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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크리틱] 과도한 말들 / 허문영

등록 2017-09-22 18:18수정 2017-09-22 18:57

허문영
영화평론가

“행복을 드리는 ○○○입니다.”

기차표 예매를 위해 전화를 걸면 직원의 첫 응답은 이러하다. 일 때문에 한 달에 서너 번 서울~부산을 기차로 오간 지 10년이 넘었는데, 이 첫인사는 변하지 않았다. 그 직원은 내가 무엇으로 행복을 느끼는지 전혀 모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평균적인 행복의 조건이 있다 해도 그가 내게 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무엇을 준다는 말인가. 매뉴얼대로 말해야 하는 그 직원에겐 아무런 잘못이 없지만, 이 과도한 말은 늘 조금 불편하다.

불편한 말들은 기차를 탔을 때 안내방송을 통해 더 들어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얼굴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서비스를 드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상급 형용사가 두 번이나 반복된다. 나는 승무원에게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얼굴’을 전혀 바라지 않으며 그들도 그래야 할 의무가 전혀 없고 그렇게 할 수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서비스라는 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기차를 타면서 별다른 서비스를 기대한 적도 없지만, 서비스라고 할 만한 것을 받은 적도 없다. 그런데 왜 저런 엄청난 말들을 쏟아내는 걸까.

이어지는 말들에는 약간 심술이 난다. “최고의 여행은 안전한 여행이 아닐까요. 저희의 안전시스템은….” 단순한 기차 타기를 여행이라고 표현하는 건 차치하고라도, ‘최고의 여행이 안전한 여행’이라는 언사는 낯선 세계와의 예기치 않은 조우라는 여행의 불가측한 본령과는 사뭇 동떨어진 말이다. 말의 외모 그것도 상투적인 미관에만 몰두하는 무책임한 말들, 그래서 발화되는 순간 바로 허공에 흩어지는 텅 빈 말들의 행렬을 접하며 매번 기차를 탄다.

물론 기차에서만 이런 말들을 듣게 되는 건 아니다. ‘고객님 사랑합니다’라는 말은 이런저런 매장에서 흔히 외쳐지고, 거리엔 ‘○○○은 당신을 응원합니다’라는 문구가 무심하게 붙어 있다. 누구를 향한 말이며, 그 사랑과 응원의 정체는 무엇일까. 조심스럽게 사용되어야 할, 누군가에게는 평생 몰두할 주제가 되어온 귀한 단어들이 아무렇게나 내뱉어지고 있다. 그 안에 담긴 진실이나 책임과는 무관하게 당장의 수사적 효용이 발화의 동기가 되는 말들의 오랜 기지는 정치였지만 이젠 광고의 언어로 뒤덮인 일상의 환경 자체가 된 것 같다.

사적인 푸념으로 들린다 해도 지나치기 힘든 말이 있다. ‘담배는 질병입니다’라고 보건복지부는 ‘공익광고’에서 말한다. 오랜 흡연자로서의 편향을 벗어날 순 없겠지만 이 말은 아무래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이건 담배를 혐오하는 사람의 사적인 발화가 아니다. 정부기관이 질병이라고 규정한 대상이라면 합법적 상품이 되어선 안 된다. 세상에는 이로운 점보다 해로운 점이 압도적으로 많은 상품이 있으며, 담배가 개중 으뜸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정부기관이 어떤 상품을 질병이라고 공언했다면 그 공언에 대한 책임을 지고 그것을 불법화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보는 건 말의 책임이 아니라 규탄의 수사일 뿐이다.

물론 이런 말들이 당장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진 않을 테니 이건 아주 사소한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말들이 아주 조금씩 나빠져 간다는 게 언어의 외부에서는 한 발자국도 생각을 옮길 수 없는 우리에게 정말 사소하기만 할까. 사실을 왜곡하거나 악의로 가득한, 누가 보기에도 나쁜 말들이 있다. 하지만 발화자의 책임도 영혼도 담기지 않은 선의의 말들도 실은 그만큼 나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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