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정권 비리 보도 ‘강력’
이번달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이 본격화하면서 한겨레의 권력 비리 고발 보도들은 양과 질에서 풍부했다. ‘강원랜드 합격자 518명 중 493명이 ‘빽’ 있었다’(9월11일 6면) 등에서는 자유한국당 권성동 의원까지 관련된 2012년과 2013년에 발생한 강원랜드 채용비리 의혹을 집요하게 고발했다. ‘MB 국정원, ‘출근길 여론’ 라디오 프로도 현미경 사찰’(9월21일 1면) 등의 기사는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의 조사 결과와 후속 취재를 크게 보도하여 민주주의 가치를 파괴한 전 정권의 ‘블랙리스트’ 비리를 중요 문제로 다뤘다. 한국방송(KBS)과 문화방송(MBC)의 제작거부와 파업으로 부각된 공영방송 개혁 문제는 한겨레가 거의 의제를 주도한다 싶을 정도로 거의 매일 주요 기사와 사설, 칼럼 등을 통해 박근혜 정부 시절 사실상 ‘낙하산 인사’로 임명된 현 사장과 임원진의 공영방송 농단 행위를 폭로하고 정치적 독립성 확보를 위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혁 논의도 충실히 보도했다. 지난 6월27일 한겨레의 특종 보도로 이슈가 된, 파리바게뜨의 불법파견과 ‘임금꺾기’ 의혹, 그리고 제빵사 직접고용 명령 논란도 기업의 횡포를 희생자인 근로자의 입장에서 접근했다. 9월15일 1면 ‘보수야당 새 색깔론 ‘동성애 혐오’’ 기사는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를 낙마시키는 과정에서 자유한국당 등이 보수 개신교와 연합하여 ‘동성애 혐오’ 감정을 부당하게 조장한 사실을 제대로 비판했다.
■ 문재인 정부 비판과 문제 제기 ‘한계’
한겨레의 권력 감시 보도는 전 정권 비리에 대한 비판은 강력하고 집요했지만 ‘살아있는 권력’이랄 수 있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과 문제 제기는 일정한 한계를 노출한다. 북한의 잇따른 핵 도발과 문재인 정부의 미흡한 외교안보 전략으로 인해 사람들의 불안감이 점차 확산되는 현실인데, 한겨레는 새 정부의 대북 안보 외교 정책을 반대·비방하는 보수 정당과 언론을 비판하는 한편, 대북 대화와 평화 노선의 정부 입장에 동조하는 보도로 일관하고 있다. “전문성과 담대함을 갖춘 전략가들로 새 외교안보팀을 짜야 한다”고 촉구한 9월7일 23면 칼럼 ‘한국 외교에 전략가가 없다’ 정도가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짚은 보기 드문 경우다.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인 경제정책인 ‘소득주도성장’ 방안을 둘러싸고 당위론과 회의론이 맞서고 있는데, 한겨레는 주로 이 정책을 두둔하는 데 힘쓰는 모습이다. 물론 9월5일 23면 칼럼 ‘소득주도성장, 제대로 된 논쟁을’을 쓴 이강국 리쓰메이칸대 교수의 지적대로,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극소수의 비주류 경제학이며 무모한 실험”으로 폄하하는 보수언론과 일부 학자들은 부당하다. 국제노동기구(ILO)가 ‘임금주도성장’ 모델을 제시한 바 있고, 국제통화기금(IMF) 등도 소득과 부의 불평등의 심화는 장기 경기침체와 불황, 심지어 공황과 같은 경제위기를 부르기 때문에 불평등을 시정하여 경제성장을 도모하는 ‘포용적’ 경제 정책의 필요성을 제안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겨레 9월9일 사설이 ‘‘포용적 성장이 한국 경제의 길’ 역설한 IMF 총재’의 제목을 달고 “‘소득주도성장’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성장전략이다”라고 주장한 것은 사실관계에 어긋난 과장된 측면이 있다. 사설에서 밝힌 대로, 라가르드 총재는 한국은행 등이 공동주최한 국제 콘퍼런스에서 한국과 같이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나라에서 “성장의 혜택이 광범위하게 공유될 때 성장의 지속성과 회복력이 강화된다”고 언급했지만, 그것이 한국의 주요 성장전략이 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지는 않았다. 라가르드 총재는 오히려 한국 등 아시아 각국들이 급속한 생산성 저하 문제를 겪고 있다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연구개발과 인프라와 교육 개혁에 더 많이 투자하는 정책을 정부가 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소득주도성장’은 소득 불평등 양극화 해소를 통해 장기적으로 성장의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지만, 여전히 기술혁신과 생산성 향상을 통한 별도의 경제성장 정책이 필요하다는 얘기인데, 한겨레는 전자의 당위성을 방어하는 데 그치고 대안 제시를 못하는 모양새다.
■ 사회적 약자, 소수자 보도의 문제
페미니즘, 동성애, 낙태 찬성, 청소년 자살 및 열악한 주거문제 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관한 한겨레의 보도는 정의로움이 빛났다. 그러나 다수집단의 견제와 압력, 반발 속에서 기사를 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만큼 최대한 정확한 사실관계 확인과 객관적이고 공평한 보도 자세를 유지해야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마찰을 줄이고 소수자와 약자의 인권신장 등에 제대로 기여할 수 있다.
9월7일 2면 ‘페미니즘 교육이 남혐·동성애 권유로 둔갑하기까지…’ 기사는 페미니즘 교육을 시킨 초등학교 여교사가 혐오집단들에 의해 남자혐오 교사로 낙인찍히고 동성애를 권유했다는 식으로 왜곡, 비방을 당하고 있고 이에 여성, 인권단체들이 교사를 옹호, 방어에 나섰다는 보도이다. 약자 보호 차원에서 취재하고 쓴 정의로움이 묻어나는 기사이다. 그러나 기사는 초등학교 어린이들에게 동성애자의 물품까지 보여주며 페미니즘 교육을 시킨 해당 교사에게 항의한 학부모들마저 혐오집단과 함께 부정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당사자 등으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
9월12일 10면과 11면. ‘‘임신중단 합법화’ 커지는 목소리’ 기사는 유전적 질환 등 모자보건법에서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사유 이외에 아이를 키울 형편이 안 된다는 등의 사회적, 경제적 사유로 인한 낙태까지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낙태 찬성론자의 주장만을 중요하게 다뤘다. 태아의 생명권 등을 주장하는 낙태 반대론자들의 주장은 비교 대상으로 잠시 소개됐을 뿐, 공평하게 다뤄지지 못했다. 이 기사는 결별을 요구하는 여성에게 남친이 임신중절 수술을 고발하겠다고 협박한 사례 2건을 소개하면서 낙태죄가 재산상의 다툼이나 이혼 과정에서 협박 수단으로 악용되기 때문에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 통계분석 해석의 정확성
9월20일치 1면 머리기사 ‘94만 아이들, 곰팡내 나는 집에서 시들어간다’와 사설, ‘‘아동 가구’에 우선순위 둔 주거빈곤 대책을’은 “우리나라 어린이와 청소년 10명 가운데 1명꼴인 94만명이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열악한 집에서 생활하거나 지하나 옥상, 고시원에 사는 등 주거빈곤 상태에 내몰려” 있음을 드러내고, 선진국처럼 ‘아동 주거복지는 국가의무’로 여기고 아동 주거빈곤 대책을 속히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자체로 어린이 주거빈곤 대책을 참신하게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앞서 9월7일 1면 ‘‘서울에 ‘옥탑방 없다’는 국토부 통계’ 기사는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를 전국에 156만752가구(전체 가구수의 8.2%)로 집계하고 있다. 두 가지 숫자는 상당 부분 중첩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빈곤의 대물림, 계층의 문제를 고려한 체계적인 어린이 주거빈곤 대책을 제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최영재 한림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