운” 그래서 이승만 독재에 맞섰던 김병로, “법복을 입은 독립 투사”로 항일 지사들의 변론을 가장 많이 맡은 이인, “대한민국에서 부를 수 없었던 불온한 이름”이지만 신간회 운동 등을 주도한 허헌, “법은 올바른 입법자와 운용자를 만날 때 비로소 진가가 발휘되는 운”이라며 박정희 독재에 맞선 이병린, “지혜의 소금, 양심의 소금, 용기의 소금”으로 인권변호를 주도한 이돈명, “대한민국 절반의 희망이 된 여성변호사”로서 여권 신장에 앞장선 이태영,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 것인가를 말하기 위해 싸운다”며 ‘무죄다라는 말 한마디’를 외친 황인철, 수배중에 전태일의 전기를 쓴 “억울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린 이름”의 조영래, “원칙과 상식을 꿈꾸었던 이상주의자”로서 대통령 퇴임 후 비극적인 자결을 택한 노무현, 그리고 “이긴 적 없지만 늘 이겼던” 그래서 옥살이를 피하지 못한 한승헌.

나는 상실과 포악의 시대에 이념과 실천으로 도전하는 세 여자와 11명의 율사들을 통해 불의와 부정에 저항한 인물들의 이 땅에서의 그 뜨거운 투쟁에 감동했다. 그 열정으로 덧없는 세상에 이상과 정의의 의미를 새겨주었음에도 영혼을 빈 하늘에 띄울 수밖에 없는 허망함도 나는 피할 수 없었다. 그 서사들은 열정이 연민을 불러오는 고단한 우리 민족사가 당한 수난의 그림이었고 그 인물들에 서린 안타까움이었다. 내 감회는 시대의 수난에 대한 슬픔이고 그 완강한 의지에의 안쓰러운 경의였으며, 그럼에도 “몸은 땅에, 영혼은 노을에” 묻어야 할 한의 근원에서 우러난 하염없는 설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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